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학업과 취업 대신 자녀들을 ‘천국(SKY)’으로…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유명 영어학원에서 지난 10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30대 이후에도 아름다운 삶을 유지하는 3가지 원리’를 깨달은 유하워드 원장님이, ‘대한민국 사교육 현실’을 꼬집은 드라마 ‘SKY 캐슬’에 대한 관심과 이에 대한 기독교적 사례를 담아낸 글을 특별기고해 주셨습니다. -편집자 주
“SKY 캐슬, 어디까지가 진짜에요?”
12년이 넘도록 대치동 학원가에 있었지만, 일개 드라마에 대해 이처럼 많은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극중 장면 가운데 교육 현장에서 가장 자주 목격하는 것 두 가지로 답변을 열고자 한다.
“내 꿈은 다 포기하고 살아왔는데, 내 인생이 빈껍데기 같아요.”
유명대 입학생 행세 중이던 딸의 자작극 실체를 깨달은 노승혜의 고백이다. 그토록 매달렸던 자녀 학업의 끝자락에서 피어오르는 공허함에 목 놓아 울부짖는 오열은, 대치동에서 자주 듣는 곡성이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쉰이 되도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놈으로 만들어 놨잖아요. 어머니가!”
엄마의 교욕(敎慾)에 힘입어 의사가 되었으나, 병원 내 주요 보직을 차지케 하려는 70대 노모에게 여전히 통제 당하던 50대 강준상의 폭발이다.
필자가 교육 현장에서 만나왔던 주인공들은 주로 30대였고, 부모 아닌 술잔을 향해 가슴앓이함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가르쳐 줬다. 부모의 교육열이 얼마만큼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 자식에 대한 꿈이 용납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성경이 말하는 교육열의 기준과 자녀를 향한 목표 범위 중 하나는 ‘건강한 독립’에 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24, 우리말성경)
위 말씀의 핵심은 ‘떠나’에 있다. 이는 절교가 아니다. 육체적·정신적·경제적 독립을 의미한다.
반려동물과 자녀를 키우는 행위의 중요한 차이가 무엇일까? 반려동물의 보살핌은 함께 붙어 지내는 동안 계속된다. 그러나 자녀를 향한 보살핌은 독립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부모와 자녀 간의 서로를 향한 건강한 독립 말이다.
자녀가 없으면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부모. 그래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자녀를 속이며 여전히 심리적 탯줄을 꼭 쥐고 있는 노승혜들. 아이를 향한 과도한 보호와 통제 결과 나이 20-30이 되어도 자기 일을 스스로 처리 못하는 강준상들.
그들보다 더 비참한 분류도 있다. 계속 사랑해 달라며 부모의 바지자락을 붙들고만 있는 성인 아이들. 그 놈의 탯줄이 그토록 질긴 줄 하나님께서도 아셨나보다. 그래서 구약도, 신약도 우리에게 ‘떠나’를 반복하신다.
사랑하기에 놓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조금 더 준비되면 보내준다는 부모들 밑에서, 준비된 자녀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못 보았다.
부모와 자녀를 묶고 있는 탯줄에서 서로가 탈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은 가능하다. 잘 떠나는 아이가 성공한 자녀다. 잘 보내는 부모가 훌륭한 부모다.
그러면 대한민국 교육현장에서 ‘떠나=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일은 무엇일까?
사교육 안 시켜도 우등생이라며 자신은 바른 교육을 고수한다는 극 중의 이수임 모습은 아닌 듯하다. 부당함은 못 참는다며 권위와 질서의 빈틈을 날카롭게 쑤셔 파는 똑순이 혜나처럼 키워야 할지도 의문이다.
대신 ‘SKY 캐슬’을 넘어 ‘SKY(천국) 복음’을 택한 세 가정의 이야기로 오늘 답변을 맺으려 한다.
우선 필자의 이모님 이야기다. 그분의 세 자녀는 올해 30대로 모두 서울대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친 교수, 의사, 공학박사다. 그러나 그 분의 삶은 ‘캐슬 이야기’와 거리가 멀다.
교회에서는 순장님으로 오랜 기간 순원들을 돌보셨다. 한 때는 소녀 가장의 집을 방문하셔서 무료로 학습을 도우셨다.
예수님을 전해야 하신다며 암투병 중이신 치매기 있는 시아버님을 당신의 댁에서 수 년간 모셨다. 등단 시인으로서 창작 활동도 지속하셨다. 이 모든 일은 자녀들이 고3일 때도 멈추지 않았다.
이모님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렇게들 반발하더라.
“지금은 30대들이 대학 가던 시절과는 다른 세상이에요!”
그대의 생각이 그렇다면, 재수 안 하고 올해 대학 가는 한 학생의 이야기로 답변하겠다.
작년 여름쯤이었나 보다. 필자의 이전 순장님 댁에서 식사 중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교통체증이 풀려 교회 수련회에 갔던 딸아이가 서너 시간 일찍 도착했기에 데리러 가셔야 했던 것이다.
당시 그 딸아이는 고3. 그해 겨울, 난 그 아이에 대한 3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주일예배나 여름, 겨울 수련회를 결석한 적이 거의 없었단다. 공부 드세기로 알려진 OO고교에서 전교 1등도 하는 전교권 성적을 유지했다. 그리고 SKY 중 한 곳에 입학했다.
“우리 아들이 물어요. 왜 우리 집은 이렇게 가난하냐고….” 맞벌이 선생님이자 필자의 현재 순장님이 순모임 중에 내뱉으신 고백.
그러나 순장님은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특별활동비를 챙겨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남모르게 도우셨다. 해마다 40일 기도 기간 중에는 이른 새벽부터 봉사하셨다. 농촌교회를 돕는 사역에도 수년간 열정으로 섬기셨다.
이 모든 일은 첫 딸이 고3일 때도 멈추지 않았다. 2018년 어느 겨울날, 그 딸아이는 말 그대로 S.K.Y. 모든 학교로부터 수시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오해 없길 바란다. 필자는 특정 대학입학이 성공의 척도라 말하고 싶지 않다. 세속적 이득을 위한 신앙적 투자론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SKY를 관음하며 자녀의 내면세계에 흙탕물질 안 하는 부모들도 많다는 것, 자녀의 학업과 취업이 아닌 SKY(천국)에 자신들을 내던지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것.
그렇게 사명이 뚜렷한 부모 밑에서 자녀의 목표도 뚜렷해지는 선순환은 오늘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라는 것, 이 또한 부모와 자녀가 서로로부터 건강히 독립하는 지혜 중의 하나라는 것.
사교육은 필요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면 그만일 뿐, 대치동 한복판에도 ‘SKY 캐슬’을 넘어 ‘SKY(천국) 복음’을 택한 사람들의 행진은 여전하다.
유하워드 원장(대치동 eMAX영어학원, <잘 풀리는 자녀의 비밀> 저자, 교육학 박사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