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12월의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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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달이다. 우리 모두 시를 함께 읽어보면서 남은 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도록 하자.

① “남은 달력 한 장이, 작은 바람에도 팔랑거리는 세월인데, 한 해를 채웠다는 가슴은 내놓을 게 없습니다/ 욕심을 버리자고 다잡은 마음이었는데 손 하나는 펼치면서, 뒤에 감춘 손은 꼭 쥐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비우면 채워지는 이치를 이젠 어렴풋이 알련만, 한치 앞도 모르는 숙맥이 되어/ 또 누굴 원망하며 미워합니다/ 돌려보면 아쉬운 필름만이 허공에 돌고 다시 잡으려 손을 내밀어 봐도, 기약의 언질도 받지 못한 채 빈손입니다/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텅 빈 가슴을 또 드러내어도, 내년에는 더 나을 것 같은 마음이 드는데 어쩝니까(12월의 독백/ 오광수)”

② “사랑의 종, 시린 가슴 녹여 줄, 따뜻한 종이었음 좋겠다/ 그늘진 곳에, 어둠을 밝혀주는 등불이었음 좋겠다/ 딸랑딸랑 소리에, 가슴을 열고, 시린 손 꼭 잡아주는, 따뜻한 손이었음 좋겠다/ 바람 불어 낙엽은 뒹구는데,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허전한 가슴(12월은/ 하영순)”

③ “몸보다 마음이 더 급한 12월, 마지막 달, 달려온 지난 길을 조용히 뒤돌아보며, 한 해를 정리해보는 결산의 달/ 무엇을 얻었고,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지,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를 미워하지는 않았는지/이해할 자를 이해했고, 오해를 풀지 못한 것은 없는지, 힘써 벌어들인 것은 얼마이고, 그 가운데서 얼마나 적선을 했는지/ 지은 죄는 모두 기억났고, 기억난 죄는 다 회개하였는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한 일에 만족하고 있는지/ 무의식중에 상처를 준 이웃은 없고, 헐벗은 자를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잊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있고, 꼭 기억해야 할 일은 잊고 있지는 않은지/ 이런 저런 일들을 머릿속에 그리는데 12월의 꽃 포인세티아, 낯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12월 중턱에서/ 오정방)”

④ “남은 달력 한 장, 짐짓 무엇으로 살아왔냐고 되물어 보지만 돌아보는 시간엔, 숙맥 같은 그림자 하나만 덩그러니 서있고/비워야 채워진다는 진실을, 알고도 못함인지 모르고 못함인지, 끝끝내 비워내지 못한 아둔함으로, 채우려는 욕심만 열 보따리 움켜쥡니다/ 내 안에 웅크린 욕망의 응어리는, 계란 노른자위처럼 선명하고, 뭉개도 뭉그러지지 않을, 묵은 상념의 찌꺼기 아롱지는 12월의 공허/작년 같은 올 한 해가 죽음보다 진한 공허로 벗겨진 이마 위를 지나갑니다(12월의 공허/ 오경택)”

⑤ “마지막 달력을 벽에 겁니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이고, 마음도 많이 낡아져가며, 무사히 여기까지 걸어왔습니다/ 한 치 앞도 모른다는 세상살이, 일초의 건너뜀도 용서치 않고, 또박또박 품고 온 발자국의 무게, 여기다 풀어놓습니다/ 제 얼굴에 책임 질줄 알아야 한다는 지천명으로 가는 마지막 한 달은, 숨이 찹니다/ 겨울 바람 앞에도 붉은 입술 감추지 못하는 장미처럼, 질기게도 허욕을 좇는 어리석은 나를 묵묵히 지켜보아주는 굵은 나무들에게 올해 마지막 반성문을 써봅니다/ 추종하는 신은 누구라고 이름 짓지 않아도, 어둠 타고 오는 아득한 별빛같이 날마다 몸을 바꾸는 달빛 같이 때가 되면 이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의 기도로 12월을 벽에 겁니다(12월의 기도/ 목필균)”

⑥ “떠도는 그대 영혼 더욱 쓸쓸하라고 눈이 내린다/ 닫혀 있는 거리, 아직 예수님은 돌아오지 않고, 종말처럼 날이 저문다/ 가난한 날에는 그리움도 죄가 되나니, 그대 더욱 목메이라고, 길이 막힌다/ 흑백사진처럼 정지해 있는 시간, 누군가 흐느끼고 있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폭설 속에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이 한 해의 마지막 언덕길, 지워지고 있다(12월/ 이외수)”

⑦ “덜렁 달력 한 장, 달랑 까치밥 하나, 펄렁, 상수리 낙엽 한 장, 썰렁 저녁 찬바람, 뭉클 저미는 그리움(12월 어느 오후/ 손석철)”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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