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43] 운명적 러브스토리의 늪
세상의 러브스토리와 로맨스 영화는 사랑에 대한 많은 관념을 낳았고, 사랑의 감정을 부풀리거나 왜곡시켰다. 물론 때로는 사랑을 더 아름답고 숭고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세상의 사랑이 이토록 망가진 것을 보면, 범람하는 애정물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의아하기만 하다.
그런 영화들은 무수히 많은 스토리와 대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런 대사 중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느 날 문득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진 남녀. 그러나 주변의 방해로 몇 년간 만나지 못하게 되자, 여자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전에 사귀던 직장 동료를 다시 만나 결혼을 결정한다.
남자는 몇 년이나 같은 버스를 타면서 여자를 찾아 헤매던 어느 날, 그녀를 발견하고 급히 차를 세운 뒤 따라가 겨우 재회한다. 여자는 그때 왜 자기를 잡지 않았느냐고 묻고, 남자는 주변 방해 때문에 여자가 위험해질까봐 일부러 떠났지만 결코 잊을 수 없어서 찾아 헤맸다고 한다. 여자는 남자를 원망하며 말한다.
"당신이 날 망쳐놨어요. 그때보다 못한 것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어요."
짧았지만 처음 느낀 감정이 강렬해 사랑의 최고치를 맛보았다는 뜻이다. 그때부터 다른 모든 사랑은 시시하다는 것.
일단 이런 최고의 사랑을 느끼는 감정은 중요하다고 본다. 결혼 전에는 이런 대상을 만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적당히 맞추면서 살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좋지 못하다. 그런데 이 말에는 두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그 키워드는 '책임'과 '만족'이다.
만족이란 연애와 결혼에 있어 굉장히 중대한 문제다. 거의 모든 갈등이 욕구불만, 즉 자신이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분노와 서운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만족이 채워지지 않으면 다른 것을 찾고, 서운함을 자주 느끼면 복수할 기회를 찾는 것이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상대, 가능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대하든 나는 좋은 그런 상대를 만나면 좋다.
그런데 만족감만 생각하면 큰일난다. 모든 사람이 만족하기 때문에 살고, 사랑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상의 만족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인간은 끝까지 만족을 모르는 존재이기 때문에 멈출 지점도 알아야 한다. 인간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온 천하를 주어도 계속 만족하지는 못한다.
그 만족감의 추구를 멈추고 포기하는 행동을 '책임'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많은 착각을 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도망친다. 도망자들의 합리화를 크게 돕는 것이 바로 로맨스를 다룬 세상의 이야기들, '사랑 지상주의'의 표어들이다.
"당신이 날 망쳐놨어요. 그때보다 못한 것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말이 무슨 말인가?
날 책임지라는 거다. 나에게 다가와 사랑의 최고봉을 알게 했으니, 나의 만족감에 대한 눈이 높아졌으니, 이제 책임질 사람은 당신뿐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자는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남자를 기다리며 일생을 보낼 수 없어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직장 동료와 결혼까지 약속한 상태다. 그 동료는 그녀의 꿩 대신 닭인 후보 선수이자 제2지망의 상대로, 언제든 만족할 대상이 나타나면 물러날 단역인가? 영화에서는 단역일지 몰라도 실제 인생이라면 훨씬 오랜 시간을 함께한 연인이다.
여기서 주인공 두 사람 외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로맨스 영화의 특징이다. 그녀를 다시 찾은 남자는 사랑을 방해하는 것들을 처리하고, 결혼식 날 아침에 가까스로 그녀를 찾아가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이제 됐어요. 그와 결혼하지 않아도 돼요."
남의 인생을 말 한 마디로 파탄내면서 로맨스를 말하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라고 칭송한다. 카메라는 턱시도를 입고 기대에 부푼 단역 남자를 띄엄띄엄 비추는 것으로 역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그럼 어쩌느냐고, 책임을 지기 위해 원치 않는 남자에게 가야 하느냐고.... 억지로 가 봐야 얼마 못 살 것이라거나, 영혼 없는 결혼은 불행일 것이며 그 직장 동료 남성도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솔직히 그 답은 모르겠다.
하지만 만남은 카드놀이가 아니다. 포커페이스로 상대를 속이며, 여러 패를 쥔 채 저울질하고, 카드를 내밀고, 뒤집고, 내 것보다 더 센 패가 나오면 굴복하고, 남이 가진 에이스를 부러워하고, 조커를 활용하고, 히든카드를 숨기고....
사랑은 많은 시간 동안 서로를 길들이는 일종의 훈련이며 인내의 연습이지, 놀이가 아니다. 심지어 카드놀이와 고스톱도 '낙장불입'이 있는데, 어찌 사랑을 그리 간단히 취급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무죄이고, 오히려 그런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바보라는 듯이 '만족감을 위한 책임회피'쯤은 밥 먹듯이 해도 좋다고 왜곡하는 이야기들에 우리는 자주 열광한다.
그런 최고의 운명이 존재할까? 다들 그런 사랑을 찾았다고 하는데 조금 지나면 불행하다고 아우성이다. 잘못 찾은 것인가, 내가 변한 것인가?
운명적 사랑이란 처음에는 애타게 찾아야 하지만, 일단 찾으면 조금 아쉬워도 찾기를 멈춰야 하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운명적 사랑은 복권과 같아서 현실에 거의 없으며, 만나도 오히려 아끼지 않고 허비하게 된다. 더 놀라운 운명적 만남을 죽을 때까지 기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더욱 더 자극적인 로맨스의 늪을 향해 평생을 걸어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죽는 것을 모르는 불행한 사람, 미각의 만족감을 위해 배가 터지는 것도 모르는 무책임한 사람이다. 충분히 벌고도 계속 복권을 잔뜩 사들여 남의 기회까지 빼앗는 사람처럼 굴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욕심을 버려야 한다.
언젠가 느낀 강렬함의 감정보다 못한 것에 만족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그런 강렬함을 만나도 또 다른 자극을 찾아 평생을 헤맬 사람이다. 자족하는 사랑, 책임지는 사랑이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사랑이다. 최고의 만족을 좇는 운명적 사랑은 말 그대로 운명이 다하면 끝나는 사랑이다. 하지만 자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없는 운명도 개척하는 참된 사랑이 진정한 '만족'의 길을 열어 줄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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