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영 칼럼] 창세기 18장 21절
1. 성경에 "알다"와 관련하여 번역된 히브리어와 헬라어는 40여 가지나 됩니다. 그 중 본문의 "알려하노라"(히, "yada")는 히브리어 "야다"의 번역입니다.
2. 이 "야다"("알려하노라")는 모르시는 게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알고 계신 것을 경험과 실험을 통해 완전히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3. 즉 몰라서 알려고 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의 편에서 인간의 수준에서 인간에게 보여주시려는 의미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참고: 이것을 신학의 용어로 "적응의 원리"라고 합니다.).
4. 쉽게 말하면 우리말 어법 가운데 "눈높이"라는 용어와 유사합니다. 우리 사람이 실력이 뻔한 아이를 두고 그 실력을 알면서도 어디 한번 실력 좀 제대로 알아보자 묻는 것과 유사합니다(태권도 실력, 바둑 실력, 피아노 실력 등등).
5. 하나님의 아심에는 인간의 구원과 심판에 대한 부분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아셨습니다. 이 도시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산 도시들이었습니다(유 7절, 벧후 2:6-10절). 하나님은 참으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나 영원히 참으시는 분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죄까지 사랑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결국 "알려하노라"라는 이 말씀의 참된 근본적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타락상을 친히 알아보려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아브라함과의 대화를 통해 인간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며 참고 기다리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시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덕영 목사(창조신학연구소https://blog.naver.com/davidycho 소장, 조직신학, Th.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