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42] 사랑한다는 말, 미루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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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은 하루에 5만 번에 가까운 갖가지 생각을 하고 좋은 의도건 나쁜 의도건 수백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솔직하다는 것이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다. 그러나 음흉스러운 사람보다는 명쾌한 사람이 늘 좋은 법이다.
명쾌하고 표현이 올바른 사람은 사랑에서도 좋은 역할을 하게 되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준다. 자기 생각, 즉 사랑과 미움과 기쁨과 슬픔과 고마움과 서운함 등을 너무 감추면 이도 저도 아닌 사이가 되게 마련이다.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무인도에 떨어진 어머니와 아들이 대화 없이 10년을 보낼 경우, 아들이 어머니를 범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표현과 소통은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 만큼 되지는 않는 것이 사실이다.
사투리로 '띠알, 띠알머리'라고 부르는 '띠앗'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형제자매 사이의 정이나 우애 같은 것을 뜻한다고 한다. 필자가 어릴 적 형이나 누나와 싸우거나 서로 인색하게 굴면, 어머니가 늘 '띠알머리가 없다'고 야단을 치곤 하셨다.
이렇게 집집마다 형제자매가 지내는 모습은 각기 다르다. 소 닭 보듯 하고 완전 개인플레이로 노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서로 비밀스러운 고민도 이야기하고 다 커서도 여전히 사이좋게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는 등 살갑게 지내는 집안도 있다.
그런 후자의 경우에 보면, 대개 표현력이 좋고 솔직한 사람들이 많다. 가족끼리 싸우고 나서 풀릴 때까지 기다려서 흐지부지 될 때까지 기다리는 집도 많은데, 그것이 그들 나름의 방법이기도 하지만, 솔직하고 명쾌하게 풀어버리는 이들보다 더 오래 가고 감정의 앙금도 많이 남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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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표현은 때로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 싹싹한 아이가 어른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같은 이치다.
어른이 매를 들고 엄포를 놓아도 죽어도 잘못 했다는 말을 안 하는 아이가 있다. 매를 든 자신을 콱 끌어안으며 '잘못했다, 안 그런다'고 말하길 바라거나, 차라리 매를 피해 내빼길 바라는 것이 매를 든 부모의 마음이거늘, 미련 곰탱이들은 끝까지 맞고 또 맞는 것이다.
그렇게도 솔직한 표현은 어려운 것이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이고, 연인 사이도 마찬가지다. 싸움은 사실 아주 작은 것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표현의 문제 때문에 싸움은 길어지고 또 미묘하고 복잡한 신경전으로 변하곤 한다.
예전 같은 직장에 황 차장님이란 분이 있었는데, 당시 그분의 딸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않는 아빠를 깨우던 아이는 참다 못해 묵직한 물건을 아빠 이마에 직각으로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는 너무 아파서 잠을 깬 다음 계속 아프다고 했다고 한다.
"아야, 아야야, 아이고 아파라...."
당황한 아이는 무안해서 아무 말도 않고 가만히 있었고, 황 차장님은 어쩌나 보려고 계속 아프다고 엄살을 떨었다고 한다. 그러자 잠시 후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조용히 좀 해. 나도 미안한 거 알고 있어."
맞다.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다투게 됐을 때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어떤 말을 실수했는지는 어린애들도 안다. 단지 미안하다는 말, 잘못했다는 말이 안 나오는 것뿐이다. 미안하다 하면 될 것을, 마음이 불편하니 조용히 좀 하라는, 맘에 없는 말이 나오는 거다. 그 말을 다르게 표현하고 돌려서 말하고, 자기 자존심이 안 다치게 포장하다 보니 또 다른 실수와 문젯거리를 만들게 된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다신 안 그런다.... 두 시간 있다 또 그럴지언정 그런 표현을 잘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얼마 전 돈 몇천만 원 때문에 친척간 다투다 한밤중에 습격한 조카가, 이모를 구타하고 얼굴에 고춧가루와 소금을 뿌리고 소변을 보는 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발생했다. 조카는 나중에 눈물로 범죄를 시인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어쩌다 가족끼리 이렇게까지 됐는지 나도 미치겠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단지 '미안하다'는 한 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인데...."
이렇듯 적절한 타이밍을 놓친 사과는 가볍게 끝날 일도 엄청난 불행으로 몰아가게 된다. '서운하다, 속상하다' 등의 표현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격적이거나 비난이면 안 되겠지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그때 그때 표현하는 것은 상황에 도움을 줄 것이다. 마음 속에만 넣어놓고 '상대방이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은 어떤 상황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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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표현도 마찬가지다. 바로 바로 표현하는 것이 가볍게 느껴질지는 몰라도, 자주 표현하는 것이 관계에 도움을 준다. 옛날 어르신들은 그렇게 하는 것을 경망스럽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분들의 방식이 지금에도 바람직한 애정관계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사랑은 학습 같은 것이고, 또 노력해서 만들어가고 이루어가고 지켜가야 하는 것이다. 반복 학습법처럼 상대방을 보고, 말하고, 자기 목소리를 귀로 듣는 과정에서 애정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사랑은 저어주고 섞어주지 않으면 응고되어 못 쓰게 되는 수프나 시멘트 같은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 자신이 건조해졌다고 생각한다면, 마음 속 깊은 곳의 말을 내뱉어 보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진정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라고 그의 앞에서 소리내 말해보라. 그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눈물부터 날 것이다.
세상을 가장 아름답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유익하게 사는 방법은 언제나 내일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면서 사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일이 없다면,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면, 싸운 뒤에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을 이가 없을 것이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은데도 뒤로 미루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서 '해가 질 때까지 분노를 품지 말라'고 한 이유도 아마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해가 질 때까지 분노를 품거나, 그 분노를 내일과 미래로 계속 가져가는 사람은 행복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싹싹하게 바로바로 털고 가는 것은, 당장은 어려워도 오래도록 이득이다.
'It's now or never.' 화해도 사랑도 행복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라.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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