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쟁이들의 섬 크레타
주전 6세기 크레타섬 사람으로 시인이요 철학자였던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는 크레타인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요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딛 1:12)라 했다.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디도서를 쓰면서 이 이방 철학자의 글을 언급하고 있다.
거짓말쟁이들에게 디도는 어떻게 참된 진리의 해결사가 될 수 있었을까?
이렇게 거짓말을 밥 먹듯하고 평판 나쁜 섬 사람들에게 팔레스틴에서 시작된 생명과 진리의 십자가 복음을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사도 바울은 이 어려운 지역에 믿음을 따라 난 자신의 참 아들이요 해결사 역할을 잘 했던 디도를 보냈다. 그리고 짧은 디도서를 통해 그에게 크레타섬 전도의 비결을 알려준다. 거짓말 박사들이 우글거리는 크레타섬 사람들에게 해결사 노릇의 비결은 놀랍게도 "선한 양심"이었다. 선을 좋아하고(딛 1:8), 선한 것을 가르치며(딛2: 3), 선하며(딛2:5),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딛 2:7),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고(딛 2:10), 선한 일에 열심하는 백성이 되게하며(딛 2: 14), 선한 일을 예비하며(딛 3:1), 선한 일에 힘쓰며(딛 3:8), 좋은 일을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딛 3:14) 했다. 그 크레타섬이 정말 변했다. 그 거짓말쟁이들의 섬 크레타에도 복음이 들어갔고 교회가 바로 세워졌던 것이다.
한심한 세계적 작가 루이제 린저의 북한 방문기
북한 공산주체귀족 세습정권은 역사 해석 자체가 거짓말로 일관된 역사 왜곡 정권이요 핵폐기 약속을 수시로 번복한 거짓말 정권이다. 70년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였던 독일의 <루이제 린저의 북한이야기>를 다시 들춰보았다. 루이제 린저는 재독 음악가 윤이상 씨 권유로 보게되었던 북한 모습에 대해 자신의 책에서 북한은 자기가 생각한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고 고백했다. 바로 그것이다. <비판과 정확한 관찰을 습관으로 하는> 이 세계적 작가가 착각으로 일관했을 만큼 주체귀족 세습정권은 2천년 전 크레타섬 사람들 못지않게 거짓말로 탑을 쌓은 정권이다.
성경은 크레타섬 사람들만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은 더럽다고 지적한다(딛 1:15). 루이제 린저는 북한에 가서 1950년 6월, 주일 새벽 유엔군(당시 유엔군?)과 미군이 38선을 넘어 북침했다는 거짓말을 듣고(미군들이 교회 안가고 주일 새벽에 공격?), 북한은 법률상 최고 형벌이 겨우 1년인데 죄수들은 자신들이 직접 석방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단다. 그리고 그 전과자라도 전혀 차별대우가 없단다. 또한 북한은 격리 구금도 없을 뿐더러 육체적, 정신적 고문이 없고 면회 금지, 서신 검열, 구타, 기합, 업신여김이 없단다.
그렇다면 겨우 감히(?) 젊은 지도자 앞에서 졸았다고 많은 고위 관리가 처형 되었다는 북한 방송 보도는 어찌된 일이고 그런 천국을 목숨을 무릅쓰고 탈출하는 수만의 탈북자들은 어찌된 일일까? 모든 부분이 천국인데 여행 자유만 없기 때문일까? 루이제 린저는 가끔 자신이 알게 된 몇몇 관료들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모습을 계속 보았다고도 했다. 바로 사소한 실수에도 처형 당하는 북한 관리들의 스트레스를 루이제 린저가 직감적으로 느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린저의 해석이 가관이다. 그들은 최고지도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란다. 사랑의 상실을 두려워한 것이란다. 정말 북한 공산주체귀족정권이 얼마나 이 대단한 작가를 속이고 철저히 농락했는지 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못지 않은 체제에 대해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선한 양심>이란 없는 것이다.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은 거짓말 정권과 어떻게 맞대응 해야 할까?
참 괴상한 일이다. 요즘 청와대에는 지난 정권 70년 동안 그렇게 많던 개신교인들이 사라져버렸다. 그 핵심 자리는 주로 카톨릭 신자들(대통령, 비서실장, 문체부장관, 통일부장관, 국방부장관 등등)로 채워졌다. 주변 사람들(김기식, 김경수, 전해철)도 카톨릭이요 박영선 의원, 김미화, 김제동 등등은 아예 개신교에서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해 버렸다. 참 희한한 일이다.
디모데와 디도는 모두 사도 바울의 영적 아들들이요 선한 양심을 가진 하나님의 참 된 종들이었다. 그러기에 디모데(디모테오)라는 세례명을 가진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의 선한 양심을 믿는다.
비핵화가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북한 정권의
(1) 참된 <선한 양심>의 회복과 북녁 동포들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2) 참된 <자유의 회복>과
(3) 참된 <인권의 회복>
이 세 가지가 핵심이다.
남북 정상이 만난다. 위대한 인권 변호사 출신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한 민초들은 평생 한번 맛볼 수도 없는 진귀하고 값비싼 요리를 공산귀족들과 희희덕거리며 즐기고 북한 인권 문제에는 조용히 침묵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례명 디모테오인 그의 선한 양심을 믿기 때문이다. 북한 인권과 자유 문제에 침묵하는 변호사가 있다면 그 자는 참 된 인권 변호사가 아닌 2천년 전 크레타 출신 변호사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기에.
2천년 전 크레타섬 사람들처럼 <사람>은 여전히 꼼수로 세상을 보려 하나 창조주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계신다! 창조주 하나님은 항상 옳으신 분이다! Deus Semper Ma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