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충신이 그리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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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깊음이 서러운 비애의 세월을 안고 겨울을 준비하는 가운데, 유수와 같은 세월을 막아설 수 없는 우리들의 인생 여정 또한 가을의 깊음을 따라 겨울나기를 준비해야 하는 계절이다.

연일 신문지상을 오르내리는 '적폐청산'이라는 정책 구호가 전직 대통령을 향하고 있는 정치권의 세월 또한, 머지않아 가을이고 겨울이 될 터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필귀정이라는 당위성을 앞세운 현직 정권의 권세와 이에 읍소하는 부속기관들의 실력행사로 혼란스럽다. 새로 권력을 잡은 정치권은 언제나 구 정치권의 실정에 대하여 대립각을 세우기 일쑤이다.

내가 살고 있는 국가에 적폐가 이렇게 많아서야 어찌 누굴 믿고 의지하며, 같은 동포라고 자부하며 살아갈 수 있겠는가. 김정은 말고도 국내에 적폐가 이렇게 많다니 그저 놀랄 일이다. 적폐의 규정은 무엇인지, 적폐라고 규정짓는데 과오는 없는지, 혹시라도 적폐를 청산하기 위하여 스스로 적폐가 되는 자충수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러운 가을이다.

급기야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되었다. 김관진 장관이라면 '원점 타격'이라는 장관의 소명을 십분 발휘함으로써 북한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한 전직 장관이다. 그의 사진을 놓고 북한에서 벌인 화형식만 수십 차례가 넘는다. 연평도 포격으로 불안에 떨고 있던 국민들은 김관진 장관의 단호한 원점 타격 방침을 믿고 안도했다.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국방 방어벽의 수장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 그가 구속되었다. 권력의 무상함이 낙엽과 다를 바 없다. 그는 과연 수사관에게 어떤 진술을 했을까. 대통령 덕분에 고위직의 명예를 맛보고도 대통령의 지시로 위법을 행하게 되었다고 진술하는 전직 대통령 비서진들의 의리, 충성 모르는 이기적인 민낯이 그에게 보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왜일까.
 
국가를 다스리다 보면 실수도 있고, 법 규정의 잣대를 들이대면 위법과 편법을 자행한 경우도 드러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최고 통치자들이 청와대를 나오면 교도소로 향하는 것이 관행처럼 느껴지는 근대사를 조명해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렇다. 법치 국가에서 누구 한 사람이라도 성역이 어디 있으랴. 최고 통치자라 해도 국가에 중대한 악영향을 끼쳤다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최고 통치자 덕분에 고위 관직의 명예를 얻은 참모들의 언행을 지켜보자니, 어찌하여 저런 인간들을 요직에 등용했는가 하고 장탄식이 흘러나온다.

죄를 옹호하자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최고 통치자의 참모들이라면 마땅히 주군을 보호하고, 주군을 위해 죄의 전부를 자진하는 언행으로 끝까지 충성하는 것이 충성된 신하의 의리(?)가 아니겠는가. 수사기관에 불려가 최고 통치자의 지시로 불법을 행했다고 털어놓는 참모들의 언행이 과연 아름다운 도리인지 혀를 끌끌 차보는 가을이다.

"내가 다 주도했노라."

깜도 안 되는 사람들을 요직에 등용해 준 최고 통치자에게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언행은, 요직의 권세를 맞본 자들의 충성된 도리 아니겠는가. 비록 주군의 죄를 몽땅 뒤집어쓴다고 한들 죄의 경중에 무슨 악영향이 있을 것이며, 도리어 이러한 신하의 충성은 후대에게 아름다운 정조로 교훈되지 않겠는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은 세월은 흐르고, 현 정권 또한 머지않아 청와대를 나서야 할 시간이 도래할 것이다. 국민과 고향에서 환영받는, 잠잠한 퇴임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왠지 씁쓸하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현직 대통령의 퇴임 후에 실정이 드러나 언론에 오르내리게 된다면 "내가 다 주도했노라" 하고 최고통치자를 끝까지 보호하려는 참모가 현 정권에는 과연 한사람 있을까, 하는 망상이 떠올라 쓴 미소를 삼킨다.

자신에게 명예를 안겨준 주군을 끝까지 보호하고 충성하는 참모 한 사람의 호기가 매우 그리운 시절이다. 그때 그 사람, 장세동 씨는 지금 무엇하고 있는가. 매우 궁금한 마음에 찬바람이 나부낀다.

하민국 목사(인천 백석 새로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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