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박사의 창조론 다시 쓰기
4.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위치
*이번 글에서는 필자의 『과학과 신의 전쟁』에서 '과학적 쟁점들에 대한 답안'을 요약적으로 인용했다.
존재는 위치를 가진다. 이 명제는 자명하다. 위치가 없는 존재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과학적 사실'에 의하면, 나를 비롯한 인간이란 존재는 지구의 한 구석에서 살고 있고, 지구는 태양계의 한 구석에,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한 구석에, 우리 은하는 수많은 은하들로 이루어진 광대한 우주의 한 구석에 위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어디에서 존재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주를 창조했다는 신은 우주의 안에 존재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주의 바깥에서 존재하고 있는가? 이제까지 살펴본 기독교 관련 문헌들에 의하면, 우주는 하나님에 의하여 그의 무한성 안에서 창조된 것이다. 그렇다면 신은 우주의 바깥에서 무한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신이 무한적으로 존재한다면 우주는 어떻게 위치를 가질 수 있는가? 왜냐하면 무한이라는 개념은 모든 위치를 점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케노시스 창조 이론'은 신이 그의 일부를 '비움'으로써 우주에게 위치를 제공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는 없지 않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는 과학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인들에게 당연히 제기되는 몇 가지 의문에 대해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현대 과학자들은 우주의 위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신학과 과학 사이에 차이점은 무엇이며, 공명하는 부분은 없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의 창조론은 현대인들에게 믿을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무지의 종교로 취급받을 것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기독교는 미래에 그 존재가 남아 있지 못할 것이다. 미래에 존재의 위치를 확립하기 위해 기독교 창조론의 개혁은 시급한 것이 되고 있다. 먼저 신의 존재를 생각해보고,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이와 관련된 문제를 좀 더 논의해보기로 한다.
(1) 신의 존재 생각하기
현대 과학주의를 이끌고 있는 유물론 과학자(또는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우주는 물질로만 구성되어 있을 뿐, 신 따위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유물론자들에게는 신의 존재가 당연히 부정된다. 그들에게는 물질적 우주가 전체이며, 우주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우주에는 바깥도 경계도 없다고 생각하는 유물론자들도 있다. 하긴 우주의 구성이 물질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물론자들에게 우주의 바깥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유물론자들은 신의 존재를 믿는 유신론자들에게 '우주만물을 만든 신은 어디에서 생겨났느냐?'고 반문한다. 성경에서 대답하지 않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동양철학의 시조 노자(老子)가 『도덕경』에서 관념적으로 가장 잘 대답했다. '천하의 만물은 있음에서 생겨났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겨났다'(天下萬物 生於有 有生於無). 이 말은 노자의 또 다른 말인 '없음을 천지의 시작이라 일컫고, 있음을 만물의 어미라고 일컫는다'(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라는 말과 연결하여 해석하면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여기에서 '없음'에서 생겨나 천하만물을 낳은 '있음'이 노자에게는 창조자이며 신(神)이다. 노자처럼 '천하만물을 낳은 어미'를 신(神)이라고 생각하지 아니한다면 다른 무슨 말로 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노자는 창조의 순서에 대해서도 관념적이긴 하지만, 매우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무(無)에서 유무(有無)가 나눠졌고, 유(有)가 나뉘어 천지(天地)가 되었으며, 만물(萬物)이 그 안에서 생겨났다고 말했다. 또한 노자는 '천하에 아름답다고 알려진 아름다움은 이미 아름답지 않은 것이고, 선이라고 알려진 선은 이미 선이 아니다'(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 皆知善之爲善 斯不善已)고 말했다. 여기에 덧붙여 '있음과 없음은 서로 같이 살아가고(有無相生), 어려움과 쉬움은 같이 만들어진다'(難易相成)고 말하는 등, 만물의 양극성(兩極性)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노자가 설명한 만물이 양극성을 내재한 채로 공존하는 상태는 양자물리학에서 물질의 '대칭성'(對稱性, symmetry)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공명한다. 최근에 과학에서는 물질에서 발견한 대칭성 법칙을 현대 우주론에도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일찍부터 노자의 도(道)사상에서 나타난 양극성은 동양인들의 고유의식에 음양론으로, 특히 한국인들에게는 태극사상으로 전해지고 있다.
노자의 사상에 심취했던 양자물리학의 대가 닐스 보어 (Niels H. D. Bohr, 1885-1962)는 과학에서 신의 존재를 몰아낸 주인공이다. 그는 노자의 사상에 매료되어 가문의 문장을 노자의 음양도로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보어가 노자의 사상을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보어의 제자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1976)는 '불확정성 원리'를 양자물리학의 해석에 도입한 천재적 과학자이다. 하이젠베르크는 그의 저서 『부분과 전체』에서, 우주의 물질 부분만을 다루는 과학자들이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을 고백했다. 스티븐 호킹 (Stephen Hawking, 1942-2018)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그와 함께 블랙홀 이론을 연구했던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1931- )는 전체에는 '비계산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의식의 세계가 있다고 말했다. 우주의 전체는 유물론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것 처처럼 물질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물질의 세계와 '비계산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의식의 세계가 공존하는 곳이다. 노자의 도(道)사상은 우주의 전체 구조를 직관적으로 꿰뚫어 본 것이다. 그러므로 루리아의 카발라도,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도 잘 살펴보면, 노자의 도(道)사상을 현대어로 재정리한 것으로 보아도 좋을 만큼 비슷한 점이 많다.
(2) '과학적 사실'에 의한 우주의 위치 찾기
이제까지 신학이나 철학적 주장들의 관념적 요지를 살펴보았다. 사실 어떤 관념적 이론일지라도 제안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이론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은 어떤 종교의 교리나 과학이론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실이 진리이기 때문이다. 진리를 왜곡하는 종교의 교리는 『신의 언어』를 저술한 생물학의 대가 프란시스 콜린스의 말처럼 우리의 창조자인 신을 '위대한 사기꾼'으로 몰아가는 죄악이다. 사실이 아닌 과학이론으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자나, 잘못된 교리로 신의 존재를 왜곡하는 성직자는 모두 사기꾼이다. 왜냐하면 그런 잘못된 과학이론이나 교리를 듣고 보고, 믿었던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도덕적 심판자 앞에서 그들의 죄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의 존재에 관한 대립적 논쟁에서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말로 실재하고 있는 것임에도 인간의 관측 능력의 한계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때는 사실을 확정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논쟁의 진위(眞僞)에 심각한 혼란을 일으킨다. 그런 것들은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추론하는 방법밖에 없다.
실증주의 과학자들은 사실성의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과학의 연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렇다면 과학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는 과학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이유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과학자들은 철학과 신학은 죽었으므로 신의 존재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 과학이 대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들의 대답은 '보이지 않는' 신은 실증되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전혀 사실로 인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큰 변화의 원인은 '우연'에다 떠넘기고, 작은 변화는 '진화'에다 미루면서 실증적인 설명의 과정을 생략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과연 실증주의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실재를 부정하는 주장이나, '보이지 않는' 것을 비과학적 방법으로 실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두 과학적인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비과학적인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서 신학자들은 물론, 유신론을 믿는 철학자나 과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신의 실재 문제에 대해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너무나 광대하여 인간은 아무도 우주의 끝을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과연 신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지' 우주의 바깥에 존재하는지 사실상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유신론자들은 이제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창조자인 신과 피조물인 우주의 위치를 추론해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결국 무신론과 유신론 사이의 논쟁은 설득력의 문제이다.
약 2,500년 전에 파르메니데스는 존재의 최초원인이 무한하고 불변하며 분할할 수 없는 일자(一者, the One)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벨기에의 사제였던 르메트르는 우리우주가 팽창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를 초원자(Super Atom)라고 명명했다.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이것을 질량은 무한하고 크기는 아주 작은 하나의 점에 불과한 특이점(singularity)이라고 부르면서, 이 특이점에서 발생한 빅뱅에 의하여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열역학 제1법칙(에너지 보존 법칙)에 의하면 존재의 최초원인은 영원불변의 '우주 에너지 총량'이다. '우주 에너지 총량'이 영원히 일정한, 즉 빅뱅 이전에도 현재와 동일한, 질량을 가지고 실재했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부인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특이점은 바로 '우주 에너지의 총량'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특이점이 하나의 점과 같이 매우 작다는 것과 무한한 질량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은 수학적으로만 계산될 뿐, 사실과는 다른 잘못된 것이다. 특이점은 무한히 작지도 않고 무한히 크지도 않고 일정한 크기와 질량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존재의 최초원인이 '우주 에너지 총량'이라는 명제에서 논의를 시작한다면, 과학적으로 더 이상의 반론이 제기될 수 없다. 에너지는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일을 시작한다. 빅뱅은 우주 에너지가 우주물질로 전환되는 일이었다. 현대과학에서는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 표준 우주론이다.
올바른 창조론은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우주 에너지 세계에서 빅뱅을 통하여 우리우주와 만물을 창조한 존재를 신으로 본다. 창조의 신은 빅뱅 이전의 우주 에너지 세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빅뱅은 '우연'이 아니라, 창조의 신이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작위(作爲)한 사건이다. 우리우주는 우주 에너지 일부가 물질로 전환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신이 창조의 작위를 하지 않았다면, 우주 에너지는 지금까지 그대로 변함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우주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노자에게는 우주 에너지 세계가 최초의 자연이다. 빅뱅 이전에 최초의 자연에서 창조의 신은 이미 스스로 존재하고 있었다. 기독교 성경 출애굽기 3:13-22에는 신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라고 말씀하셨다. 신이 빅뱅 이전의 우주 에너지에서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그야말로 신비(神祕)에 속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주 에너지 세계에서 생명력을 가진 신이 스스로 존재하게 된 신비를 '과학적 사실'에 의하여 설명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과학적 사실'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대칭성의 법칙'에서 설명하는 방법이다. 신이 대칭성 법칙에 의하여 우주 에너지 세계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을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둘째는 진화론에 의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빅뱅에서 시작한다. 빅뱅 이전에 우주 에너지 세계라는 최초의 자연이 있었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그곳에서 신이 진화론적 방법으로 '우연'히 생겨났다고 설명한다면, 진화론자들은 반론할 방법이 없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우리우주에서는 무신론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을지라도, 빅뱅 이전의 우주 에너지 세계로 확장하면, 결국 유신론의 근거가 되는 이론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 진화론자들은 무신론을 포기하고 유신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