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교회 안에 들어온 세상 논리
1. 교회 안에, 세상의 논리가 많이 들어와 있음을 봅니다.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논리로 지배되는 현상을 보면 마음이 두렵습니다.
훌륭한 목회자 선배님들이 결국 자본주의 논리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큰 교회들이 결국 자본주의와 시장논리, 그리고 조직과 제도에 의해서만 움직일 때, 우리 교회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두렵기도 합니다.
2. 최근 미취학 어린이 사역을 위해 기도하며 사역자가 필요하여, 잠시 공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문의 주시는 분들의 많은 수가 먼저 묻는 것은, 사명과 사역에 대한 나눔 이전에 ‘급여’였습니다.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우선돼야 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먼저 기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마음이 저에게는 과연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3. 저는 쿰 카페에서 자원봉사로 일합니다. 저 외에도 봉사하는 분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명씩 있습니다.
모든 분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하시는 분들이고, 자기 일들이 있는 분들입니다. 거리도 먼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항상 시험은 들게 마련입니다. 내가 왜 봉사를 해야 할까? 이 시간에 근무하면 얼마를 벌게 될텐데.
4. 어떻게 해야 공동체가 흔들리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자리가 담임의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떻게 해야 한 명 한 명 사명이 흔들리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해결책은 다른 게 없습니다.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부교역자에게만 맡기거나 집사님 권사님 청년들에게만 맡기는 자리가 아니라, 봉사의 자리에 함께 동참할 때 비로소 참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5. 휴일에도 카페가 쉴 수는 없습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잠시나마 휴식의 공간이 되기 위해, 정작 공휴일에 카페의 자리가 필요하신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카페지기도 휴일에는 쉬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평일에도 자신의 시간을 마치는 봉사자들에게, 휴일마저 쉼 없이 봉사하라고 할 순 없습니다.
어긋난 궤적을 맞추기 위해, 휴일에는 제가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카페의 오전 오픈과 점심까지, 그리고 공휴일을 담당합니다.
6. 같은 이유로 이번 명절에도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일을 마칠 때쯤, 마음 속에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작 나는 왜 쉼이 없을까? 이 시간에 차라리 설교 준비를 위해 쉬는 것은 어떨까?”
토요일에 학교 사무국 설교와, 어린이 사역팀인 엘림 달꿀 예배를 위한 설교, 주일에는 본 예배와 청년부 설교, 월요일에는 섬김훈련과 이어지는 새벽기도, 그리고 수요 말씀모임까지. 모두 다 다른 내용의 설교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참으로 빠듯합니다.
7.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일을 마치고, 저녁에 모처럼 영화를 보기 위해 나갔습니다. 일년에 꼭 하는 일 중 하나는, 명절만큼은 시간을 내서 극장에 찾아가 직접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1년에 극장에 가는 날은 2번 정도 됩니다.
전부터 보고 싶었던 <말모이>를 예매했습니다. <말모이>를 보고 싶었던 이유는 3.1절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므로, 우리 말의 가치를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8. 휠체어로 봐야 하므로 장애인 좌석을 분명히 예매했는데, 극장에서 장애인 좌석이 없는 관이라고 했습니다.
새로 생긴 극장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암담했는데, 극장에서 다른 티켓으로 바꾸어 줄테니 다른 관에서 그 영화를 보라고 합니다. 어거지로 바꾼 티켓은 <극한직업>이었습니다.
현재 가장 핫한 영화이지만, 별로 볼 생각은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내 그곳까지 갔는데 그냥 돌아올 수도 없어서, 관람을 했습니다.
9. 영화 내용은 간단합니다. 범인을 잡아야 하는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잠복근무를 하기 위해 범인들의 맞은편 치킨집에서 잠복하는데, 하필이면 그 가게가 장사가 안 돼서 매매를 한답니다.
잠복근무를 해야 하는데 가게가 다른 곳에 팔리면 큰일 난다고 판단한 고반장(배우 류승룡)은 자기 퇴직금을 털어 가게를 인수합니다.
사명을 위해 자기 모든 소유를 판 것입니다. 언뜻 보기엔, 참 미련한 짓입니다.
그런데 범인을 잡기 위해 치킨집을 매매하자마자 이런! 장사가 대박이 납니다. 손님들이 셀 수 없이 들어오고 대기합니다.
범인을 잡기 위한 장소이기 때문에 문을 닫아놨고, 범인을 잡기 위한 메모들이 즐비했습니다.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질문합니다. “여기 치킨집 아니었어요?”
손님이 많아지자 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돈이 많아지고 일이 바빠지면서, 점점 범인에 대한 관심은 사라집니다. 장사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퇴직금을 털어서 범인을 잡기 위해 가게를 인수했는데, 아내에게 그 퇴직금을 다시 가져다 주는 것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10. 영화를 보면서 점점 몰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의 메시지 하나 하나가 남다르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 관중들이 웃어도 웃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에서 류승룡 씨가 이런 말을 합니다.
“소상공인을 잘 모르나본데, 우린 원래 다 목숨 걸고 일해!”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다 힘들게 일한다는 것입니다. 경찰도, 치킨집도. 배달원도, 주방장도…, 다 힘듭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힘들게 일하는 것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사명이 사라졌습니다.
네, 범인을 잡는 것.
치킨집을 하는 이유도. 퇴직금을 모두 털어버린 것도. 경찰이 된 것도.. 다 범인을 잡기 위한 사명임을 잊었습니다.
그때, 이동휘라는 배우는 그나마 밖에서 대기하는 감시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안에 들어갈 때마다 이 사람들이 같은 팀원으로서 범인을 잡는 사명보다 닭 잡는 데만 몰두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소리칩니다.
“범인을 잡으려고 치킨집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치킨집을 하려고 범인을 잡는 겁니까?”
11. 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하나님이 저에게 강력히 묻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야, 류한승 목사! 너는 나를 위해 목사를 하는 거냐? 아니면 목사를 하려고 나를 이용하는 거냐!”
“생명샘교회는 나를 위해 세워진 거냐? 아니면 생명샘교회가 버티고 살기 위해 나를 이용하는 거냐!”
“류한승 목사! 너는 나를 위해 설교하는 거냐? 아니면 설교를 하기 위해 내가 필요한 거냐!”
그 대사에 사람들은 다 웃고 있었는데, 저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직접 노동의 현장에 동참함으로 더 깊이 깨닫고 있습니다.
동시에 많은 설교의 스트레스, 거기에 더해 섬김의 일을 하면서도 왜 이 사명을 해야 하는지를 잊어가고 있었던 제게 하나님이 예비하셨던 메시지였습니다.
12.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일을 안 하는 분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경찰, 누군가는 주부, 누군가는 학생, 누군가는 회사원…, 누군가는 자영업자로 모두가 다 목숨 걸고 일합니다.
그런데 목숨 걸고 일하다 보니, 내 직업이 무엇이건, 그것이 ‘도구’임을 잊어가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정작 목숨을 걸어야 할 예배에는 지각하고, 졸고, 그러면서 핑계 대기를 “너무 피곤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까?
정작 세상을 위해 섬겨야 하는 자리가 있음에도, 어느덧 도구여야 할 자신을 위한 일이 더 중요해져 버린 것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사역자 여러분,
여러분의 사역과 섬김이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까!
직분자와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겁니까? 일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공부하는 겁니까? 합격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 함께 무슨 일이건 하나님을 위해,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유하는 귀한 한 사람 한 사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