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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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62] 사랑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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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희한한 성격을 가진 사람도 많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다 짝을 만나고 잘도 결혼에 골인하는 것을 보면, 그게 사람 사는 이치인가보다 생각하게 되곤 한다.

역사적 위인들 중 톨스토이나 소크라테스 등의 아내가 상당한 악처로 알려져 있다. 대(大)철학자이자 문호인 이들이 얼마나 많은 고뇌로 살았을지 알 만한 대목이다.

누군가가 솔로몬 왕의 그 많은 왕비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혀를 내두르던 생각이 난다. "아이고... 하나도 골치 아픈데 몇 명을 거느렸다고? 정말 솔로몬은 모든 성경의 인물 중 최고야, 최고! 정말 존경스러워!!"

정말 세상의 모든 배우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구석이 있어서, 어찌 생각하면 골치 아픈 존재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사랑하긴 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그녀. 주위를 둘러보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반론도 있지만) 순수한 감성으로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았던 비행사이자 최고의 작가이고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여자와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대비해 보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그는 프랑스를 떠나 미국에 망명해 있을 때, 대표작인 <어린 왕자>를 썼다. 나치에 점령당한 조국에서 나와 미국이라는 세상으로 옮겨간 생텍쥐페리는, 조국에 대한 책임과 자책감으로 늘 우울해 했다고 한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왕자는 그 자신의 모습이며, 어른의 모습이지만 왕자를 이해하는 필자, 즉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도 역시 실제로 그런 일을 경험했던 그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왕자는 슬플 때 노을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누구든 슬퍼지면 해가 지는 걸 보고 싶어지잖아...."

어린왕자의 별은 아주 작아서, 의자를 조금만 끌어당기면 언제든 지는 노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때는 마흔 세 번이나 노을을 본 적도 있는 걸...."

생텍쥐페리가 그 글을 쓸 때의 나이는 마흔 세 살이었다 한다. 분석가들은 그가 두고 온 자기의 별 프랑스를 그리면서 이 글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이 정오일 때 해가 지는 나라 프랑스. 그의 별에서 의자를 끌어당기듯 단숨에 달려갈 수 있다면 노을을 볼 수 있는 그리운 조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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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의 별에는 장미꽃이 남아 있었다. 이 대목은 불어로 보면 더더욱 화려한 문체로 돼 있다는데, 그 꽃은 허영심 많고 새침한, 무척 멋 부리는 꽃이었다고 왕자는 말한다. 꽃을 사랑한 왕자는 양이 꽃을 먹어버릴 수 없도록 덮개를 씌워줬지만, 여전히 염려스럽기만 하다.

왕자는 여우를 통해 꽃의 의미를 발견한다. 처음엔 들판에 자기 꽃과 똑같은 장미가 오천 송이나 핀 걸 보고 놀랐지만 결국 자신의 장미는 자기가 공을 들이고 길들인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임을 깨닫는 것이다.

장미는 생텍쥐페리가 조국 프랑스에 두고 온 아내 콘수엘로 승신(Consuelo Suncin)이라는 여자다. 물론 결혼 전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여자가 있고, 여러 가지 생각의 투영일 수도 있지만 장미의 행동을 살펴보면 그의 아내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을 운명적인 애틋함으로 미화하는 자료도 있지만, 다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본다. 콘수엘로는 지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이었지만 무척 다혈질이고 충동적인, 그래서 꽤 신경질적 여성으로 알려져 있다. 자주 다툼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갑작스런 전화로 자살기도 중임을 알리기도 하고, 싸움을 말리는 남편 친구의 뺨을 때릴 정도였다니, 보통 여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들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한다. 또 생텍쥐페리는 집필과 비행 등을 이유로 결혼 7년쯤의 시기에 1년 정도의 별거를 요청했는데, 그 기간이 5년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생텍쥐페리는 그녀를 무척 사랑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장미에 대해 추억하고 깨닫는 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에는 엄청난 아이러니가 뒤따르는 법이다. 상대방이 내가 싫어하는 부분을 많이 갖고 있는데도, 그런 부분들이 사랑을 멈추게 하지는 못하는 법이니까.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출간하여 그녀에게 보내면서 이런 말을 적었다고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장미는 당신이오. 나는 당신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것 같소."

그는 다분히 냉정하고 격정적이며 자기과시적인 자기 아내에 대한 생각을, 어린 왕자의 말을 빌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그 꽃이 하는 말을 가지고 판단할 게 아니라 그 행동을 보고 판단했어야 하는 건데, 내가 도망치지 말았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 그 하찮은 꾀 뒤엔 애정이 숨어있다는 걸 알았어야 했어. 꽃들이란 그렇게 모순 덩어리거든! 하지만 나는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할 줄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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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사랑하는 일에는 정말 대단히 절묘하고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 누구도 그것을 잘 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것은 늘 상대적인 것인데다, 백 사람에게는 백 가지의 각기 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이니까....

언제든 곁에 있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을 때는 그 사람을 다루는 법에 늘 서투르다. 하지만 그 사람을 떠나 완벽하게 혼자 남으면, 그때는 알 수 있다. 자기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는 나를 사랑했던 것인지, 혹은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 그리고 겉모습 속에 숨겨진 그의 진심이 어떤 것이었는지, 또 나의 마음은 무엇이었는지 조용히 들여다 볼 수 있다. 어린 왕자처럼.

<어린 왕자>의 일인칭 기록자 '나'는 왕자가 자기 별로 돌아갔다고 믿고 있다고 했지만, 왕자는 지구에서 뱀에 물려 죽었다. 그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작가 자신도 전투 중에 마지막임을 감지하고 출정했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자신도, 자신의 분신도 두고 온 장미꽃에게 끝내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사랑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그녀, 혹은 그 사람....

그때는 어리고 어리석어서, 지금은 다른 세상을 소유했기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 아직 별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뜻을 접는 것만이 사랑을 이루는 길일까.

그러나 자신의 뜻이 사랑을 눈 멀게 한다. 떠나기 전에는 장미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아니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랑은 엇갈리고 마는 것이다.

지금 사랑하지만 뜻대로 안 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잠시 그 별을 떠난 심정으로 마음의 여행을 나서 보라.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나서기 전에.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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