[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36] ‘사랑받지 못하는 행복’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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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마다 신비하고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리는 빈스완겔 노인의 집 옆에는 남편을 잃은 한 부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가 유복자인 아들 아우구스투스를 낳았을 때, 그 노인은 교회에서 의부 역할도 해 주었다. 세례를 받던 날, 노인은 아우구스투스의 어머니한테 말한다.
"오늘 저녁 내 집에서 음악소리가 나면 아이의 귀에 아이를 위한 소원을 한 가지 말해요. 그대로 될 겁니다."
그 일을 잊고 있던 부인은 어느새 저녁이 되고 갑자기 음악소리가 나자, 노인의 말을 떠올리고는 당황해서 무슨 소원을 빌까 망설이다 음악이 끝날 때쯤 겨우 아이의 귀에다 말을 했다.
"엄만..., 너를 위한 소원을 말할 거야. 음..., 모든 사람들이 널 사랑하게 해 달라고...!"
부인의 소원대로, 아우구스투스는 정말 눈에 띄게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랐다. 모든 여자아이들이 그와 키스하고 싶어했고, 모든 어른들의 사랑도 그는 독차지했다. 어릴 때는 빈스완겔 노인이 가끔 그를 데려다 방 안 가득 춤추는 천사들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자라면서 차츰 어떤 잘못을 해도 미움을 받지 않게 되고 남들의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그가 말썽을 부리는 날이면, 노인은 천사들이 슬퍼한다며 음악을 들려줄 수 없다고 했다.
공부를 위해 고향을 떠나 방탕하던 청년 아우구스투스는 어느 날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을 찾지만, 어머니는 그의 앞에서 곧 숨지고 말았다. 다시 고향을 떠난 아우구스투스의 방탕은 계속됐지만,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은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주변을 맴돌았다. 그는 그런 귀찮은 사람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으로 자신의 채워지지 않는 것을 메꾸려 했고 언제나 자기 밖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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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여행 중이던 그는 한 귀족 부인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남편을 따라가게 되고, 아우구스투스는 사랑의 감정에 눈을 뜨게 된다. 괴로움에 빠진 그는 더욱 사람들을 괴롭히다, 스스로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기도하게 된다.
그런데 약을 탄 포도주를 마시려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었다. 바로 빈스완겔이었다.
"자넨 방탕한 생활에 싫증이 났군. 그건 내 책임이야. 난 자네 어머니에게 아들을 위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지. 네 어머니가 말한 소원은 안타깝게도 어리석은 것이었지만, 난 그걸 들어줬다네. 이렇게 변한 자네가 다시 내 집의 난롯가에서 옛날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어때, 내가 자네의 다른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까?"
그러나 아우구스투스는 이미 지쳐서 자포자기 상태였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게. 마음에 두었던 여인, 귀족 부인과 만난 일.... 무엇이 자넬 행복하게 했는지 생각해 보란 말일세."
아우구스투스는 지난날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지나간 많은 일들... 어머니와 어린 시절도..., 그는 한참 뒤 빛을 분간해 내고는 눈물을 흘리며 빈스완겔 앞에 엎드렸다.
"할아버지. 저를 망친 오래 전의 그 마력을 거두어 주세요. 그리고 이젠 제가 모든 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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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깨어보니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아우구스투스는 갑자기 친구들로부터 욕설과 구타를 당했다. 온갖 멸시를 받으면서도 그를 미워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이젠 돌변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피해를 입힌 사람들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법정에 섰지만, 자신을 경멸하는 많은 이들의 눈에 아른거리는 정다움과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끝내 감옥에 간 아우구스투스는 다 늙어서야 출감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돕고 사랑을 베풀었다.
오랜 방랑 끝에 늙은 아우구스투스는 옛 어머니의 집과 빈스완겔 할아버지의 집이 있는 길목에 다다른다. 그는 빈스완겔의 집으로 들어섰다. 노인은 그를 반갑게 맞았다. 두 노인은 옛날처럼 다시 난롯가에 앉았다.
"오랫동안 방황을 했군.... 참 자네, 그 천사들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은가?"
"보고 싶어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우구스투스. 자넨 옛날처럼 다시 착해졌군."
"할아버지, 제가 또 못된 짓을 해서 어머니가 집에서 울고 있어요. 우리 어머니에게 이제는 제가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해 주세요."
그가 지친 몸을 노인에게 기대자, 방 안엔 천사들이 나타나 춤추며 어머니의 음성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빈스완겔은 안심하고 잠든 아우구스투스의 두 손을 모아주고 그의 심장에 귀를 댔다. 그러자 방안은 금세 완전한 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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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삶의 진리 한 편을 잘 보여주는 헤르만 헤세의 동화 <아우구스투스>에 나오는 주인공 아우구스투스는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다 못해 끝내 자살을 기도한다.
짝사랑하던 로테의 사랑을 얻지 못해 죽음을 택한 베르테르처럼. 이렇듯 정반대의 이유로 똑같이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어느 노총각으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자기가 여러 사람을 원하고 사랑해 봤지만 그들은 자기를 택하지도 원하지도 않았다고, 이제는 자기를 사랑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겠노라고....
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나는 그것이 좋은 태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상처와 실패를 경험했더라도, 늘 사랑은 자기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만남도 결혼도 위험한 시도일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끊임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자기의 반쪽이다.
사랑이란 원래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자신의 행동이나 처신에 관계없이 모든 이들의 사랑을 늘 받는 것, 그것은 안락사에 이르는 길이다.
많이 사랑받지 못해 슬픈가? 하지만 그것이 바로 당신을 지켜주는 힘이다. 성숙한 인간이 되려면 '사랑받지 못하는 행복'을 알아야 한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이들을 맘껏 사랑할 수는 있어도, 원하는 만큼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는 없게 하셨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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