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윤 박사의 치유칼럼] ‘못난 나’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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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윤 박사

▲강지윤 박사

'현재의 나'는 과거로부터 떠내려온 수많은 생각과 감정과 가치관과 자기인식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나는 단점도 많지만 나로서 괜찮아' '나는 나로 살아갈거야'라는 생각은 건강한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반대로 '나는 너무 못났어' '나는 내가 싫어' '나라는 존재는 혐오스러워'라는 생각이 가득하다면 과거의 시간을 뒤져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끊임없이 현재의 나를 괴롭히는 과거의 상처와 고통과 자아인식들은 현재를 행복하게 살지 못하게 하고 계속해서 과거에 꽁꽁 묶여 살게 하고 있다.

만약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학대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버림받지 않기 위해서 '내가 매를 맞는 것은 내 잘못 때문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학대하는 부모를 원망하면 부모를 떠나야 하는데 부모를 떠나면 죽을 것 같은 공포가 올라오고 학대를 당하면서도 부모에게 더욱 의존하게 되어 자신을 탓하게 된다. 정서적 불안 상태가 지속되면서 더욱 의존적이 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큰 불행이다.

그래서 학대의 결과가 무서운 것이다. 피해자인 자신을 끝없이 책망하며 못난 인간이라고 자책하며 그 학대를 참으며 자라는 동안, 자신이 못났다는 잘못된 자아인식이 함께 자라게 되는 것이다. '나를 학대하는 아빠가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불안을 덜어준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이다. 이런 이유가 피학대자가 학대자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할 때 '공포조성하기' 방법으로 훈육을 하기도 한다.
"너 계속 말 안들으면 경찰아저씨가 잡아가게 할거야."
"계속 그러면 집에서 쫓아낼거야."
"너 때문에 속상해서 죽겠어. 엄마가 집을 나가버릴 거야."

이런 말들이 어린 자녀의 마음에 공포를 조장하고 쌓이게 하여 스스로를 나쁜 인간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명백히 정서적 학대이며 폭력이다. 어린 아이는 부모를 떠나면 죽는 줄 안다. 부모가 자신 때문에 떠난다거나 자신을 쫓아낸다거나 하는 말은 불안과 공포를 만들어 언젠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항상 불안해 하며 눈치를 보며 자라게 한다. 부모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린아이에게는 가장 큰 공포다. 이런 공포는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더욱 큰 인간의 불행이 된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학대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학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보이는 엄청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학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은 올바른 훈육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나 비교하는 말, 너 때문에 못살겠다는 말 등은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죄책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생긴 죄책감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남아서 자신을 못난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고 '진짜 자기'를 모른 채 살아가게 만든다. "나는 너무나 잘못되었고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야"라는 각인된 자아인식은 참으로 처절하고 고치기 힘든 자의식으로 자리를 잡아버린다. '거짓 자기'와 '진짜 자기'를 혼동하며 스스로를 혐오하며 불행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저는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겁나요. 나보다 나은 남자가 나를 좋아할 리 없다는 생각과 혹시 결혼하면 제가 얼마나 형편없는 여자인지 들킬 것이고 그러면 저는 버림받을 거에요."라고 굳게 믿는 여성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남자가 다가와도 외면하고 거절한 이유가 그것이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못난 모습을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들면 바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유명한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피폐해져있는 한 청년에서 정신과 의사가 이렇게 말했다.

"It's not your fault."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이 말은 죄책감을 내려놓아도 된다는 크나큰 위로의 메시지다.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된 것이고 잘못 태어났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명대사가 매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가끔 예배 중에 나도 모르게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흐느낄 때가 있다. 찬송가를 부를 때나 기도를 할 때, 그 어느 순간에 며칠 혹은 몇 주 묵은 생채기진 마음의 아픔과 슬픔이 저절로 터져나와 폭풍눈물을 흘리고나면 마음 속에 낀 미세먼지 같은 통증들이 시원하게 씻겨지는 것을 경험하곤 한다. 그 시간들이 내게는 중요한 힐링타임이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이런 힐링타임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과거로부터 떠내려온 상처와 생채기는 치유되고 과거에 묶이지 않는다. 그리고 진정한 나로 살 수 있게 된다.

자기 잘못이 아닌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사는 동안 우리의 상한 마음은 더욱 더 갈바를 알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된다. 이제라도 풀어내고 올바르게 인식해서 누군가 잘못 못박아둔 메시지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빼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람인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생각들이 서서히 변하더라도 기다려주고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심리상담에서 다루게 되는 'here & now'의 '나의 모습'은 과거로부터 떠내려온 미해결된 문제들 때문에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계속해서 '거짓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평생 고단하게 살게 된다. 기쁘고 행복한 삶이란 환경이 변해서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벗어나 진짜 나를 찾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내가 알아주고 내가 나를 안아주고 받아주는 것에서 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지금까지 상처투성이로 살아왔어도 괜찮다. 지금,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너무 멀리왔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일찍 성공을 거뒀더라도 일찍 죽을 수도 있고 늦게 꿈을 이루었어도 오래 살면서 기뻐할 수도 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나다!" 누구도 나 대신이 될 수 없다.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인식하기 시작해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한다거나 비하하고 있지 않는지 의식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씩 해결되고 진정한 자신을 찾게 된다.

어린시절 상처받았던 불쌍한 나를 내가 안아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알아주면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멈춰있지 말고 성장하고 성숙해지면 된다. 그리하여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이 위대한 히스토리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자신을 존귀하게 생각해 줄 수 있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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