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주를 위해 충성한다는데… 과연 목숨까지 버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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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스위스 용병들의 아름다운 충성

▲교황의 스위스 용병들 모습. ⓒ영상 캡처

▲교황의 스위스 용병들 모습. ⓒ영상 캡처

어느 기사는 조선시대 500년을 통틀어 6대 천재를 소개하였다. 그 중 한 사람이 신숙주(1417-1475)였다. 그는 다양한 면에서 탁월하였는데, 특히 언어 분야의 천재로 주변국의 모든 언어를 습득하였다. 그래서 언어의 재능으로 외교적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체 높은 신하로 세조를 오랫동안 보필하였고 평생 꽃밭 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큰 오점을 남겼다. 즉 세종과 문종의 큰 사랑을 받은 신하로 단종을 잘 보필하기로 왕과 맹약을 했는데,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문종이 세상을 떠나자 단종을 버리고 세조를 쫓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동료들로부터 눈살 찡그림을 당했다. 동료들은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탄로나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고 ‘사육신’이라는 이름으로 죽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생육신이라는 이름으로 깊은 산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신숙주는 세조에게 협조함으로 호화호식하면서 최고의 벼슬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자신도 그 사실이 늘 마음에 걸렸고, 후에 보복이 두려워 묘지도 두 개를 쓰도록 유언했다. 훗날 자신의 묘가 파헤쳐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후손들은 지금도 진짜 묘를 모른다고 한다.

안타까운 것은 단종을 폐위하고 강원도로 유배를 보낸 후 그의 식솔들을 모두 관비로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단종의 비 정원왕후도 포함했다. 당시 정원왕후는 17살에 불과했다. 미모가 아주 출중했다고 한다. 신숙주는 그 단종의 아내를 자신의 첩으로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그 요청만은 세조가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원왕후는 머리를 깎고 비구니 승방 정업원에 들어가 평생 사랑하는 남편이 귀양간 강원도 영월 쪽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라보며, 외롭고 고독한 일생을 보내야 했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담을 넘어올 때면, 그녀의 슬픔에 동참하는 마을 여인들이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궁에서 보내주는 곡식을 일절 받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이 으스름 할 때 몰래 쌀이나 음식을 담 너머로 던져주었다고 한다.

17살에 남편을 생이별하고 아내가 서있는 곳을 돌아보고 또 뒤돌아보며 떠나간 사랑하는 남편 단종, 그 남편의 모습은 꿈에서라도 잊힐 리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은혜를 입은 문종과의 맹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사람 신숙주, 그래서 숙주나물이란 이름을 잉태시킨 사람, 그가 이룬 공적과 그가 행한 배신을 저울에 달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까 싶다.

그러나 당시 지조를 대쪽같이 지키던 선비들은 결코 자신의 영달을 위해 배신의 잔을 들이킨 그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배신이 난무하는 곳이다. 오죽했으면 시저(Caesar)를 암살한 무리들 가운데 양자 브루투스(Brutus)가 끼어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란 시저가 “브루투스 너마저도!”라는 유명한 대사를 읊어야 했을까 싶다.

그에 비해 충성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스위스 용병들이다. 용병은 돈을 받고 대신 싸워주는 직업을 가진 자를 지칭한다. 용병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기원전 그리스에서도 용병이 있었고, 명나라에서도 용병이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유성룡의 <징비록>에 의하면, 명나라가 조선을 돕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왔을 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고 한다. 얼굴이 하얗고 머리가 노란 사람, 아니면 얼굴이 누렇고 눈이 크고 털이 많은 사람 등등….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을 보았기에 신기하고 놀라웠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돈을 받고 싸워주는 용병들이었다.

그런데 구라파의 용병들은 로마 시대 때부터 존재했다. 한 마디로 전쟁에 나가 싸운다는 것은 요즘 말로 3D에 해당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고로 로마는, 고올족이나 게르만, 북아프리카, 또는 고트족들을 용병으로 많이 고용했다.

로마 제국은 군대를 거의 용병으로 채웠다. 그래서 때로는 용병들이 뒤돌아서서 공격해 버리는 뼈저린 수모를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로마군이 토이토부르크(함부르크 근처)까지 정벌하러 갔다가, 무려 3개 군단이 전멸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엄청난 수모를 당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잃어버린 군단을 외치며 통곡했다고 한다. 저들이 당한 것은 용병들이 로마식 훈련과 전투 기술을 배운 후, 요구 조건이 미흡하면 돌아서서 자기편 군대를 공격해 일어난 사건이었다.

고로 어찌 보면 로마 제국은 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국가일 수 있었다. 그러다 결국 476년에 게르만의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Odoacer435-493)에게 로마는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용병은 이처럼 돈에 팔려가는 존재이기에, 신의에 대해서는 볼 게 없었다. 그런데 스위스 용병들은 아주 드물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었다.

예부터 스위스는 산이 높고 골이 깊기 때문에, 수많은 부족들로 나누어졌고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던 나라였다. 토지라야 산비탈에 작은 밭으로 존재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저들은 생존의 수단으로 건장한 신체를 이용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래서 돌파구를 찾은 것이 용병으로 살아가는 길이었다. 중세 시대는 도시국가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용병은 아주 잘 나가는 직업이었다. 그 용병들 중에서 스위스의 용병은 단연 압권이었다.

용병의 사제로 참가했던 츠빙글리는 용병들의 방탕한 삶을 보고, 용병을 없애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저들은 쉽게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방탕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부요한 도시국가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탈취물이 많았기에, 그런 때는 보너스도 굉장했을 것이다.

그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용병이었기에, 그 길에 더욱 천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성실하게 충성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후일을 기약해야 했으니 말이다.

때는 1527년, 교황의 위세가 점점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던 시기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의 군대가 교황을 징벌하기 위해 일어섰다. 이제까지 교황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알았다. 고로 그를 공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항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뿌리 깊게 지니고 있었다.

구라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에 젖어 있다는 것을 교황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교황을 대항한다 해도 규범의 범주를 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달랐다. 신성로마제국에 고용된 용병들은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차에, 신뢰하던 장군이 죽어버리자 잘못 하다가는 급여를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교황청에는 값 나가는 보물과 속죄 권을 통해 거두어들인 막대한 돈이 있다고 유혹했다. 고로 용병들은 어찌하든지 전투에서 승리해야 된다는 절박감이 있었다. 카를 5세는 이들을 이끌고 로마를 공격했다.

바티칸 남서쪽에 있는 쟈니꼴로(Gianicolo)에서 성벽을 올라가던 중 존경받던 샤를 공작은 교황 군이 쏜 화승총에 맞아 굴러 떨어졌다. 큰 지도력을 발휘하던 장군이요, 존경받던 지도자가 죽었으니, 황제 군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었다.

또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로마를 공격하자, 교황청에서 고용한 각 나라 용병들은 도망쳐버렸다. 이미 수에 있어서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교황청에서 남은 병력은 스위스 용병 5백명뿐이었다. 이들은 최선을 다해 적을 막았다.

베드로 대성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신성로마제국 군대를 맞아 결사적으로 싸운 용병들은 거의 죽고, 겨우 189명만 남았다. 이들은 교황이 성 베드로 성당까지 피신하는 과정에서 용감하게 맞서 싸우다 겨우 42명만 살아남았다.

교황 클레멘스 7세는 이들에게 승산 없는 싸움에서 손을 떼고 조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하였으나, 저들은 거절하였다. 그 이유가 교황청과 결의한 충성 서약을 깨뜨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저들은 교황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교황 클레멘스 7세에게 빨리 피신할 것을 당부하고는 신성로마제국의 큰 군대를 끝까지 막고 싸웠다.

그 바람에 교황은 교황 알렉산더 6세가 만들어 놓은 지하 통로를 통하여 산 안젤로(S’angelo) 성으로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 대신 스위스 근위병들은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스위스의 용병들은 교황을 향한 충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제물로 드렸던 것이다.

교황 군이 도망쳐버린 로마는 신성로마 군이 주인이었다. 그것도 6개월 동안이나 체류했다. 저들은 닥치는 대로 성당을 수탈하고, 불을 질렀고 죽였고 빼앗았다. 이 파괴를 통해 로마에서 르네상스 당시의 건물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로마 인구 9만 중 2/3 가량이 살해나 유린당했다.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았는지, 역사가들은 네로의 화재나 켈트족들의 공격, 그리고 게르만 족들의 여러 번에 걸친 파괴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컸다고 한다. 건물은 물론 몇 명의 추기경이 죽었고, 수녀들은 강간 내지는 팔려가기도 했다.

더구나 신성로마제국 군은 대부분 루터교를 신앙하는 자들로서, 바티칸을 악마의 소굴로 여기고 있었다. 더구나 수많은 루터교 교인들이 종교 재판의 이름으로 이단으로 판정받아 화형을 당하거나 고문을 당했기에, 그에 대한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게 되었다.

이런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스위스 용병들의 충성은 변함이 없었다. 저들은 그 후에도 변함없는 충성의 길을 걸어갔다.

1792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했을 때, 궁전에 갇힌 루이 16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군중의 수가 엄청났고 혁명군 측도 용병으로 헌신하는 그들을 죽일 마음이 없었기에 돌아가도록 요구했으나, 저들은 거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이들이 싸운 이유를 혁명군이 발견한 편지로 인해 확인하게 됐다. 스위스 사람들은 이들의 충성스러움을 루체른 시내에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사자 상으로 만들어 기리게 했다.

용병은 자신의 돈을 벌기 위해 싸우는 자들이다. 그렇다면 적당하게 돈만 보고 싸울 수 있다. 또는 눈가림만으로 적당히 싸울 수도 있다.

그러나 스위스의 용병들은 계약한 대상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을 다했다. 이들에게 있어 충성은 곧 목숨을 버리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흔히 주를 위해 충성한다고 하는데, 과연 목숨을 버릴 수 있을까? 성도는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날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신 주님, 그 주님을 위해 희생의 잔을 마시겠다고 결단하고 그 결단을 이루기 위해 똑 바로 걸어가는 삶, 그것이 진정한 충성일 수 있다. 그 길은 아름다운 길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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