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73] 외로움과 동행할 줄 아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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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장 큰 삶의 짐은 무엇일까. 돈, 건강, 장애, 열등감 등등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어떤 면에서는 외로움. ‘고독’이 가장 큰 무게가 아닐까 싶다.
다른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헤쳐나갈 동반자가 있거나 친구가 있고, 자아가 건강한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반면 다른 조건들이 충족되어도 깊은 고독과 혼자라는 상실감을 벗어날 능력이 없으면 목숨을 던져 버리는 일까지 생길 수 있으니 고립의 공포는 매우 위협적인 것이다.
짐승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사람을 해치기 위함이 아니라, 두려움을 느껴서다. 짐승들은 사람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창 9:2). 마치 짐승에 가깝게 돌변해 데이트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만행은 어쩌면 극도의 공포감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다.
혼자 남는 두려움, 자기 인생을 걸었던 사람을 빼앗기는 분노, 이후에 엄습할 질투심과 공허감,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할 미련, 그리고 오롯이 견뎌야 할 고독감…. 이런 것이 눈을 멀게 만들고, 삶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내가 가지지 못할 바엔 차라리 아무도 갖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은 충동적 야만에 눈을 뜨는 것이다.
고독의 시간은 행복의 시간보다 서너 배 느리게, 끔찍하게 흐른다. 사랑을 속삭일 때는 별것도 안 했는데 시간이 후딱 지나가 금방 헤어질 시간이지만, 이별 후나 누군가를 절실히 원하는데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은 지리멸렬하고 원망스럽기만 하다.
이처럼 외로움은 무서운 것이다. 배우자만 의지했던 노인이 반려자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숨을 끊는 경우도 그렇고, 죽어서 배우자 옆에 묻어 달라고 하거나 가족들이 그렇게 해주는 이유도 다 막연한 고독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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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사랑을 받는 사람도 한 사람을 갖지 못해 울고, 수많은 친구가 있지만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한 사람을 잃은 사람도 외로움 때문에 울 수 있다. 의지하던 애완동물이 죽어도 큰 상심에 빠지고, 비록 건전한 취미는 아니지만 동경하던 연예인이 죽어도 사람은 상심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사람의 외로움은 자기 자신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정치인이나 예술가의 죽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면 그가 주었던 위로나 가르침, 유희 때문이겠지만, 결국 그것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다.
마치 서로 교감하는 존재인 양 마음 속에서 대화를 나눠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생물이나 만화의 캐릭터, 플라스틱 로봇이라도 그것을 상실했을 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다 자기감정의 변화이다.
그래서 사람은 아무런 사건 없이도 외로움을 탄다. 원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외롭고 철저히 혼자다. 사랑하면 할수록, 행복하면 할수록 다가오는 결별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고, 사랑이 채워지지 않아도 공허하고 외롭다.
자기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사랑하거나, 사랑을 찾아 나서는 이들은 실패하기 쉽다. 사랑은 더 외로울 것을 각오하는 것이며, 혼자 남을 경우에 맞이할 더 깊은 공허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나서는 길…. 가성비 높지만 리스크도 큰 모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잘 처리하거나 견디지 못하면 건강한 사랑을 하기 어렵고, 자기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을 때 무언가를 또 찾아 헤매는 일탈을 꿈꾸기 쉽다.
마치 사랑 중독자처럼 끝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면서 공백기를 견디지 못하고 계속 누군가 만나는 사람도 있다. 또 자기를 아껴주면 사랑인 줄 알고 마음을 주는 경우도 있다. 외로움이 일으킨 착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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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독한 감기처럼 찾아오는 외로움을 잘 처리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1) 먼저 외로움 타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이런 습관은 낭만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다. 환절기마다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은 으레 때가 되면 감기에 걸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가항력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면 심신이 미약해져 또 다른 질병을 부른다. 외로움을 이길 수 없는 적이라 생각하면, 만성적 고독감 속에서 대인관계는 더욱 어려워지고 스스로 고립될 수 있다.
2) 외로움을 습관화해선 안 되겠지만, 고독과 잘 동행하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니까. 그러려면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 자존심과는 다른 자존감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자기가 맡은 무슨 일에든 최선을 다해야 자신감을 얻는다. 자신감의 결여로 오는 열등감이 커지면 자존감이 높을 수 없고, 이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는 요인이 된다.
3) 건전한 관계들이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물론이고 가족들이나 믿음의 지체들, 그리고 사적인 친구들까지 다양하게 소통하고 평범하게 지내는 사람이 건강하다. 아까운 시간에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굳이 교제해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은 필요한 사람만 곁에 둘 수 없는 법이다.
4) 아무리 친밀한 부부도 언제나 같이 할 수 없듯이, ‘따로 또 같이’의 방식을 잘 이해해야 한다. 어차피 사람은 짝을 만나도 외로움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함께할 사람이 나타나도 지금과 엄청난 차이가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혼자인 시간도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건강히 지낼 필요가 있다.
5) 시간마다 다른 현실에 잘 적응해야 한다. 가끔 점심시간에 혼자 남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이들이 있다. 요즘은 그나마 ‘혼밥 문화’가 있다지만, 여전히 혼자 먹는 밥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작은 두려움부터 제거하려면 남을 의식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혼자인 상태를 과하게 즐길 필요도 없지만 비정상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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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외로움은 주님만이 해결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세상 끝까지 우리와 함께하심을 여러 번 약속하셨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런 위로의 안부로 편지를 마친다.
“끝으로 형제들아, 잘 있으라. 완전하게 되며 위로를 받으며 한마음이 되며 평안히 지낼지어다.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후 13:11)”.
‘외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는 노래가 있다. 외로울 때 사람부터 찾거나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채우려 하지 말고, 평강의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믿어야 한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이런 찬양도 있다. 어느 때나 환경을 넘어 감사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면 외로움도 잘 관리할 수 있다. 그러려면 외로움을 벌이나 저주, 곤경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의연함이 필요하다.
섬처럼 고립된 자아를 극복하고, 홀로 고난의 바다를 헤치며 외로움의 파도를 넘어야 참다운 사랑의 뭍에 도달한다. 그 길을 혼자 견디려 하지 말고, 하나님과 이웃과 건강한 자아와 함께 잘 넘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항해자가 될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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