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37] 다름 인정하되, 조금씩만 맞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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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개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그가 어떤 성향인지, 어떤 스타일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는 데 골몰한다.
그런데 가끔은 사람마다 사랑의 분량이 각기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각자 사랑을 소비하는 양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부부나 연인이 서로를 사랑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과 회수가 다른 것처럼, 저마다 사랑을 생각하고 누리고 느끼는 양이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한 번 표현하면 대단히 큰 것을 했다고 생각하고,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하려 든다. 어떤 사람은 매일 표현하고 늘 그런 느낌으로 살아야만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양은 서로 맞기도 힘들고 맞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너무 차이가 심해도 문제다. 주로 남자는 표현하고 여자는 받아주거나 피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꽤 많은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한 번 사랑한다고 말을 해야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그건 너무 사랑을 남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이 만나 연애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처음에는 이해하고 좋은 쪽으로 생각하겠지만,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 한쪽에서는 가볍다, 경박하다, 헤프다 하고 반대편에서는 메말랐다, 재미없다, 사랑하기는 하는 거냐... 등등 불만이 나오고 서로 이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스마트폰을 몸에서 1미터 이상 떨어뜨리지 않고 살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모든 자기 상황을 톡으로 여기저기 보내는 스타일인데, 다른 사람은 빨간 동그라미가 쌓여도 한참 후에 보고 필요한 말만 한다. 이 두 사람이 사귀면 어떻겠는가. 의사표시를 했는데 상대방이 금방 답을 안 하거나 말이 짧으면 거절의 표시로 알 수도 있고, 반대로 잦은 메시지는 자꾸 보채는 것이나 집착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이들이 사귀거나 결혼한다 해도 처음엔 서로가 조금씩 줄이고 늘리는 노력을 하겠지만, 나중에는 서로 많은 대화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문제는 톡을 습관적으로 많이 보내는 사람이 말할 곳을 찾지 못해 다른 사람들과 열심히 자기 톡의 분량을 채우며 해소하는 것이고, 상대방은 이제 좀 편해졌다 하면서 자기 생각만 하고 답답한 그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관계가 더 좋은 쪽으로 간극이 좁혀지며 발전하기는 어렵다는 거다.
뭔가 자꾸 애정표현을 해야 하고, 노래를 들어도 사랑이 빠지면 허전하며, 첫눈이 오는 날에 반드시 기억에 남을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은, 그런 것은 사랑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 둘 곳이 없어진다.
이벤트를 많이 하고 뭔가 사랑을 자꾸 소비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지녔다 해서 그의 사랑이 더 큰 것도 아니고, 자주 표현하지 않는다 해서 애정이 더 작은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다만 밥을 양껏 먹어야 먹은 것처럼 먹었다고 여기는 사람과 요기만 하면 숟가락 놓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양으로 사랑을 대한다는 차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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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셔서, 꼭 반대의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둘 다 늘 사랑타령만 하면 집안 꼴이 어찌 되겠나. 그렇다고 둘 다 데면데면한다면 부부가 함께 살 이유가 무엇인가. 심지어 비슷한 사람들이 만나도 아주 똑같지는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둘은 반대의 사람들이 된다. 그것이 살아가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서로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은 해야 한다. 어떤 문제에서든 주고받는 팽팽함은 건강한 것이다. 시소를 타도 왔다 갔다 오르락내리락하면 재미가 있고, 길게 보면 균형이 잡힌 상태다. 문제는 한쪽이 너무 무거워서 그대로 정체돼 있는 것.
각자의 삶이 있는데 모든 것을 같이 하려 하고,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지 않는 애정공세도 문제지만, 함께 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태도에 상대방이 애정을 표현해도 '가족끼리 왜 이래' 한다면 이런 부부가 갈 길은 멀기만 하다.
한 사람은 군중 속의 고독처럼 함께 있지만 야속한 마음으로 자주 외로울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상대방이 거리를 유지한 채 자기 방식대로 사랑만 해주기를 바라다가 상처받은 그 사람의 마음이 떠난 것을 알고 역시 외로움에 울 것이다.
이 문제는 성향의 차이, 성격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시간과 속도를 느끼는 차이일 수도 있는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이다.
축구에서도 어느 포지션에 있든 그 역할을 해내는 선수가 있듯이 한꺼번에 여러가지를 동시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서로 종류가 다른 일들도 동시다발적으로 한다. 반면에 하나를 마무리해야 다음 일로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도 만나면 서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발생할 것이다.
사랑을 원하고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서로 같아도 방식이 다르고 각도가 다른 법이다. 그 중에서 사랑의 분량은 중요한 문제다.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지만 다 같은 분량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강박적으로 모든 시간에 하나님을 느끼고, 모든 것을 그분 안에서 생각하고 표현하고자 하지만 어떤 사람은 독립적으로 살면서 이따금씩 하나님과 시간을 보낸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 할 수 없다. 모든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신앙심이 큰 것 같지만 종교적 강박일 수도 있고, 약간은 집착에 가까워 본질과는 먼 사람일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건강하지 못한 종교집단에 가는 일도 많다. 반면 너무 하나님을 멀리 느끼고 얻어 온 자식처럼 행동해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어렵다. 적정한 수준을 잘 아는 사람이 건강한 신앙인이고 상식적인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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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러면 상대방이 하나님인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각기 다른 우리를 어떻게 다루실까?
아마도 하나님은 한없는 사랑으로 사람 각자의 성향에 맞춰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아시고 마음 깊은 곳을 아시기 때문에 그 마음에 문제가 없으면 신앙생활에 민감하든지 무디든지 다 넓게 이해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에 사랑의 분량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는 결국 두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나는 상대의 치우친 성향을 맞추고 이해할 넓은 마음과 큰 사랑이 있는가? 둘째, 상대방은 중심에서부터 나오는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이 두 가지 문제가 아니라면, 자꾸 작은 일들로 싸우지 말고 큰 원칙을 세워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은 아니지만 깊은 곳에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사람들이므로, 그분의 속성에 따라 상대방을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신앙에 적극적인 사람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시고, 심드렁한 사람은 오래 참고 끝까지 기다리시는 그런 속성 말이다. 어렵지만 이론적으로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겠다.
끝으로, 탓만 하지 말고 발상을 전환할 필요도 있다. 만일 서로 비슷한 상대를 만난다면 어떨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대개 자나 깨나 사랑 타령을 하는 사람들은 사랑을 주는 것을 좋아하고, 상대방이 내 생각을 예상하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야 서프라이즈도 하고 이벤트도 하는 거다. 골똘하게 서로 어떻게 사랑을 표현할지 그것만 생각한다면, 예측 가능한 미래가 얼마나 김이 빠지겠나.... 반대로 둘 다 보면 보고 말면 말고 하는 식으로 늘 시큰둥하게 다른 일에만 몰두한다면 그 미래 또한 얼마나 재미가 없겠는가.
그러니 너무 안주하지 않되, 꼭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박도 갖지 말고, 조금씩만 상대방에 맞추면 좋을 듯하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사랑의 분량..., 그 양의 차이가 있음을 아는 것만으로도 절반의 이해는 가능할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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