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윤 박사의 새 창조론 쓰기
5 생명의 기원에 대한 논쟁
기독교인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지구의 생명이 신의 창조에 의하여 발생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무신진화론에 대한 대응 방법이다. 무신진화론은 특히 기독교를 겨냥하여 유물론과 진화론이 결합한 것이다. 근대과학이 무신진화론으로 기울어진 것은 어쩌면 기독교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근대과학은 대부분 기독교인 과학자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임에도, 과학이 점점 창조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유물론과 진화론의 등장으로 과학은 자연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신을 점점 외면하더니 결국에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신학과 철학을 넘어선 근대과학은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에 의하여 유신진화론을, 『생명의 기원』의 저자 오파린에 의해서는 무신진화론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의 우수성은 거대한 현대문명을 건설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과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체계적인 객관성을 요구한다. 객관성은 사실성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객관성과 사실성이 검증되면 더 이상 논쟁할 이유도 없어진다. 생명의 기원 문제를 놓고 논쟁하고 있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요구되는 것이 바로 사실성이다. 가장 단순한 원핵생물의 세포에서 물질이 어떻게 생명의 기능을 발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양자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한다. 하나의 명제에 대해 두 가지 모순되는 사실이 존재하지는 않는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논쟁에서 승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의 주장에서 사실이 아닌 오류를 발견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양자의 논쟁에서 승자가 이 세상의 주도권을 잡고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이다.
세계 최대의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진화론 반대 분위기가 우세했던 경향이 무너지기 시작했던 시기는 1925년 일명 '원숭이 재판'으로 물리는 스코프스 재판이 벌어지면서부터였다. 1961년에 헨리 모리스(Henry Morris)는 『창세기 대홍수』를 출판하고, 창조과학적 창조론 네트워크를 조직하여 진화론에 대항했으나, 오히려 진화론 교육 금지법이 폐지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1980년에 인공세포를 만들고 그것으로부터 인공생명을 제조하겠다고 장담하던 무신진화론자 오파린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죽었다. 이것은 기독교를 등에 업은 창조과학적 창조론 네트워크에는 좋은 기회였다. 마침 아칸소 주와 루이지애나 주에서 과학교육 시간에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도 동등하게 가르칠 것을 규정한 '동등시간법'이 1981과 1982년에 각각 통과되었다. 이에 대해 진화론자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미국 대법원은 창조 과학을 가르치는 것이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주장하는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창조론의 우군으로 그 무렵에 등장했던 지적설계론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비슷한 처지에 몰렸다. 2004년 기독교의 지원으로 펜실베이니아 주에서는 생물학 시간에 지적설계론을 함께 가르치도록 과학교육 과정을 바꾸었다. 그러나 미국 법원에 의해서 지적설계론이 과학이 아니므로 과학 수업시간에 가르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결국 진화론에 대한 기독교의 반론은 공식적으로 실패했다.
그 이유를 살펴보면 종교의 자유를 강조하는 미국의 수정 헌법에 의한 영향이 가장 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기독교의 창조과학적 창조론이 약 3,500년 전에 쓴 모세의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사실성이 결여된 것이다) 반면에, 무신진화론은 과학이론에 근거하여 체계적으로 업데이트(update) 되면서(또한 사실성이 결여된 것이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지지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검토하면서 기독교는 창조론이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제시해야 할 증거가 '문자 그대로' 해석한 성경 본문이 아니라, 사실적인 과학적 자료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경은 진화론과의 논쟁에서 객관적인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제까지 창조론이 실패한 이유도 자료를 주로 성경에서 인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창조과학적 창조론의 주창자 헨리 모리스도 생전에 그가 목적했던 진하론 비판에 대해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2006년에 죽었다. 그동안 모리스의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오히려 기독교를 무지의 종교라는 비판의 구실만 제공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양 진영의 지도자 두 사람이 모두 전장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이 쉽게 끝날 일은 아니다. 창조론은 우군인 지적설계론 진영에서 『세포 속의 시그너처』(2009)를 발표하고, 업데이트된 무신진화론의 가설들을 체계적으로 반격한 스티븐 마이어(Steve Mayer)의 등장에 힘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돌아보면 기독교 창조론에는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후 진화론에 맞서 체계적이고 객관성 있는 어떤 이론도 제안된 사실이 없다. 이제 기독교 창조론자들은 지적설계론과 진화론의 논쟁을 구경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적설계론이 기독교 창조론에 우군이긴 하지만, 창조자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기독교와 다르게 주장하기 때문이다. 기독교 창조론자들이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을 제대로 검토한다면, 머지않아 그들을 추월하여 보다 현대적으로 업데이트된 창조론을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기독교를 수호하는 길이 되라고 본다.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 즉 최초 생명의 발생은 인간이 볼 수 없었던 사건이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지구에서 원핵생물이 최초 생물의 형태이며, 원핵세포의 구조와 기능에 생명의 기원에 대한 비밀이 간직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무신진화론의 생명의 기원에 대한 가설들을 비판하려면, 생명의 두 가지 특징들- 자기보존을 위한 대사기능과 자기 종의 번식을 위한 자기복제 기능-을 가진 최초의 생물이 자연에서 '저절로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는 가설을 논리적으로 반박해야 한다. 현재 생물들이 두 가지 생명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 종류별로 각각 다르다. 그렇다면 각 생물들에게 각기 다른 구조와 방법으로 작동하는 생명의 정보가 물질에서 어떻게 '저절로 우연히' 발생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지 않는가?
(1) 원핵세포의 구조와 기능의 발생에 대하여
생물에겐 외부로부터 자신의 조직을 보호하고 외부 물질의 출입통로를 갖고 있는 외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원핵생물의 외피는 곧 세포막과 세포벽이다. 오파린은 『생명의 기원』에서 물에 녹아있던 유기화합물이 기름방울처럼 뭉쳐서 외피가 형성되고, 그 안의 화합물에서 '저절로 우연히' 화학적 대사기능이 생겨나면서 생명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포에 대한 연구가 발전되면서, DNA와 단백질이 세포의 구조와 기능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DNA가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를 가졌고, 그것의 정보에 의해 단백질이 만들어지고, 단백질이 다시 DNA를 만든다. 그렇다면 '단백질과 DNA의 어느 것이 먼저 있었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런 식의 질문에만 매달려 있으면, 최초에 '닭이 달걀을 낳았고, 달걀이 닭이 되었다'는 말과 같이 순환논리에 갇히게 된다. 어쨌든 물질이 생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생명기능이 발현하는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누구나 이론이 없다. 무신진화론은 어느 날 '우연히 저절로' 물질에서 대사기능을 가진 하나의 세포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약 20분이 지난 후에 자기복제 기능까지 갖추고 자기 자손을 번식하는 최초의 생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지적설계론은 그런 복잡하고 특정한 구조와 기능에는 사전에 어떤 지적 설계자가 만든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창조론은 그런 구조와 기능과 정보는 초월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창조계획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최초의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합리적으로 추정했을 때, 어떤 주장이 좀 더 사실에 가깝다고 믿어지는 것일까?
지구에서 생명의 기원을 명확하게 밝혀줄 객관적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신진화론은 귀추법(歸推法, Abduction)으로 갖가지 과학적 이론들을 인용하여 체계적으로 가설(사실은 아니지만)을 제시함으로써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적 설계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기독교의 창조론은 현대에서도 하나님의 권위와 성경에 의지하여, 약 3,500년 전에 고대 히브리인들이 가졌던 우주관을 고집하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 대해 유신진화론자들은 창조자가 최초의 원시생물 몇 개만 창조했다고 인정하고, 무신진화론자들은 창조자의 존재조차 부정한다. 창조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지적 설계론도 논증에 귀추법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창조론도 동일하게 귀추법을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창조론이 현대인들에게 복음전도의 도구로 쓰이려면, 창세기에 서술된 창조론부터 귀추법으로 사실인지의 여부를 검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귀추법을 적용하여 검토하면, 창세기뿐만 아니라 헨리 모리스에 의하여 제안된 창조과학적 창조론까지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적지 않다. 창조과학적 창조론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서술한 창세기를 그저 '문자 그대로' 인용한 가설일 뿐이다. 그 가설에서 중심축을 이루는 것이 위에는 물을 담고 밑에는 별을 매달고 있는 궁창(라키아)이다. 궁창의 문이 열리고 닫히면 땅에 비가 내리고 그친다. 그런 우주관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것이지, 현대인들에게는 전혀 객관적 사실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궁창이 있(었)다는 것이 사실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그런 궁창 밑에서 생명의 기원이 발생했다고 주장하는 창조론도 객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사실이 아니고 모순되는 서술을 가진 창조론으로는 하나님의 창조를 입증할 수도 없거니와 진화론과의 논쟁에서도 승리할 수가 없다. 기독교 창조론이 현대인들에게 선교의 도구로 쓰이려면, 사실이 아니거나 모순되는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실(사65:17)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이것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버리고 기독교 창조론을 다시 써야 하는 이유이다.
(2) DNA와 단백질의 정보 발생에 대하여
생물은 DNA와 단백질에 의하여 생명의 구조와 기능이 발현되고 있다. 단백질의 제조방법은 세포마다 갖고 있는 DNA에 정보로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현대생물학은 생명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하여 DNA 연구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결국 지구에서 최초의 생명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에 대한 논쟁은 DNA 연구 결과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다. 생물은 외부에서 섭취한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한 후에 세포에서 그 아미노산을 자기에게 필요한 단백질로 다시 합성한다.
이와 관련한 모든 정보가 DNA에 저장되어 있으나, DNA는 mRNA를 만들어 그 정보를 전사해줌으로써 실제적으로는 단백질을 합성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정보를 전사한 mRNA가 그 정보를 다시 tRNA에 전달하면, 그 정보대로 아미노산이 결합되어 단백질이 합성된다. 여기에는 'DNA 정보는 mRNA-tRNA로 흐르지만, 그 반대로 흐르지는 않는다'는 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가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연에는 100여 종류의 L형과 D형의 아미노산이 반반씩 섞여있지만, 특이하게도 생물은 필요한 단백질을 합성하기 위해서 오직 20개의 L형 아미노산만을 선택한다. 생물은 대사과정에서 분해한 10여개의 아미노산과 나머지 아미노산을 외부에서 섭취하여 단백질을 합성하고 있다. 이러한 세포의 선택은 작위적 행동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무작위적 자연선택에 의하여 생명의 기원을 추론하는 무신진화론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DNA도 단백질로 만들어지므로 단백질이 먼저 존재하지 않으면, 세포가 만들어지지 않고 생명이 발생될 수도 없다. 단백질이 결핍하거나 부족하면 생물은 즉각 질병에 노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차는 모든 부품들을 설계도에 따라 먼저 만들어서 조립한다. 그 다음에 에너지를 주입하고, 스위치를 켜야만 엔진이 작동을 시작하듯이 최초 생물의 생명도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추론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각 자동차의 모델별 설계도처럼 각 생물의 종류별 설계도가 반드시 먼저 있어야 한다. 생물은 그 설계도를 세포에 있는 DNA에 저장하고 있다. 자동차의 복잡한 설계도가 자연에서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각 생물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생물의 DNA 역시 자연에서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지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것이다.
결국 생물의 DNA와 단백질은 아무렇게나 섞인 물질 한 방울에서 최초의 생명체가 '저절로 우연히' 발생했다는 무신진화론의 가설을 부정한다. 부품을 조립하고 에너지를 주입한 뒤에 스위치를 작동해야 운행하기 시작하는 자동차를 보고 설계자와 제작자의 존재를 추론하는 것처럼, DNA와 단백질은 지적설계론과 창조론이 귀추법적으로 생물의 설계자와 제작자의 존재를 추론하는 것을 긍정할 수 있는 증거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