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박사의 창조론 다시 쓰기
2.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과 올바른 창조론(2)
(2)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
카발라는 히브리어로 전승(傳承)이라는 뜻이다. 또한 카발라는 유대인들의 신비주의, 영성, 또는 마법(魔法)을 가리키는 뜻으로도 쓰이며, 카발라를 연구하거나 믿고 실천하는 자를 카발리스트라고 한다. 여기서 쓰인 카발라의 의미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토라 이외에 따로 구전(口傳)으로 전해준 전승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카발라를 구전 토라라고도 한다. 토라의 신비적인 전승을 의미하는 고대 카발라는 창조 이전에 아인 소프(Ein sof)가 홀로 계셨다고 말한다. 아인 소프는 무한자(無限者)이며, 현현(顯顯)하지 않는 음(陰)존재라는 의미이다. 무한자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인 소프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을 창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존재이다. 어떤 카발리스트는 무한자를 3가지 -아인(Negativie Existence: 非存在), 아인 소프(Limitlessness: 無限 存在), 아인 소프 오르(Limitless Light: 無限 빛의 存在)-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 경우에는 가장 하위에 있는 아인 소프 오르가 빛을 발출하는 역할을 하므로 창조자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엄격하게 검토해보면, 무한자의 개념은 동시적으로 다른 존재와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카발라에서는 창조자를 아인 소프 오르가 아닌 데미우르고스(demiourgos)로 보기도 하나, 이것은 플라톤(BC.428경-348경) 철학에서 빌려온 개념으로 보인다. 카발라에서는 창조를 보이지 않는 창조자(음존재)로부터 빛이 발출되어 보이는 (양)존재가 되었고, 이것이 우주만물을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카발라는 하나님이 창세의 첫째 날에 창조하신 빛을 하나님으로부터 발출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빛에 신비적 의미를 덧붙이고 있다.
토라와 카발라가 창조자의 존재와 빛에 대한 해석을 서로 달리하는 이유를 굳이 묻는다면, 그 대답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전달한 말씀을 모세가 문자와 구전으로 나눠 전해준 것의 해석이 서로 달리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카발라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고대의 것일수록 신비적인 서술이 많아 논리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다. 카발라에 의하면 태초에 창조자인 아인 소프로부터 10가지 빛이 발출되어 물질적 우주기 형성되었다. 그 빛들은 아인 소프에서 발출된 10가지의 세피로트(sefirot)로 불린다. 그것들의 속성이 상호작용하여 대우주가 형성되었다. 대우주는 10개의 세피로트에 의한 생명나무로 표현되고 있다. 카발라는 대우주를 생명나무의 원리에 따라 작동하는 생명체로 본다. 각 세피로트를 조금씩 나눠 가진 인간은 소우주이다. 그런데 창조에 문제가 생겼다. 발출된 빛들에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빛들을 담은 그릇들이 깨지거나 뒤집어져서 빛이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사라졌던 빛들에서 영혼과 물질들이 생겨났고 대우주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고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불완전한 상태이다. 카발라에 의하면 아인 소프로부터 세상으로 발출된 빛들은 원천인 아인 소프에게로 되돌아가야 한다. 카발라의 생명나무는 발출되었던 빛이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 카발라에서 가장 기본적인 10가지 세피로트와 생명나무에 대한 설명은 카발리스트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 가운데 현대 카발리스트인 도리얼(Dr. M. Doreal)이 가장 이해하기 쉽게 10가지 세피로트를 설명하고 있다. 참고로 그가 제시한 '세피로트 설명도표'와 '생명나무 그림'을 보면 아래와 같다.
생명나무 그림을 보면 3개의 기둥과 사계(四界)의 모습이 나타난다. 3개의 기둥으로는 가운데에 무극인 중심 기둥(미들 필라)이 있고, 왼쪽에는 음극으로 정의를 세우는 기둥, 그리고 오른쪽에는 양극으로 자비를 세우는 기둥이 있다. 4계는 10개의 세피로트를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나눠서 구분한다. 세피로트를 발출한 아인 소프는 1번 케테르 위에서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이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3가지로 구분한다면, 밑에서부터 아인 소프 오르-아인 소프-아인의 순서로). 1-3번 세피로트로 구성되는 첫째 삼각형 아찔루트는 천상의 영계(靈界)를 나타낸다. 아찔루트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 밑에 4-6번 세피로트로 구성되는 둘째 삼각형 브리아계는 창조계 즉 신적 마음을 나타낸다. 또 그 밑에 7-9번 세피로트로 구성되는 셋 째 삼각형 예치라는 천사들이 거주하는 아스트럴계(행성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0번 세피로트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물질계(아시아)이다. 그 사이에는 22개의 길이 연결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나타나는 22개의 길은 각각 히브리어의 22개 알파벳 순서대로 연결된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창조의 빛이 10개의 세피로트 번호 순서대로 내려왔으므로 각 세피로트의 숫자에 각 세피로트의 속성이 결합되었다고 본다. 또한 카발라는 창조자가 10개의 숫자와 22개의 히브리어 알파벳으로 세상을 창조했으므로 그것들에는 신성한 힘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영혼은 그 힘을 잘 이용하면 상승의 길을 따라 다시 천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기록되지 아니한 토라로 인정되는 카발라는 결국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카발라는 동양의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이나 주역의 64괘와 같이, 사실여부와는 상관없이, 고대 히브리인들이 관념적으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대교의 카발라는 인도 힌두교의 전승이 불교에 전해진 것과 같이 기독교에도 영향을 미쳤다. 카발라의 세계관은 고대 유대교의 신비주의 분파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었으나, 1세기에는 예수를 메시아로 추종한 무리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카발라를 알면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자들도 없지 않았다고 환다. 그들은 그 이유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나오기 전 어린 시절에 고대 카발라를 배웠고, 그의 비밀 전승을 그들에게 따로 전해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사실상 가장 최초의 기독교인들이었으므로 메시아닉 크리스천(Messianic Christians) 또는 기독교 영지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그런 영향을 받은 흔적은 사도 요한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서와 다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카발라를 모르고는 아예 해석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에서 세대주의적 종말론자들이 요한계시록을 엉터리로 해석하면서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있다. 사실 종말론에서 가장 중요한 종말의 시간표는 인간들이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창조론에서 하나님의 창조 시간표를 안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이것들을 안다고 떠벌리는 자일수록 알고 보면 이단적 크리스천이다.
유대인들 중에서 카발라적으로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던 초기 그리스도인 집단은 역사적으로 기독교 교부들에 의해 영지주의 이단으로 몰려서 탄압을 받고 쇠퇴했다. 이들은 비밀 교단의 형태로 겨우 명맥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1945년 이집트 마그함마디와 1947년 이스라엘 쿰란 동굴에서 고대 문서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을 계기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현재에는 유대인 하시디즘(Hasidism) 운동의 근거 이론으로 발전되고 있는 한편, 서양에서는 운명을 점치고 질병을 치유하는 민간 비술(祕術)로 부활하고 있기도 하다. 타로 카드로 점을 치는 것이 그런 예이다.
스페인의 유대교 랍비였던 모세(Moses de León, 1250-1305)가 이전까지-주로 2세기 랍비 시몬 바 요카이(Shimon bar Yokai)-의 카발라를 집대성하여 『조하르, Zohar』를 편찬했다. 그에 의하면 모세의 토라(Torah) 오경을 이교도들로부터 보호하고, 잘못 해석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은밀하게 비전(秘傳)된 것이 고대 카발라다. 카발라에서 주장하는 토라 해석의 첫 단계는 표면적인 말의 의미를 연구하고, 둘째 단계는 비유나 은유적인 의미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태교 랍비들의 해석인 미드라쉬가 셋째 단계이고, 마지막 넷째 단계가 신비적인 토라의 전승을 해석한 카발라다. 유대인들은 문자로 된 토라를 해석하는 3단계를 넘어 마지막 4단계의 토라 해석을 카발라로 생각한다. 유대교는 토라와 랍비들의 토라 해석(미드라쉬)을 집대성하여 만든 탈무드, 그리고 카발라를 신앙의 세 기둥으로 믿는다. 그러므로 토라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카발라를 모르는 사람의 토라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계속).
※ 허정윤은 역사신학을 전공했다. 올바른 창조론을 쓰기 위하여 신학과 과학을 통섭적으로 연구했다. 최근 『과학과 신의 전쟁』을 출판하여 과학적 무신론과 과학적 유신론을 비교 검토하면서, 각종 진화론을 철저히 비판했다. 현재는 사회활동에서 은퇴하여 올바른 창조론의 각론을 쓰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