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55] “됐어! 내가 사랑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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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성분이 익명을 요구하며 상담메일을 보내 온 적이 있다. 내용을 다 공개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두드러지는 상대방 남자의 특징이 있었다. 사귄 지 단 며칠 만에 무척 즉흥적으로 결혼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내게는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으니 결혼을 해 달라. 한두 달 말미를 줄 테니 기한 내에 결혼을 해 주지 않으면 다른 제2의 후보에게로 장가를 가겠다."
이 여자는 이런 비상식적인 메시지에 황당해할 여유도 없었다. 그녀가 얼른 결혼 승낙을 못하고 뜸을 들이자, 답답한 나머지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 이야기를 진짜로 해버린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남자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었다. 예전에 어떤 여자와 결혼 이야기가 오갔는데, 꽤 오래 사귄 사이였지만 맨 끝에 여자 쪽 부모님의 끈질긴 반대로 끝내 헤어진 안 좋은 추억(?)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혼을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면서 빨리 결정나는 쪽으로 가겠다는 것은 도저히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섣불리 결혼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그 결혼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또한 그런 사람은 뒤집기도 빠르기 때문에 얼마 안 가 번복을 하기 쉽고, 결혼생활의 어려움에 닥치면 결혼에 대해 또 다른 대책 없는 시도를 할 확률이 많다. 즉흥적인 것은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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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본 경우 중 한 여자는 늘 일기를 쓰는 버릇이 있었는데,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면 하루이틀 만에 자기 일기를 통째로 주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싶었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아는 어떤 남자도 여자를 만나서 좀 통한다 싶으면 자기 속의 생각과 과거를 화끈하게 털어 놓으면서, 하루만에 결혼을 말하곤 했다. 그 남자는 상대방 여자에게 의사가 없음을 알려주면 늘 이렇게 말했다.
"됐어! 내가 사랑한다니까."
무슨 드라마의 유명한 대사랑 비슷한데, 엔간히 멋진 남자가 하지 않는 한 효과도 별로 없는 말로, 무척 일방적이고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자세라 할 수 있다. 이 남자는 그렇게 열이 올라 과감히 돌진했다가, 여자가 미적거리거나 자기 쪽에서 아니다 싶으면 이내 돌아서곤 하지만, 다른 여자를 만나면 똑같은 일을 다시 되풀이한다.
이런 남자들은 무척 즉흥적이고 저돌적인 사람들이다. 일기를 줄지언정, 결혼까지 말하는 것은 아마도 여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일 것이다. 왜냐하면 남자는 몸이 원하는 것에 감정을 맡기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반면 여자는 마음이 원하는 곳에 몸을 맡기기 때문에, 빨리 결혼을 말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런 남자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사랑은 오래 재고 신중하게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불처럼 뜨겁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건 사랑도 아니라고 여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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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할리우드 키드이다. 굳이 영화를 즐겨 보지 않더라도, 서구의 자유연애 사상에 많고 적게 물들어 있다. 상업적 계산으로 덧씌워진 당의정과 같은 할리우드 영화에는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오하거나 숭고한 주제보다는 보고 즐길 수 있는 해피엔딩 일변도의 오락성이 주류를 이룬다.
할리우드 영화가 요즘은 크게 기를 못 편다 해도, 젊은이들은 모두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성장한 사람들이고, 할리우드 영화 위에 군림하는 한국의 영화들을 만드는 사람들도 할리우드에 크게 영향을 받은 이들일 것이다. 또 교회의 기복적 흐름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므로 우리 자신의 넓은 길 선호사상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달콤한 낭만과 즉흥적인 사랑이 미덕이 되어버린 요즘, 위에서 예를 든 이들처럼 얼른 납득이 되지 않는 기형적인 만남과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세태의 흐름은 물론 영화 한 편에서조차 자유로울 수 없는 연약한 피해자들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분은 내 모든 것을 아시는 우리 주님뿐이다.
사랑은 하루만에 다가올 수도 있다. 또 하루만에 결혼을 말해서 안 될 리도 없다. 단지 정말 사랑하는 이를 만났다고 생각한다면 그 마음을 잠시 묻어두고 잠잠히 점검해 보면서, 소중히 간직한 채 상대방에게도 얼마간의 시간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과 사랑은 "액션!"과 "컷!"만이 존재하는 영화촬영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