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천투데이는 본지 칼럼니스트인 허정윤 박사가 지난 8월 25일 제25회 지적설계연구회 심포지움에서 발표한 '지적설계론과 창조론의 동질성과 이질성-미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총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Ⅲ. 지적 설계론의 도전
1. 지적 설계론의 등장
1984년 『생명의 기원의 신비』를 출판한 찰스 텍스턴(Charls B. Taxton) 등이 진화론에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하였다. 텍스턴은 1989년에 출판한 『판다와 사람』에서 유전자의 정보가 자연선택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해서는 만들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정보의 원인으로 지적 설계의 가능성을 제안했다. 그의 제안은 유전자의 이중 나선형 구조가 밝혀진 1953년 이후, 30년 이상 축적된 자료를 연구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텍스턴 등의 지적 설계 개념은 진화론의 핵심을 직접 겨냥한 것이었으므로, 창조과학적 창조론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기독교의 창조론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 설계론의 등장은 진화론이 추방한 창조자를 다시 모셔오려는 야심찬 기획으로 보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심판대 위의 다윈』(1992)을 출판한 법학자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논쟁에서 사용한 진화론의 자료들에 의문을 제기한 시기를 지적 설계론이 등장한 때로 보고 있다. 진화론과의 논쟁을 지적 설계라는 학술적인 차원에서 발전시킨 인물은 1996년 『다윈의 블랙박스』를 출판한 리하이대학의 생물학 교수 마이클 비히(Michael Behe)였다. 그는 생물의 각 구조들을 살펴보면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그런 사실들이 지적 설계를 지시한다고 주장했다. 비히에 의하면 생물은 진화적 방법으로는 발생될 수 없고, 결국 지적 존재의 설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비히의 이론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은 수학자 윌리암 뎀스키(William Dembski)이다. 뎀스키는 1998년 출판한 『설계추론』에서 '특정화된 복잡성'(specified complexity)을 지적 설계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지적 원인의 탐지가 경험적 판단으로 가능하다. 인간은 어떤 복잡한 구조가 어떤 목적성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설계의 산물임을 추론할 수 있고, 아무리 복잡한 구조라도 정보의 의미가 없는 경우에는 목적성이 없는 자연적 원인에 의한 산물로 구분할 수 있다.
21세기에 들어서자 지적 설계론자들은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공인된 과학적 또는 법률적 지위를 지적 설계론에 부여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재신은 『진화는 가고 설계가 온다』(2017)고 주장한다. 이재신은 그의 책에서 2004년에 발생한 「워싱턴생물학회회보」 사건을 언급했다. 그것은 그 학회지에 캄브리아기 생물의 폭발적 출현을 진화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고, 지적 설계론에 의해서만 설명이 가능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익명의 논문을 게재해서 문제가 되었던 사건이다. 이 논문의 게재에 대해 과학계가 반발하고 검찰의 수사까지 받게 되면서 담당기자가 징계 처분되었다. 문제의 논문은 후에 스티븐 마이어(Stephen C. Meyer)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005년에는 펜실바니아주 도버시에서 공립학교 과학교육 수업 시간에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함께 가르치는 문제로 벌어진 재판에서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므로 거부당했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스티븐 마이어는 이런 과정을 겪고 나서 『세포 속의 시그니처』(2009)와 『다윈의 의문』(2013)이라는 두 권의 책을 출판했다. 앞의 책은 지구에서 최초 생명의 출현이 지적 설계에 의한 것임을 주장하면서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고, 뒤의 책은 캄브리아기 생물들의 폭발적 발생이 진화론의 방법에 의해서는 설명이 안 되므로 결국 지적설계에 의한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재신은 그 책들의 대표 번역자이다. 그러나 마이어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적 설계 논증이 여전히 비과학적이라는 과학계의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임을, 이재신은 사실대로 시인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적 설계론 진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에 만연한 무신론적 경향성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과학적 방법론의 개념을 바꾸지 않으면 쉽게 시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 역사과학으로서의 지적 설계론의 한계
여기에서 논의하고 있는 진화론, 창조론, 그리고 지적 설계론 등은 학문적으로 역사과학으로 분류되는 것들이다. 역사과학은 과거에 일어난 범죄 사건의 범인을 찾는 법의학의 방법과 같이 확보된 증거물을 분석하여 추론의 방법으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사건 수사관들은 법의학 또는 과학이론의 도움을 받아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증거물을 분석하고, 사건을 재구성하여 필요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러므로 법의학과 같이 역사과학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물의 확보와 그것을 해석하는 지적 능력이다.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은 물질과 생명체를 증거물로 제시한다. 기독교의 고전적 창조론은 성경을,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성경과 『창세기 홍수』를 증거물로 제시한다. 과학은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는 증거물을 거부하므로, 전통적 창조론은 증거물을 제출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전통적 창조론은 과학에서 논쟁의 당사자 자격을 아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무신론적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은 생명의 기원에 대해 같은 증거물을 제시하면서도 왜 서로 다른 해석을 주장하는가? 그것은 해석에 필요한 증거물과 지적 능력의 차이 때문이다. 역사과학은 주장된 이론과 사실의 일치를 검증하기 위하여 오래된 증거물을 분석하기 때문에 더욱 해석이 중요하다.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학적 방법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진화론은 제한된 범위 안에서는 이론과 사실의 일치를 보여주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나 보이지 않으므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제한된 자료를 일방적 추론에 의지하여 왜곡 해석한 것이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지적 설계론도 진화론처럼 이론과 사실의 일치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지만, 지적 설계자가 있었다는 주장은 역시 추론에 의지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이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의 결론은 결국 추론적 해석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제기되는 문제는 진화론에서의 추론은 과학으로 인정되고, 지적 설계론에서의 추론은 과학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과 진화론의 해석에 의하면, 물질들은 모두 무신론의 증거물이 된다. 왜냐하면 물질들은 물리법칙에 따르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런 사실을 이용하여 우주에는 물리법칙만 있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귀납적으로 추론한다. 귀납적 추론에 물질들만 증거로 이용하는 것도 과학적 방법에 해당된다. 문제는 물리법칙을 따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신의 말씀을 따르는 물질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은 창조 이후 이 세상의 물리법칙에 개입한 증거들을 남겨놓지 않았다. 지적 설계론은 창조자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최근에 개발한 이론이다. 그런 지적 설계론조차 진화론의 공세에 고전하는 이유가 바로 신이 개입한 흔적을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같은 추론의 방법에 의한 해석임에도 과학적 방법론 때문에 무신론적 진화론은 과학으로 인정받고 지적 설계론은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3. 그래도 승리의 희망은 밝다
그동안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상대가 인정하지 않는 증거와 이론을 제시하면서 과학을 부정했다. 상대를 부정하는 것이 논쟁이 아니라, 상대의 이론에 오류를 발견하고 비판하는 것이 논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창조과학적 창조론과는 달리 새롭게 등장한 현대 창조론은 검증된 과학적 이론에 대해서는 긍정하면서 사실적 진리를 탐구하고 있다. 논쟁에서는 상대의 이론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승리의 맥점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그동안 다각적인 검증에 의해 이미 폐기처분 대상이 된 것이다. 현대 진화론은 폐기처분된 다윈의 진화론에다 무신론 과학자자들이 다윈주의라는 도그마(dogma)를 집어넣어 만든 인공지능 이론이다. 인공지능은 하나의 프로그램이 망가지면,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갈아 끼우면 계속 작동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변신과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다윈주의 인공지능 이론에도 치명적인 두 가지 아킬레스건이 있다. 첫째는 생물의 DNA가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없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다른 종류의 DNA를 가진 생물의 생식세포는 수정이 안 되는 생식장벽(reproductive barrier)이 있다는 사실이다. 생식장벽에 가로막혀 생물들은 같은 종류의 자손들을 번식할 수 있을 뿐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런 문제들을 유전자 돌연변이 이론으로 돌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하여 태어났다고 알려진 생물들을 조사해본 결과는 진화가 아니라, 질병이나 불구, 또는 퇴화(退化) 현상을 보여줄 뿐이다. 이런 현상에 당황한 현대 진화론자들은 집단유전학(集團遺傳學, population genetics)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개체의 유전자 변이에서 진화의 증거를 찾으려다 실패하자, 개체군에서 유전자 진화를 찾으려는 시도이다. 집단 유전학은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에 바탕을 둔다.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은 개체군 단위에서는 유전자의 발현 빈도가 자연선택의 압(壓)에 의해 결정되고, 그 개체군의 유전자 변이는 그 결과에 따라 진행된다고 주장한다. 집단유전학에 의하면 진화는 개체가 아니라, 개체의 집단인 개체군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은 영국의 수학자였던 하디(Godfrey H. Hardy, 1877-1947)와 독일의 의사인 바인베르크(Wilhelm Weinberg, 1862-1937)가 1908년에 각각 발견한 것이다. 진화론의 역사를 보면, 위기 때마다 새로운 이론을 끌어들여 연명하고 있는 이론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현대 진화론자들은 진화 원인이 유전자의 변이에 있다는 견해에는 일치한다. 그러므로 유전자가 바로 현대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이다. 유전자의 본체는 DNA(Deoxyribo Nucleic Acid)로 만들어진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진행된 인간 DNA 구조와 기능을 분석하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 2기 책임자로서 일했던 프란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는 2006년에 『신의 언어』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DNA는 신이 쓴 암호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생물의 DNA는 신의 개입 없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유신론자이면서 진화론자임을 자처하는 콜린스는 그의 주장을 바이오로고스(bio-logos)라고 표현했다. 콜린스가 합성한 이 말은 '생물 언어'라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지만, 콜린스는 이 말에 유신진화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바이오로고스에 의하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공통조상의 DNA에서 변이를 거쳐 진화했으므로 서로 유연관계에 있다. 어쨌든 바이오로고스를 주장하는 세계적 생물학의 권위자 콜린스는 어떤 창조자의 개입이 없었다면, 물질이 생명으로 전환하는 최초의 순간은 있을 수 없었다고 인정한다. 그렇다면 최초의 생물의 DNA 설계에 신의 개입은 우연이나 가능성이라는 추론 이상의 역사적 사실임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적 설계론이나 현대 창조론이 콜린스의 주장을 입증하여, 무신론적 진화론에 대해 승리의 깃발을 차지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그것은 창조자를 믿는 자들의 희망이다. 창조자의 정체성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그 다음에 논의할 수 있는 것이다.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서 패배하는 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창조과학자들이 그 승리의 깃발을 차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창조과학적 창조론자들은 애초부터 창조론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는 노아의 홍수를 끌어들였고, 또 진화론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지질연대 공격에 치중하는 등,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화론에 승리하는 일은 지적 설계론자나 현대 창조론자에게 돌아갈 몫이다. 그 중에서도 지적 설계론 그룹이 승리의 깃발을 차지할 가능성이 가장 크다. 왜냐하면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인 DNA 연구를 이끌어갈 과학적 인재들이 지적 설계론 그룹에 가장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96년에 개최된 '오직 창조'(Mere Creation)라는 지적설계 세계학술대회는 진화론을 극복하는 운동의 방법적 모델을 보여줬다. 이 학술대회는 어떤 창조론을 지지하든 상관없이 순수하게 '오직 창조'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연합시키고자 하였다. 또한 1999년부터 지적 설계론 단체인 Discovery Institute가 주도하는 학문과 문화에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쐐기(Wedge)전략도 반진화론 운동에 효과적이다. 이런 점에서 진화론에 승리하는 길을 찾는 학술적 운동에는 지적 설계론 그룹이 주도하는 것이 합당한 것으로 보인다. 창조를 믿는 사람들의 희망은 '오직 창조'라는 깃발 아래 함께 모여 진화론의 아킬레스건을 깨뜨릴 방법을 함께 탐구하는 일에 걸려 있다. 창조과학적 창조론자들이 그들의 오류를 시정하고, 이 운동에 참여한다면, 그들에게도 희망이 없지 않을 것이다.
최근 국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스스로 움직이는 인공 세포'까지 개발되었다고 한다(http://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624895_22663.html). 이 세포는 빛에 반응하고 일부 물질대사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세포와는 달리 DNA가 없고, 자기 복제 기능도 없다. 그러나 만약 과학이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공 세포 제조에 성공하고 더욱이 인공 생명 제조까지 성공한다면, 신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한, 인간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생물학에서 밝혀진 대로, DNA 활성화에는 생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단백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생체 세포 안에는 먼저 단백질을 만드는 특정화된 복잡성을 가진 정보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세포가 지적 설계의 산물임을 암시한다. 더욱이 최초의 생물이 자기 조직기능을 넘어 번식 기능까지 갖춘 상태로 진화론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런 사실들이 생물의 기원에 어떤 지적 존재의 설계 또는 창조자의 개입이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므로 진화론의 도전에 맞서 '오직 창조'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승리의 희망은 밝아 보인다. (계속)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