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를 사랑한다는 것, 담임이라는 자리를 지워가는 것
[유한승의 러브레터]
1. 매주 보내는 사랑의 편지를 크리스천투데이에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왜 저같은 사람한테 이런 요청을 하셨을까, 고민했지만 그보다 더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이 편지의 대상은 원래 제가 섬기던 청년들에게 보냈던 편지이고 현재는 저희 교회 성도들 가운데 일부분, 그리고 제가 알고 지내는 분들가운데 몇몇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인데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는 조금 달라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2.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니 답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사랑은 다를 게 없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전하는 진심, 한 사람에게 전하는 사랑. 그것이야말로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편지는 제가 편지를 보낸 그 모습 그대로 보내지게 됩니다.
3. 사랑의 편지를 보내면서 다시 한 번 사랑에 대해 묵상해 보게 됩니다.
사실 말씀이 사랑입니다. 하나님 당신이 말씀이셨고, 사랑이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가르치셨듯,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입니다.
목회자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둘은 결코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하나님만 봐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 생명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만 본다는 것이 때로는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사람을 정말 사랑하기 위해서는 때론 많은 자기의 것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가 목회를 하고 싶은 타이밍에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하나님은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저도 힘들 때였습니다.
한 번은 화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양쪽 발 모두에 화상이 너무 심해 입원하고 긁어낸 뒤 4주 입원 결정이 났습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주일 설교 부탁을 받았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출타하셔야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5. 병원에 입원했단 말 하지 못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의사 선생님 펄펄 뛰며 말리셨지만 가야 했습니다. 제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 발에 보조기구를 착용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은 먼저 목회자가 순종하는 것임을 보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사 선생님을 설득했습니다. "가야 한다고. 이 자리는 순종하는 자리라고. 그냥 설교할 수 있도록만 해 주시라고". 항생제를 맞고, 몸에 진통제 패치를 붙이고 주사바늘을 꽂은 채 11시 예배 설교를 했습니다.
6. 그 날 설교하면서, 입원중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설교 중 성도들의 시선이 제게 향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높임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주님을 높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그날은 청년들이 소풍가는 날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즐거운 마음으로 나가는 청년들의 마음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교 끝나고 씨익 한 번 웃어줬습니다. 퇴원 후에 모든 일들을 웃으며 나누었습니다.
7. 목회를 시작한 이후 간단한 신장 검사를 제외하고는 아직 기본 건강 진단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여러 장애를 가진 제가 건강진단을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1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검사를 해야겠다 할 때마다 항상 교회에 일이 생겼습니다. 최근에는 어지러움증이 심해져 병원에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지만, 계속 이것 저것 하는 일이 생깁니다.
외출하면 화장실 보는 것이 어려워 물 한 모금 먹는 것도 참는 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입이 마르고 침이 생기지 않아 늘 입술이 터있습니다. 성도들 보기에는 입술 관리도 안 하나 싶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성도들 중 몇몇 분들이 립크림 선물을 해 주십니다. 티를 안 내려 해도 티가 나나봅니다.
목회를 결정하던 해에 오래 사귀던 분과 이별해야 했습니다. 목회를 반대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주변에서 결혼할 사람을 만나라고 권하지만, 제게 누군가를 만날 시간이나 돈은 없습니다. 그래서 독신 목회를 결정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치 교회와 결혼한 것 같습니다.
정말로 교회가 애틋합니다. 우리 주님이 교회를 세우실 때 마음의 반의 반도 안되겠지만, 그 마음이 뭔지 알 듯 합니다.
8. 통장에는 잔고가 언제나 마이너스입니다. 주로 아이들 밥값으로 지출되는 금액입니다. 가끔 "왜 남의 집 애들 밥값으로 그렇게 돈을 쓰냐"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 순간도 남의 집 애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애입니다. 늘 가르치니까요. "우리는 주 안에 한 가족".
설교와 삶이 다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어머니 자기 배 굶어도 저 배불리 먹이신 것처럼, 우리 아버지 자기 배 곯아도 물 말아 드신 것처럼, 제가 굶어도 애들 맛난 것 먹으면 행복합니다. 그 애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9. 그런데 여러분. 위에 내용은 정말 사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은요, 첫째로 식어서는 안 됩니다.
에베소 교회가 무엇이든 잘 했어도 다 소용없었던 것은, 처음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아사왕이 처음 아무리 개혁을 잘했어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사명을 잃어갔습니다.
처음에 잘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아니요. 누구나 잘합니다. 어려운건 항상 마지막입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10년의 임기 동안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하고 아낌없이 퍼주고 싶습니다.
둘째로. 제가 지워져야만 합니다. 사랑에 자기가 들어가면, 사랑이 아니라 '자랑'이 됩니다. 자랑은 결코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자기를 지워가야 합니다.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담임이라는 그 자리를 지워가는 것입니다. 그 자리의 책임성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게 노력했다면 끝까지 노력하되 그러므로 자기를 죽일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완성은 예수의 죽으심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요. 그것이 사랑입니다.
10. 교만하고, 시간이 지나가면 연약해지는 제 스스로를 묶어둘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3년 재신임입니다. 제가 정했던 임기 10년도 길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대통령도 5년이면 길어서 레임덕이 생기고, 처음 마음을 잃는데, 목회자도 다르지 않다 느껴졌습니다.
담임을 시작하고 나서 결심한 이유입니다. 주님의 사역 기간처럼 3년마다 한 번씩 성도들의 재신임을 묻기로 하였습니다.
설교 중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시야 나이가 8살이던데, 우리 교회 이삭(8살, 유년부)이 담임목사 돼도 아멘하는 교회 되실거죠?" 우리 성도들 웃으며 아멘했습니다.
11. 그리고 벌써 다음 달이면 투표가 있습니다. 정기노회와 시찰회에 갔습니다. 목사님들의 기도제목을 나누셨습니다. 모두 교회의 공간 문제들. 그리고 건축들에 대해 나누셨습니다. 참으로 공감가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우리 교회에 필요한 기도제목 같아 보였습니다.
제 기도제목 차례가 되었습니다. 기도제목을 말씀드렸습니다. "재신임 투표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 3년마다 재신임을 묻기로 했습니다. 기도제목은 투표에서 제가 붙는 게 아니라, 제가 없건 있건 아무 상관없이 우리 교회 건강한 교회 되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해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 3년 재신임에서 떨어진다 해서 교회를 휙 떠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다시 주님의 부르심이 특별히 있기까지, 당분간 성도로 돌아가 섬기고 싶습니다.
가끔 성도들 가운데 자기 비움이 마치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하! 물론 새로운 목사님이 불편해하시면 얼른 떠나드리는 센스는 필수입니다.)
12. 사실 이런 이야기를 노회나 목사님들 사이에서 나눌 때는 늘 조심스럽습니다. 훌륭한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들의 삶에 흠을 내기 위한 소리처럼 들릴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목회 철학이나 교회 사역 소개하기도 힘듭니다. 단어 하나 잘못 사용하거나 상대방이 오해해서 들으면 교만하다 소리 듣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런 결정을 내리고 살아가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만 보는 목회자가 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게 맡겨진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