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승의 러브레터] 오보와 가짜뉴스 사이에서
1. 딕셔너리닷컴은 올 한 해를 ‘misinformation(오보)’라고 정리했습니다. 정보는 많아졌지만 오히려 잘못된 뉴스가 더 많아져서 사람들에게 혼동을 준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fake news(가짜뉴스)’라고 하는 게 더 친숙해 보입니다. 잘못된 정보는 때로 의도적 오류를 재생산하면서, 너나할 것 없이 거짓을 전하고 들으며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것입니다.
2. “늑대가 나타났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늑대가 없어도 재미삼아 늑대가 나타났다 외치는 거짓 소년의 이야기에 반응했던 사람들과 전하는 소년….
정작 중요한 때가 되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지만 그 진실에는 반응하지 않는 마을 사람들과, 그로 인해 죽게 될 소년 말입니다.
3. 어느 날 예수님께서 길을 거니는데 회당장 야이로가 와서 말합니다. “주님 제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살려주세요.” 자신의 지위와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무릎 꿇어 사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 대해 말 한 마디 없이 그저 걸어가십니다. 게다가 웬걸, 자신의 죽게 된 딸이 아니라 어떤 이름 모를 여인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죽을만한 상황도 아닙니다. 내 상황이 훨씬 급한데 예수님은 그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35절에 한 무리들이 등장해서 말합니다. “당신 딸이 죽어버렸소! 예수님은 괴롭히지 마시오!”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야이로의 인생에 가장 큰 오보, misinformation이 도착했습니다.
오보를 들은 야이로가 “에이, 이제 당신은 필요없습니다”고 예수님을 버리거나, “이제 내 딸의 장례 준비를 해야겠소” 하고 부리나케 떠났다면, 그야말로 그의 인생은 오보이면서도 오보인 줄 모르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4. 옥스포드 사전은 올해를 ‘toxic’이라는 단어로 정리했습니다. 이 단어는 독성 물질을 의미하지만, 그 단조로운 독성 물질뿐 아니라, 직장과 학교, 관계, 스트레스 등을 아울러 표현하는 은유적 영역까지 경계선이 넓어졌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이 시대 자체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힘든 시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5. 한 여인에게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혈루병이라는 병이었습니다. 거의 고치기 힘든 불치병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혐오하는 병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만지면 그도 부정해지는 병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사이에 함께 설 수 없습니다. 늘 뒤에 따라다녀야 합니다. 고개는 저절로 숙여집니다.
낮아진 자존감,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해결 못한다고 생각하며 그 여인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사들에게 갑니다. 아픈 여인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많은 의사를 만났는데, 그만큼 더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가진 것도 다 허비했습니다. 증상이 더 심각해져 버렸습니다. toxic(독극물)에 온 몸과 맘이 죽어갑니다.
6. 그런데 예수님 소문을 듣습니다. 앞으로, 뒤로, 옆에 수많은 인파가 있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면 모두 알아볼테니, 보일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뒤꽁무니만 쫓아, 살짝 옷자락만 만지기로 결심합니다. 마음이 두근두근 거립니다.
‘만지기만 해야지, 나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실거야.’
예수님은 여인을 보지도 않고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 몸뿐 아니라 마음도 말이지요. 그리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시키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러면서 뒤에만 있던 그 여인을 자신의 앞에 세우십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깨끗해짐을 증명해 주십니다.
여인은 너무나 기뻐합니다. 한 순간에 몸뿐 아니라 마음도 영도 회복이 됩니다. 여인의 삶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어납니다.
7. 웹스터 사전은 올 한 해를 ‘Justice’라고 정의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것을 추구하고 찾았지만, 오히려 정말로 ‘정의’가 사라진 시대, ‘무엇이 올바른지 모르는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즉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바른 주장을 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세상은 뭐가 정말 올바른 것인지 혼동스러운 듯 합니다.
프랑스의 유류세 인하가 ‘노란 조끼 운동’으로 번질지 아무도 예상 못했던 것처럼, 한국의 미투 운동은 이수역 사건으로 번지며 남녀 갈등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상승은 소상공인들의 시위로 격돌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문제인가?’를 외치는 모두가 각자 생계 문제와 자기 주장만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경계와 반목의 대상으로 만듭니다.
8.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의 고백을 독백 형태로 바꾸어 작성해 봅니다.
1) 저는 무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귀신이 들렸거든요. 그 귀신이 들리자 자꾸 무덤이 좋아집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무덤에 가면 안 된다고 하는데, 자꾸 몸이 무덤으로 향합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죽었습니다. 무덤이 집이니까요. toxic, 온갖 독성이 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사람들이 오네요. 저를 쇠사슬로 묶고, 주술을 외우고 고랑으로 맵니다. 그런데 웬걸. 제 안에 귀신의 힘이 더 강해집니다. 쇠사슬이 끊어지고 고랑도 깨트립니다.
엄청난 힘이 주어졌는데, 이상합니다. 이 힘을 가지고 자꾸 왜 저는 저를 해치고 있는 것일까요? 너무 아픕니다. 괴롭습니다. 누구도 저를 해결해주지 못합니다.
2) 그런데 예수라는 존재가 바다 건너 제게 왔습니다. 제 안에 귀신이, 그를 보더니 갑자기 예배합니다. 경배합니다. 와, 놀라운 분이구나 싶습니다.
예수님이 제게 묻습니다. “네 이름이 뭐야?” 저는 제 이름을 이야기하려 했는데, 제 안에 다른 대답이 나옵니다.
“나는 군대입니다!!!”
제 안에 귀신은 군대라는 막강한 힘으로 자기를 자랑합니다. 로마 최강을 자랑하는 레키온! 그 군대의 힘…, 이 정도면 멋지네요.
제 안에 귀신이 또 외칩니다. “제발 나랑 상관하지 마세요! 당신이 무슨 상관입니까 예수여!”
이상합니다. 예수님께 예배하고 경배했는데, 왜 상관하지 말라고 하는걸까요?
3)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말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의 몸에서 나와 돼지떼에게 들어가라!” 그 순간 저를 지배하던 독성과 같은 모든 것들이 빠져나갔습니다.
제가 의지했던 레키온 로마 군대처럼 강력한 그 힘이 돼지떼에게 가버리다니요. 그 돼지들은 물에 빠져 모두 몰살당했습니다.
그제서야 알게 됐습니다. 이것이 자유함이구나! 이것이 정말 기쁨이구나! 온 몸과 마음이 자유해졌습니다. 더 이상 세상이 저에게 처방해준 쇠사슬에 매일 필요가 없네요.
무덤이 제 집이 아니었어요. 그건 모두 misinformaiton, 오보였습니다.
4) 마을 사람들이 몰려듭니다. 너무 반가웠어요. 눈물이 납니다. 저는 자랑했어요. “여러분! 예수님 너무 놀라운 분이세요! 이분에게는 능력이 있어요. 자유하게 하는 능력이요!”
마을 사람들은 제가 자유해진 모습. 온전해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놀란게 아니네요. 이건 무슨 일일까요?
그들이 분개합니다. 그들이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이 놀랍고 기쁜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당신이 무슨 상관입니까! 제발 떠나십시오!”
5) 온 몸에 소름이 돋습니다. 제 안에 있던 그 귀신들의 목소리가 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제서야 이유를 알겠습니다. 돼지떼들은 그들이 사고파는 도구였습니다. 이제 예수님 때문에, 그들은 시간과 돈을 잃었음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 오히려 두려워하며 제발 떠나라고 하는 그들의 마음이 안타깝고 눈물이 납니다. 나는 자유해졌는데 그들은 매여 있습니다.
아우성을 칩니다. 그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하기 시작합니다. 커다랗게 적혀 있네요. “예수여 제발 떠나라. 나랑 상관하지 말라!”
예수님이 떠나십니다. 로렌스라는 분이 했던 말이 기억에 납니다.
“성도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교회답게 보이는 건물과 그들 보기에 성직자답게 성장한 목사와 평소 몸에 익은 스타일대로 드리는 예배를 원한다. 그리고 여기에 한가지 더 원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회가 그들 혼자 가만히 있게 내버려 두어달라는 것이다.”
9. 야이로는 사람들 주위에 서 있습니다. 딸이 눈앞에 있는데 정말 죽은것 같네요. 사람들 이야기가 맞는 것일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딸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선언합니다.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다.” 놀라운 판정입니다.
제 친구들 중 의사도 있고 판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장의사도 있는데, 이들의 모든 판정이 틀렸다고 선언합니다. 너희들의 진단은 틀렸답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합니다. “소녀야 일어나라!”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분이 Justice입니다. 그분만이 misinformaiton을 바로잡는 분입니다. 그분만이 toxic을 바로잡을 분이십니다.
10. 사랑하는 여러분, 마가복음 5장은 귀신 들린 한 명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귀신 들린 청년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예배를 드리지만 예수랑 상관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곳,
아무리 좋은 일, 필요한 일이라 해도, 내게 이득이 안 되고 손해가 되면 “제발 나랑 상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곳, 그곳이 귀신들린 지역이요 시대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 속에 혈루병 걸린 여인은 몸의 질병뿐 아니라 마음과 관계 속 깊은 스트레스와 우울감에 빠져 살고, 같은 배경 속에 야이로의 딸이 “이 애는 죽었다”라는 판정을 받으며 살아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2018년이요, 세상은 뒤늦게 이를 정리하며 toxic의 시대요, misinformation의 시대요, justice의 부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1. 한 해 동안 우리는 어쩌면 야이로에게 전해진 정보처럼 세상의 잘못된 정보에 빠져있었을 수 있습니다. 나는 학생이니까, 나는 직장에 다니니까, 나는 아프니까, 나는 거리가 머니까…, 라는 이유로, 아프니까 의사에게 갔던 혈루병 걸린 여인처럼 살아갔을 수 있습니다.
예수를 보기는 보고 믿어도 뒤꽁무니만 좇고 옷자락만 만지고 가려는 삶 말입니다.
여러 방법을 다 써봐도 오히려 나를 해치고, 여전히 집단의 힘에 의지해 큰 것, 화려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거라사 지방 귀신들린 청년의 모습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 지방처럼 예수를 향해 제발 상관하지 말라고, 제발 사라지라고 말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립니다. 그 모습이 교회들 안에 있습니다. 성도들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아시고, 우리 주님은 그 한 명의 청년을 향해 바나 건너 오셨습니다. 그런 우리 마음을 아시고 혈루병 걸린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십니다.
세상의 판정 모두를 향해 “너희가 잘못된 정보를 준다! 이 아이는 죽은 것 아니라 자는 것”이라며 대반전의 드라마를 완성시키십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달리다굼의 은혜가 가득한 2018년의 마지막, 그리고 2019년을 준비하는 새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