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스승 바울을 쫓았던 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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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그레데에서

▲디도의 교회. ⓒ한 목사 제공

▲디도의 교회. ⓒ한 목사 제공

수년 전 아테네에서 유럽 목회자 세미나를 마친 후 크루즈를 타고 그레데를 방문했다. 처음 방문하는 길이었고, 크루즈를 타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호기심이 컸다. 사람은 누구나 처음 경험하는 일에는 흥분과 호기심이 함께 하는 법이다.

크루즈는 몇 층, 그리고 어떤 위치에 있는 방을 선택하느냐에 때라 가격이 달라진다고 한다. 좀 더 많은 것을 경험해 보길 원해, 밖을 볼 수 있는 창문 있는 방을 선택했다.

그러나 저녁 8시에 떠나는 편이었기에, 기대와 달리 온통 칠흑 같은 깜깜함 외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창문 있는 방은 환할 때 밖의 풍광을 즐길 수 있지만, 밤에는 전혀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경험하고 또 배워야 하니, 얼마나 더 배워야 할까?

보통 이런 배는 침대칸에서 깊은 잠을 자고 나면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계획돼 있다. 그 큰 배를 타고 8시간이나 가야 도착할 정도로 그레데는 멀리 떨어진 섬이다.

이런 여정을 통해 도착한 그레데는 큰 섬이었다. 이곳의 지명들이 성경에 나오는데, 살모네와 라새아와 뵈닉스 항이다. 이곳을 전도자들이 2천 년 전 작은 배를 타고 드나들었으니 참 대단하다 싶다.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렇게 멀리 떨어진 섬에 처음 도착한 사람은 누굴까 싶다. 또 어떻게 육지에서 크루즈로 8시간을 가야 할 정도로 먼 섬을,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에 주민들이 도착했을까?

처음 이곳에 주민이 살게 된 때는 B.C. 8천년 전이요, 그 때 미노아 문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 후 B.C. 1800-1500년경 크레타 문명이 꽃을 피웠고…, 이 사람들에 의해 블레셋에 철기 문화를 수출했다고 한다.

내륙을 가로질러 선교 탐방을 하였다. 특히 라새아 항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2천년 전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갔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슴에 묻고 방문자들을 침묵으로 맞이했다.

그곳에서 점심을 먹고 그 디도가 사역한 지역을 탐방했다. 현재 그곳에는 거주하는 사람이 없고, 디도의 교회만 유적으로 쓸쓸하게 남아 있었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드나들며 복음을 들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찡하다.

그곳을 본 후 숙소가 있는 시내로 돌아와, 디도의 기념교회를 탐방했다. 그 교회 역시 아름답게 치장하고 있다. 제단 앞 편에 화려하게 치장한 유리 돔 안에 디도의 유골함이 모셔져 있었다.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딛 1:12)”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그만큼 젊은 디도가 그레데에서 사역하는 일이 힘들고 어려웠겠다 싶다.

학자들마다 약간씩 다르겠지만 톰슨은 66년 초에 디도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가 마지막으로 기록한 것이 디모데후서인데, 그 직전에 기록한 서신이 디도서다.

▲디도의 유골함. ⓒ한 목사 제공

▲디도의 유골함. ⓒ한 목사 제공

디모데후서 4장 9-13절 말씀을 음미하여 보았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디도를 달마디아로 보냈다고 했는데, 달마디아는 지금의 유고슬라비아를 의미한다.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느니라(딛 3:12)”.

이 때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나온 후의 일이라고 어느 성서학자는 밝히고 있다. 바울은 그레데에서 사역하는 사랑하는 제자 디도를 니고볼리로 불러냈다.

바울은 디도를 니고볼리로 불러 겨울의 몇 달을 함께 보내고 싶어했다. 그 만큼 바울은 디도 보기를 소망했다는 의미다.

세상에서 누군가로부터 만나고 싶어 하는 대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큰 복이다. 바울은 디도를 지극한 마음으로 아끼었다.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고후 8:23)”.

그는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보고하기도 했고(고후 7:5-7),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모금을 위해 고린도에 가기도 했다(고후 8:6-24). 바울을 위해서라면 시간이나 몸을 사리지 않았던 믿음직한 제자였다.

이상한 점은 이토록 디도를 사랑했는데도, 사도행전에는 디도의 이름이 없다는 점이다. 그 이유에 대해 어느 학자는 디도는 누가와 친족 간이었기에, 일부러 디도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런데 니고볼리는 기원전 31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안토니우스와의 전투 중 야영지였고, 전투에서 승리를 기념하여 황제가 악티움 경기가 열리도록 주선한 곳이기도 하다.

이 땅의 장소들은 누가 그곳에서 무엇을 하였는가를 역사는 기록한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사건을 음미하고 생각하게 한다.

디도는 바울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한 진정한 제자다. 세상은 변화무쌍한 곳이기에, 작은 일로 인해 관계가 변하고 틀어지는 일들이 많다.

세상에는 데마 같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스승이 복음 때문에 체포되고 옥에 갇혀 순교당하게 됨을 분명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와 동행하고 그를 변호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이 재차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당할 때, 그를 가까이한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되었을까? 아마 디모데후서 4장에서 언급한 데마, 그레스게, 디도, 누가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데마는 스스로 떠났고, 그레스게와 디도는 바울의 명을 받고 떠났다.

떠났다는 것은 이들은 스승 바울이 체포됐다는 사실을 알고 그리스나 아시아로부터 그 먼 길을 달려왔음을 의미한다. 모두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도망칠 때 스스로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의 자리로 찾아가는 자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제자일 수 있다.

성경은 예외적인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된다. 주님의 칭찬을 들었던 백부장이나 수로보니게 여인 같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방인들이다. 디도 역시 헬라인이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주님의 칭찬 들은 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은 영적 아이러니다. 아울러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는 부분이다.

당신도 정신차려야 한다는 함성 같은 외침일 수도 있다. 주님께 인정받지 못할 때 그는 헛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디도가 바울을 쫓았듯, 우리는 주님을 쫓을 수 있을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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