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교제, 상대를 존중한다면 연인의 호칭부터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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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63] 말의 기술, 사랑의 기술

1

"여보, 요즘 당신 건강이 걱정이에요."

"역시 당신이 제일이야!"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이 약 제때 잘 챙겨드세요."

흔히 접할 수 있는 라디오 광고의 한 대목이다. 광고가 현실과 똑같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실제 생활에서 이런 식으로 말을 주고 받는 부부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아스럽다. 더군다나 주위에 아무도 없고 둘만이 대화할 때라면 더더욱.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만나는 많은 문제들 가운데, 매 순간 사용하는 '언어'는 쉽게 넘길 수 없는 중요한 문제다. 앞에서 예를 든 평등하지 않은 말투는 남존여비 사상의 잔재라고 볼 수도 있고 우리의 자연스런 문화이자 전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언어의 관계가 실제 관계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우월이 관계의 우월이고, 언어의 형태가 실제 관계의 축소판이다.

여기 헤어진 연인이 있다. 그들이 각자 결혼한 뒤 어느 날, 우연히 재회한다. 아마 모르긴 해도, 애초에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면 예전의 친밀했던 그런 말투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잘... 지냈어요?"

"네... 잘 살죠?"

뭐 이런 정도의 어색한 존댓말이 나오기 쉬울 것이다. 예전의 닭살 돋는 코맹맹이 소리 같은 건 상상할 수도 없다. 이렇게 말 몇 마디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새롭게 정립되는 것이다. 즐거웠던 시절이나 아름다운 추억도 마치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렇게 말은 사람과 관계의 성격을 규정짓고 늘 주변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편하게 연애하던 이들에게도, 혼담이 오가고 양가의 부모를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겪는 혼란 중 하나가 이런 '말'의 문제다. 편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어른들 앞에서는 바뀌어야 하니 말이다.

그것도 남자는 하던 대로 하고 여자만 갑작스레 높임말을 써야 하는 불공평한 경우가 많다. 여자들은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들 것이고, 남자들은 괜히 어색하고 불편할 것이다. 격식을 좀 차리는 시댁에서라면 더더욱 말이다.

2

남자들의 자아도취적 사고방식에 대해 쓴 '3초만 쳐다보면 오해하는 남자들의 심리'라는 칼럼을 모 포털 사이트에 연재할 때, 어떤 여성 네티즌이 질문을 달아 놓았다.

"저기요, 꼭 대답해 주세요. 울 애인은 못 생겼어요. 근데 매일 물어요. 자기 외모가 어떠냐고... 참 힘들어요, 대답하기가. 솔직하게 못 생겼다고 하면 속상해할 것 같고, 거짓말을 하자니 차마 안 나와요. 제가 거짓말을 잘 못한답니다. 맘 크게 먹고 거짓말을 해야 하나요? 매번 얼버무리기가 너무 힘들어요. 항상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말해야 잘 하는 걸까요?"

정답은 없겠지만 나는 거기 이런 답을 달았었다.

"어렵군요. 만일 저라면, '솔직히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라고 확실히 말한 뒤, '하지만 밉상은 아니야. 내 타입이야, 난 너무 반반한 사람 별로더라...' 등의 말을 붙일 것 같네요."

그 여성은, 그러면 되겠다며 만족한 듯 했다.

말이란 어떤 단어와 어떤 억양을 쓸 것이냐에 따라 무척 변화무쌍한 효과를 내지만, '말의 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다. 다시 말해 몇 가지의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할 때의 순서를 뜻하는 것이다. 위의 대답에서 어순을 바꿔,

"당신은 내 타입이고, 밉상은 아니야. 근데 솔직히 사람들이 말하는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

이렇게 마무리한다면, 잘생기지 않았다는 말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을 수도 있다. 말의 방법, 순서, 적절한 타이밍을 잘 활용하면 충고하는 내용에도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3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문제다. 상대를 존중한다면, 호칭부터 바꿔야 한다. 관계를 규정짓는 것이 호칭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교수님이라고 부르면 학생이 되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제자가 되는 이치다. 연인이나 부부끼리도 마찬가지다. 자기, 여보, 누구 씨, 야, 아무개야, 누구 엄마, 당신, 그대.... 모든 호칭은 저마다 색깔이 있고 성격이 있어서 호칭 이후에 나오는 모든 말에 영향을 미친다.

공식 석상에서조차 남편을 '오빠'라 부르거나 아내에게 '야! 야!' 이러는 사람들도 꽤 있다. 예전에는 자기 아내를 '우리집 부엌데기 혹은 밥쟁이'라고 표현하는 중장년층도 있었다. 그런 말과 호칭을 사용할 때마다 관계도 그런 쪽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오빠와 동생 같은 모호한 관계, '야!' 라고 불러도 되는 상하관계, 또 상명하복의 주종관계까지....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처럼, 언어에는 아주 민감한 구석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 말은 어휘가 많고 대상에 따른 변화가 다양해서, 더더욱 쓰는 사람의 기술이 필요한 것 같다. 집에서 부부가 쓰는 말은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서로 반말을 하는 부부는 아이들에게만 존댓말을 쓰도록 하기가 쉽지 않다. 자녀가 생기기 전부터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그래서 말의 기술은 곧 사랑의 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말,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는 말,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말'....

언어의 문제를 소홀히 넘기지 말자. 만나고 사귀고 함께 살아가는 순간 순간 쓰이는 진실하고 사려 깊은 말과 표현들이 결국은 사랑을 가져다 주고, 행복을 완성해 주는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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