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받은 여러분, 서로를 용납하며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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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승의 러브레터] 3년 재신임날의 설교

▲텅 빈 벽에 다시 걸린 의자 그림.

▲텅 빈 벽에 다시 걸린 의자 그림.

샬롬, 오늘은 '3년 재신임'이 있던 날입니다. 이 날을 잊지 않고 우리 모두 기억하기 위해, 제 설교문을 조금 수정하여 사랑의 편지로 전해드립니다.

오늘은 유타 한인 장로교회에서 청년들이 방문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함께 예배드리게 된 청년과 유타 한인 장로교회위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1. 역대서 말씀 가운데 많은 왕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던 왕의 자리에 대한 표현은 '대신하여'였습니다. 그러나 그 대신하여 있는 자리가 대표하여 있는 자리로 이해되기 시작할 때, 왕의 마음은 변질되었고 결국 공동체도 무너졌습니다.

2. 2015년 5월 10일, 둘째주일 첫 담임 설교를 시작한 이래 총 1,114일째 날이 되었습니다. 만 3년 하고 17일째 되는 날입니다. 10년 임기를 다짐하며 그 중간 과정에서 또 3년 재신임을 자체적으로 하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제 스스로가 이 자리의 주인이 아니요 누군가를 대신해 있는 자리임을 잊지 않기 위함입니다.

3. 재신임 투표가 있기 오래 전부터 청빙위원장이셨던 분들에게 관련한 기준이 무엇인지 전혀 묻지 않고, 통화도 하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더불어 설교 준비를 하면서 과연 오늘 제가 설교를 여러분에게 전하는 자리에 앉는 것이 맞는가 깊은 고민을 했습니다.

다른 목사님이나 우리 교회 전도사님께 부탁을 드릴까 했지만,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설교를 하는 것은 상황과 상관없이 맡겨주신 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역할이요. 본을 보여야 할 모습임을 다시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맡은 자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충성인데, 때로 자기 욕망대로 내려놓거나 공동체를 떠나면서도 그것이 바른 순종이거나 내려놓음이라 착각하여 자기 욕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많은 모습들이 교회에 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남겨진 이들에게 상처임을 전혀 모른 채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설교 시간에 여러분이 저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에만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된 원고를 읽어가며 설교할 예정입니다.

▲텅 빈 벽.

▲텅 빈 벽.

4. 지금까지 이 자리에서 설교해 왔던 제가, 스스로를 돌아보며 '처음 마음'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지도 몇 개월 안 된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가, 2014년 2대 담임 목사님께서 2개월여만에 그만두시면서 생겨난 교회의 충격 가운데 느닷없이 설교자로 서야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므로, 제 마음대로가 아닌 교회의 주인 되신 주님의 말씀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주신 말씀이 2014년 12월 14일, 요한복음 13장 36-38절이었습니다. 그 본문은 제 선택이 아니요, 2대 목사님께서 하셨던 마지막 주일 설교의 바로 다음 구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의 설교 제목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송구영신 예배에 주님은 '너는 나를 따르라' 라고 말씀하심으로,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당시 꼭 필요했던 말씀을 들려주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사랑과 참 공동체의 가치를 알려주셨습니다.

5. 그로부터 지금까지 경력으로나 학력으로나 무엇으로나, 가장 떨어지는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여러분과 주어진 말씀 앞에 순종하며 우리 공동체에 주신 하나님의 뜻과 의미를 찾아오는 훈련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부족한 제가, 말씀의 인도하심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고, 오랜 기간 사람과 조직, 권력다툼으로 상처입은 우리 교회가 다시 일어서는 길은 말씀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6. 그동안 함께 은혜를 나누었던 요한복음 말씀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8-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주님께서는 자신을 배신한 유다와 그 무리들을 향하여 당당히 스스로를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말씀하시기를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배신하건 안하건 상관하지 않고, 단 한 사람도 잃고 싶지 않은 마음뿐입니다. 자신을 배신한 유다나 자신을 대적하는 사람들까지 용납의 대상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 용납의 대상에 들어 오늘 여기에 있습니다.

7. 그런데 용서 받은 여러분, 여러분은 서로를 용납하고 살고 계십니까?
용납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여러분의 죄를 주님은 가리워 주시고 용서해 주셨음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여전히 타인의 죄를 드러내면 속이 시원한 사람은 아니십니까?

8. 지난 5월 5일, 쿰카페 갤러리가 오픈했습니다. 본래 갤러리로 활용할 생각이 없었으나, 카페가 오픈하면서 갤러리도 동시 오픈하게 되고, 다음달 포도나무 주일에 만나게 될 허단비 선생님의 작품 전시회가 17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림이 걸려있을 때는 몰랐던 그림들의 소중함은 그 그림들이 철수된 17일, 커다란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9. 모든 벽에 있던 커다란 그림들이 사라지자, 공허한 하얀 벽들만 드러났습니다. 그림이 사라지자 그림을 지탱했던 앙상하고 가녀린 와이어들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렸고, 중간 중간 박힌 커다란 못자국들은 흉한 몰골을 드러냈습니다. 그제서야 그림 하나가 그들을 덮어줬을 때, 앙상하고 가녀린 것들, 커다란 상처난 구멍들, 공허한 마음들..., 모두가 가리워졌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흔들리는 와이어.

▲흔들리는 와이어.

10. 저는 갤러리 한편 못자국난 벽을 바라보며 큰 구멍에 손가락을 대어보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뜨거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못자국난 구멍이야말로,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으신 흔적이 아닌가.... 이 예수의 몸이 우리도 모르는 상처 나고 공허한 심령위에 계셔서, 오늘 우리 역시 의미있는 한 폭의 그림들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 그러한, 오늘 우리가 의미있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러한 구멍이 내게도 가득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11. 텅 빈 갤러리에 원래 있었던 그림 하나가 걸렸습니다. 그것은 류희선 집사님께서 본인의 돈으로 구매한 의자 그림이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림의 가격이 30만원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의미 없어 보이는 그 그림이 뭐라고 30만원이나 한단 말인가. 그러나 모든 그림들이 철수되고 나서 훤히 드러나버린 커다란 흰 벽의 공허함.... 앙상하고 가녀린 와이어, 상처입은 못자국의 의미를 깨닫고 난 뒤, 의자 그림은 두 편의 시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12. 먼저 '낡은 의자를 위한 저녁기도'라는 시의 일부분입니다.

나는 왜 당신의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당신의 의자에만 앉으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는지
나는 왜 당신의 의자 한 번 고쳐주지 못하고
부서진 의자를 다시 부수고 말았는지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이었을 뿐
작고 낡은 의자에 한번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었을 뿐

13. 시인은 인생은 낡은 의자 하나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날 돌아보니 그 의자는 낡아버렸고, 나는 왜 누군가의 의자가 되어주지 못했는가 후회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잠시 쉴 수 있는 의자를 고치기는커녕, 나는 왜 그 의자마저 부수었는가 후회한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보고 돌아보니, 낡은 의자 하나 차지 하기 위해 사람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텅 빈 벽처럼 공허함만 남고, 앙상한 와이어들만 흔들리고, 상처입은 못자국만 어지럽게 깊숙이 박힌 모습을 보고서야.... 내가 왜 그들의 그림이 되어주지 못했는가, 후회한 것입니다.

14. 반면 용서의 의자라는 시 일부분입니다.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절대 고독의 의자 하나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

이 시인이 사는 곳에는 용서의 의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의자는 지구상에 단 하나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의자에 앉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곳을 다니고 서성이느라 이 용서의 의자는 고독합니다.

▲공허한 벽의 모습.

▲공허한 벽의 모습.

15. 이 의자에는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누구나 용서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는 의자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앉지 않는 고독한 의자랍니다.

의자에는 못이 튀어나와 있습니다. 그 못 때문에 편안하지 않습니다. 시인은 그 아픔을 감내하고 앉는 자만 용서할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불편한 이 자리에 있을 때,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게 되고 용서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 자리는 눈물이 나는 자리, 그러나 외면당하는 의자.

16.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불편하다 해서 용서의 의자를 버리지 말고, 눈물난다 해서 용서의 의자를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가 용서받게 됩니다.

17. 두 개의 시는 같은 의자를 보고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말하는 듯 합니다. 하나의 의자는 빼앗고 빼앗으려다 낡아버린 의자요, 하나의 의자는 힘들고 불편하고 눈물나와 앉기 힘든 용서의 의자입니다. 이토록 의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이 두 개의 시를 쓴 사람은 한 사람, 정호승 시인입니다.

의자를 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한 듯 하지만, 사실은 모두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입니다. 너를 위해 가난한 의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나는 왜 너의 의자를 뺴앗는 욕심의 삶을 살았는가, 나아가 남은 그 의자마저 내 감정을 못 이겨 부숴버리고 정신차려 보니 인생은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기 위해 너를 잃어갔던 것입니다.

너를 잃고 나서 보니 드러난 것은 오히려 깊게 파여있었던 내 상처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앙상한 마음이요..., 여전히 공허하고 텅 빈 마음뿐입니다.

18. 사랑하는 여러분. 2015년 5월 10일 첫 담임 설교를 시작한 이래, 1,114일이라는 무수히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교회는 오래 전부터 낡은 의자들을 빼앗기 위해 살아온 아픔들이 못자국 난 채 여기저기 모두에게 남겨져있습니다. 게다가 여러분들은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깊숙이 박힌 상처들과 아픔들이 있습니다. 서로 뺏고 빼앗기며 상처주던 의자, 내 의자가 아니라 타인의 의자를 뺴앗았던 날들.... 그 가운데 여러분 모두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어쩌면 남아있는 여러분들은 뾰족한 못자국이 눈에 훤히 보이는 용서의 의자에 옹기종기 걸터앉은 채 여기까지 왔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있지만 여전히 안심하고 앉을 수 없는 의자, 불편하게 걸터앉아 삐걱대는 소리가 나는 의자, 편안하게 앉아 있고 싶지만 앉을수록 불편하고 아프게 찔러대는 의자.... 그러나 놀랍게도 그 의자에 앉는 순간,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를 위로하시고 감싸주시서 여기까지 오신 것을 축복합니다.

19. 그런 우리들이 정작 돌아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지나자 다시 그 용서의 낡은 의자를 뒤로 한 채 다시 너의 의자를 탐내고, 서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싹트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부서진 의자를 또 부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걸어온 길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의자가 되어주기보다, 그의 의자를 탐하는 삶은 아니었는가.

20. 사정없이 그가 앉은 의자를 부수어 떠나게 하거나 내가 앉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의자에 앉아본다 한들, 알고 계십니까? 그때 여러분의 인생도 공허하고 텅 빈 하얀 벽과 같은 인생이요,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리는 앙상한 와이어요, 깊게 패인 못자국들이 여기저기 흩어질 뿐임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나를 가리워 준 것은 오직, 깊게 패인 못자국을 가진 채 오히려 우리를 가리워주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는 고독한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의 의자가 되어 우리를 용납해주셨던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21.그렇게 제 스스로와 교회를 회고하며, 생명샘교회의 1,114일간의 목회가운데 이제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마지막 설교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당부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십시오.

산다는 것은 결국... 낡은 의자 하나 차지하는 일일 뿐.

이제 여러분 모두 일어나 여전히 고독한 용서의 의자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서로에게 용서의 의자가 되십시다.

유다를 포함한 모든 배신한 사람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마저 사랑으로 품기 원하셨던 그 용서의 의자에 우리 모두 앉으십시다. 그때 다시 여러분의 모든 상처와 공허함 연약함마저 의미있는 삶으로 승화되는 주님의 은혜가 임재할 것입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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