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 칼럼] 슬픔, 분노, 그리고 사랑

김은애 기자  eakim@chtoday.co.kr   |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강선영 박사(한국상담심리치료센터 대표,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꽃같이 어여쁜 또 한 사람의 비보를 접했다.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이십대 청춘의 그는 유서에 이렇게 썼다.

"...나는 속에서부터 고장났다. 천천히 날 갉아먹던 우울은 결국 날 집어삼켰고 난 그걸 이길 수 없었다. 나는 날 미워했다......막히는 숨을 틔어줄 수 없다면 차라리 멈추는 게 나아..."

우울이 거대한 괴물처럼 나를 삼키려고 했던 십대 시절의 그 고통이 떠올랐다. 그 비보가 순간 숨을 못 쉬게 했고 가슴이 미어졌다. 많이 알려진 사람이기에 바로 곁에서 숨쉬던 형제 중 한 명이 그렇게 가버린 것 같은 슬픔이 며칠간 이어졌다. 그리고 걱정이 되었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 중에 따라서 가버릴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서 정말로 걱정이 되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우울증'이라는 병의 정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가수로 성공을 했고 많은 팬들이 좋아해주는 성공한 연예인이 뭐가 부족해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지?,라며 의아해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정신과치료를 받았지만, '너가 힘든 건 네 성격 때문이야. 도대체 왜 힘든거야?'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왜 힘들어?, 라는 질문이 가장 아프게 하는 말이다. 왜 힘든지, 왜 죽고 싶은지, 왜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되었는지, 그런 것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괴로운 병이 우울증인데 그런 말을 듣다니.

그가 깊고 적합한 심리치료를 받았다면, 시간이 걸렸더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올라오는 우울과 불안과 자기증오심의 근원을 발견하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는 살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울증은 단순한 병이 아니다. 그러나 이유가 없이 우울증이 생기지는 않는다. 반드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어린시절의 문제일 수도 있고 청소년기의 문제일 수도 있고 성인이 된 이후의 문제일 수도 있다. 수많은 이유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마음 속에 통증이 생기고 점점 커져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잠식당하게 되는 질병이 우울증이다.

몸에 질병이 생기듯이 마음에도 질병이 생기는 것이다. 병이 생겼다고 해서 "왜 그런 병에 걸렸어? 정신력이 없어서 그렇지. 이겨내야지..."라고 종용한다면 질병에 걸린 환자는 갈 데가 없다.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다. 나는 치유의 현장에서 부모들이 자녀들을 계속해서 비난하고 힐난하는 모습을 본다. 치유를 도와야 할 보호자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왜 힘든거야? 뭐가 부족해서 그래?"라는 말을 듣는다면 마음의 질병은 더 빠르게 부풀어오른다. 그리고 자기자신을 스스로 비난하며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마음에 생긴 상처가 세월이 쌓일수록 커져가고 낫지 않는다면 우울증의 소인이 된다. 그리고 상처가 생기면 상한 감정이 슬픔을 몰고 온다. 슬픔이 커져가는데도 그 감정을 억누르고 살면서 눈물을 흘리지 못하면 그 슬픔은 분노가 된다.

한 내담자가 최근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말씀대로 저의 폭발할 것 같은 분노는 슬픔을 풀어내지 못해서였어요. 어느 날부터 내 슬픔을 풀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눈물이 나면 참지 않고 흘리기 시작했어요. 하루종일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어요. 제 속에 그렇게 많은 슬픔이 고여있는 줄 몰랐어요...슬퍼하고 슬퍼하고나자 제 분노가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신기하게도 점점 화가 덜 나고 마음이 조금씩 평화로워지기 시작했어요..."

슬픔을 억눌러놓고 살면 분노가 커진다. 남자는 세 번만 울어야 한다고 다그쳤던 우리 문화가 남자의 분노를 커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남자가 우는 꼴이 보기 흉하다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을 보면 몹시 안타깝다. 남자들이라고 슬픔이 없겠는가.

분노가 많은 여자도 마찬가지다. 울지 못했던 여자는 분노에 쩔어있다. 슬픔을 흘리고 또 흘려보내야 한다. 슬픔이 흘러나간 자리에 사랑이 스며들면 우울증은 완치가 된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그냥 생겼겠는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슬픔은 자신이 쌓아놓았던 무수한 상처의 증거가 된다. 그래서 슬픔을 흘려보내는 작업이 심리치료의 주요한 한 과정이다!

슬픔이 너무 크게 내면을 장악하면 사랑이 스며들어올 여지가 없다. 주위의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보내도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태가 된다.

슬픔이 불안이 되고, 슬픔이 증오가 되고, 슬픔이 분노가 되는 동안 우울증은 점점 커져서 자신을 집어삼킨다. 그러므로 상처에서 온 슬픔이 치유되지 않으면 우울증은 낫지 않는다.

한 해를 보내며 생각해 보니, 슬픔도 아픔도 참으로 많았던 한 해였다. 그 슬픔이 분노가 되기 전에,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치유를 이루어야 한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떠날 준비를 하는 당신이 이 글을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 살아날 희망을 손톱만큼이라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슬픔이 치유되고 분노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사랑이 채워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사랑은 지상에 다양한 모양으로 가득 차 있다. 신의 사랑,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사랑, 주위 사람들의 크고 작은 사랑의 표현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우리는 그 사랑 안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살아갈 이유를 찾게 된다.

슬픔을 치유하고, 자기자신에게 더이상 분노하지 말고, 눈을 떠서 사랑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나도, 당신도, 그 누구라도, 사랑없이는 살 수가 없다.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닫혀버린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다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새해엔 슬픔이 다 치유되어 분노가 사라지고 온누리에 가득 찬 사랑이 우리들 가슴마다 녹아들어 넘치도록 가득차게 되길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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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가 있는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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