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승의 러브레터] 대강절의 소망
1. 연말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면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합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올해가 지났어.”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만큼 바빴어.”
“내 나이 80인데 20살이 엊그제 같아.”
그러나 여러분. 시간은 한 번도 변함없이 동일한 속도임을 아시지 않습니까? 과거가 이렇게도 빨랐다면 과연 미래라는 시간은 어떨까요? 혹시 여러분의 미래의 모습을 아십니까?
2. 태양이 저물어갈 때쯤 2평 정도 되는 작은 상담실에서 한 청소년과 상담할 때의 일입니다.
“너는 살아가면서 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
“돈이요.”
태양이 저무는 2평짜리 작은 상담 공간에서, 저는 그 아이의 미래가 그 아이의 모습으로 스며드는 것을 봤습니다.
3. 아침에 일어나 현재의 내 모습을 보기 위해 거울 앞에 섭니다. 대부분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교정하는 이유는, 어디론가 혹은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거울을 마주 대할 때, 나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거울과 나란히 서서는 결코 나를 바로잡을 수 없습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시간과 나란히 선 자세, 시간은 흘러 가는 것이야…, 하는 마음으로는 그 사람은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아갈 뿐입니다.
종국에 어제와 같은 내일 말입니다. 그 내일은 ‘죽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죽음은 눈 깜짝할 사이 지금 여러분에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4. 그래서 시간은 마주 대해야 합니다. 미래가 지금 나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마주 대하는 사람의 자세라야, 오늘 나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돈을 성공의 가치로 삼는 사람의 미래와 마주 대하면, 그 사람은 결국 돈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사람을 행복의 가치로 삼는 사람의 미래를 마주대하면, 그 사람은 결국 ‘사람의 소유’가 될 것입니다. 공부를 삶의 가치관으로 삼는 사람의 미래를 마주 대하면, 그 사람은 ‘지식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5. 그래서 꿈은 소유가 되서는 안 됩니다. 정확히 말하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꿈이 될 수 없습니다. 소유할 수 있는 꿈은 결국 욕심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욕심은 더 갈급하게 만듭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마치 빨갛게 충혈되어 도박장에서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과 같습니다.
6. 소유할 수 있는 꿈은 그것을 얻고 나면 또 소유를 위해 다른 길을 찾습니다. 미로 찾기처럼, 보석 반지를 얻기 위해 살아서 얻었지만, 옆에 또 다른 더 큰 보석에 눈이 갑니다. 왜요? 그것이 행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소유해야 행복해질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계속 돌고 돌지만 결국 막다른 길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변화하지 않습니다.
7. 사람들은 직업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만 하면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좋은 집과 명예로운 타이틀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얻고 나서 만족하지 못한 채, 또 다른 길을 찾습니다. 직업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는 했는데, 행복하지 못해 실망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어느덧 얼굴 가득 어린 시절의 행복한 모습이 아닌, 굳어진 자기 얼굴을 거울을 통해 봅니다.
더 큰 문제는 그 본질적 요소를 본인이 깨닫고도, 자신의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같은 길을 권한다는 것입니다.
“돈부터.”
“직장부터.”
“결혼부터.”
“집부터.”
“네 사람부터.”
라고 말입니다.
8. 아무리 수백억원 어치의 보석과 같은 것이라도, 소유의 가치는 꿈이 될 수 없습니다. 욕심은 종국에는 죽음이 될 수밖에 없음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꿈은 언제나 좇아갈 수 있는 푯대여야 합니다. 그러면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내가 좇아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9. 2018년 한국 교계는 몸살을 앓았습니다. 총신대 사태부터 명성교회 사건, 서울교회 분쟁까지…, 곳곳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결국 소유가 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유가 꿈이 된 사람은 내려놓지 못합니다. 그것을 내려놓으면 죽는다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그 사람은 내년도 올해처럼 살 것이 뻔합니다. 이미 그 모습이 올해 구현된 것입니다.
10. 사도 바울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저와 여러분이 꿈꿔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꿈꾸는 사람은, 오늘 내가 있는 현장이 어디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소유를 위해 장소를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은 내가 있는 곳이 곧 목회지요. 선교지요. 직장이요. 가정이요.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11. 돌아보니 저희 교회도 한국 교계가 겪었던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아픔을 주셨던 것은 지금 이 시대에 아픔을 겪고 있는 교회들을 위로하고 공감해 주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교회에서 그 고난과 시련을 통해 주저앉아 버린 청년과 성도들에게, 그래서 우리가 좇아가야 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임임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콰이어팀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부터 청년 장년 노년, 아니 그냥 생명샘교회 전체가 사실상 합창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월 20일. 이 땅에 교회로 인한 아픔으로 무너지고 세상의 시험에 빠져 무너진 분들과 함께,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찬양 콘서트를 할 생각입니다.
12. 그로 인해 교회의 이름은 가릴 생각입니다. 홍보 영상에도 교회 이름을 삭제하고 전단지에도 뺄 생각입니다. 장소도 교회에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제3의 장소를 물색하여, 그곳에서 그저 우리가 하나 되기를 바랍니다. 저도 찬양단에 그냥 합류하여 옆자리에 있을 생각입니다.
그날 제 설교는 없습니다. 아이들의 성극으로 메시지를 전할 생각입니다. 교회 예산으로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후원으로 하려 합니다. 그래서 밥 한 끼 굶고(밥) 평화 짓고(짓) 기도하기(기) 2차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13. 연말에 가장 바쁜 시간, 온 교우가 모여 연습에 열중입니다. 그런데 장소 알아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인근 교회들에서 하기 또한 쉽지가 않습니다.
연습으로 인해 교회 총회도 하지 못하고 있고, 청년부 예배 시간도 들쭉 날쭉. 교역자는 연말에 지쳐가고 있습니다.
14. 그런데 저는 보입니다. 내년 교회의 미래가 보입니다.
모두가 다 아마추어. 들리는 소리나, 보이는 모습은 전혀 프로같지 않지만 모습 자체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은, 찬양을 위해 버려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청년예배가 그 형식을 버려 연습시간과 하나되어야 하고, 서로의 주장을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15.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대강절기를 보내면서 무엇을 꿈꾸고 계십니까. 올 한 해, 아니 오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아무 생각없이 그저 시간은 흘러가는 거지, 생각하며 오늘을 살고 계십니까?
그러나 여러분.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히 11:1)”는 말씀처럼, 소망하는 바가 오늘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아십니까?
그 소망하는 미래가 오늘 여러분의 삶에 이미 드러나고 있음을 모르신다면, 지금 여러분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 미래와 마주 대하십시오. 그 시간은 눈 깜짝할 시간입니다.
그제서야 소유를 좇아 살고 있는 여러분의 민낯이 환하게 드러날 것이요, 그 미래는 터키의 묘비명에 붙어있는 묘비처럼 이렇게 될 것입니다.
“나 어제의 너와 같았으나, 너 내일 오늘의 나와 같으리.”
이제 미래와 마주 대함을 두려워 말고, 버릴 것을 버리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사시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가득한 연말이 되실 것을 믿습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