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45] 그리스도인의 ‘이별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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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충분히 억울해서 변명을 좀 했으면 좋겠는데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것 때문에 헤어질 지경인데도, '사랑하니까' 혹은 '내가 아픈 게 낫다' 등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침묵하고 둘은 멀어진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일은 긴 시간이 지난 후 밝혀지고, 뒤늦게 오해가 풀려 다시 만나는 계기로 작용한다.
답답해 죽겠는데, 말 좀 속시원히 했으면 좋겠는데 끝까지 입 다물고 멀어지는 게 안타까워서 또 보고, 그 일이 드러나는지 확인하려고 계속 보고, 뻔히 드러날텐데도 진짜 드러나는지 보려고, 그 비밀을 듣는 상대방의 반응을 보려고 또 눈을 떼지 못한다.
오래된 한 드라마의 예를 들면... 사랑하지만 갈등의 골을 해결하지 못하던 부부의 첫 아들이 사산된다. 그 와중에 남편은 외박을 하며 자취를 감춰 여자는 병실에서 혼자 울며 아이에 대한 슬픔과 남편에 대한 오뉴월 서리를 가슴 깊이 간직한다.
그 사건이 고민하던 이혼의 마침표가 되어 둘은 갈라서는데, 서로가 신경쓰여 계속 주변을 맴돌고 지인들 핑계를 대며 자주 마주친다. 서로에게 이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끝내 잊지 못한 두 사람이었는데, 남자가 동창생과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한다.
결혼식 날 쿨하게 축하해주러 간 전처는, 이제 다 끝난 일이라 알려준다는 남자의 '베프'로부터 아이가 죽던 날의 일을 듣게 된다.
남자는 사산한 아내를 두고 술독에 빠지거나 엉뚱한 데서 외박을 한 게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아빠로서 아이의 시신이 보관된 영안실을 지켰던 것이었다. 이미 죽어서 태어난 아들이지만 도저히 혼자 둘 수는 없고, 아내에게 그 사실을 말하자니 안 그래도 충격받은 사람이 평생 짐이 될 슬픔을 겪게 될까 봐 친구에게만 알리고 함구하도록 한다.
그리고 어차피 골이 깊어진 사이니까 차라리 자기가 한심한 놈이 돼서 여자가 미련 없이 새 삶을 살게 해주자고 생각한 것이었다.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된 여자는 한없이 울면서 되뇐다. 그랬구나... 당신은 우리 아이의 마지막 길에 같이 있어 줬구나....
물론 두 사람은 재회한다. 워낙 대본과 연출과 연기가 뛰어나 몰입해서 보지만, 그게 말 못할 일인가? 말하기 어려웠다 해도 이혼의 화룡점정이 될 뇌관인데, 어떻게든 말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드라마를 애정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발상을 '메마른 현실주의'라며 환상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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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그렇지만 솔직히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현실 연인, 현실 부부가 헤어지거나 다툴 때는 그런 인정사정 따위는 과감히 개나 줘 버린다. 상대가 얼마나 끔찍하고 짜증나는 부류인지 가장 독한 말로 맛깔나게 내뱉는다. 어디서 그런 표현력이 나오는지 입에 짝짝 붙는 달변에 말문이 막힐 정도다.
서로를 아는 만큼, 상대방이 어떤 말에 가장 분하고 가슴 아픈지 아는 만큼 취약점을 골라 집중 공략한다. 말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자기 변호를 이어가기도 한다. 마치 자기 말만 하고 귀를 막은 채 머리를 흔들며 아무 말이나 해대는 '초딩'과 비슷하다. 톡이라면 자기 말만 하고 꺼 버리거나, 차단했다가 폭풍이 지나간 다음 다시 접속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한테 준 상처는 곧 자기 아픔이 된다.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자기 상처가 너무나 아프기 때문에, 더 공격을 받고는 못 살 것 같은 공포심 때문에 적의 사정은 돌아볼 겨를 없이, 참호 밖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듯 퍼붓고 만다. 후회할 지언정.
그리고 안쓰러울 정도로 변명을 한다. 아주 작은 노력까지 기울이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많은 것을 희생했음을 증명하려고 애쓴다. 자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당신이 안 볼 때 얼마나 고군분투한 둘 관계의 숨은 공신인지 살을 붙여 나열한다.
왜 그럴까? 왜 현실의 남녀는 사랑한다면서 모진 말을 내뱉고 치사할 정도로 자기변명을 하는가.... 왜 참지 못하고 다 쏟아내는가.... 그들은 드라마도 안 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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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마도 삶과 사랑은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드라마 주인공은 작가의 의도 안에서 헤어져도 다시 만나지만, 현실 남녀는 한 치 앞의 미래 스토리를 모르고, 오직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런 말은 '벼랑 끝 전술'이다. 사랑이 남아 있다면, 모진 말이나 자기변명을 통해 오히려 상대에게 자신을 잡아달라고 외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강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 다시 만나기 싫어 정을 떼기 위해 하는 말일 수도 있고, 미련을 버리려고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하다. 미운 사람에게 상처를 안길 마지막 기회라서 그럴 수도 있다. 자기가 먼저 퍼부어 상대가 자신에게 상처 줄 말을 하지 못하게 기선을 제압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니까.
현실에서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 오직 오늘뿐이다. 그들의 사랑에는 작가도 연출자도 없고, 어떤 플롯이나 기승전결도 예정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안간힘을 쓰는 사람의 구차한 이야기들은, 결국 잊혀야 하는 운명이라면 나쁜 기억으로라도 상대방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고자 하는 슬픈 애원일 수도 있다.
아무튼 현실에서는 잔인하리만치 밑바닥을 보여주는 사람이 많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랑 자체를 치열하게 전쟁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해당이 없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훨씬 멘탈이 강한 사람들이다. 사랑을 무서워하고 상처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더 아우성인 법....
마치 롤러코스터에 타기 전에 조용한 사람이 의외로 의연하고, 호기를 부리며 타자고 했던 사람의 비명과 호들갑이 더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상처는 상처, 아픔은 아픔으로 남을 뿐이다. 우리 삶이 드라마처럼 아름답지 못한 것은 큰 그림을 그릴 줄 몰라서일 수 있다. 작가나 연출자는 없지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그분은 인간의 인연과 생사화복이라는 큰 그림을 전체적으로 보시고 주관하신다.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고, 좋은 결과가 오든 안 오든 상대를 축복하고 내가 좀 더 손해보더라도 상처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
막장 드라마는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르다. 다 쏟아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머물 공간도 없는 법이다. 그래서 사랑했다면 안 좋게 헤어지게 된다 해도 말을 아끼고 삼켜야 한다. 그래야 다시 기회가 있고, 영영 끝난다 해도 슬프지만 아름다운 엔딩이 있는 법이다.
아무 죄 없는 사랑.... '사랑'은 남겨야 하지 않나.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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