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참 인간
1. 예전 개그맨 중 김병조 씨가 유행시킨 말이 있습니다. “먼저 인간이 되어라”.
인간이 되라는 말처럼, 우리가 인간이 되기 위해 생각하고, 또 행동해야할 것들이 있습니다.
2. 인간이라는 한자를 보며, 나름 정리한 인간됨의 기준이 있습니다. ‘人間’.
먼저 ‘사람 인’자를 보면, 서로 기대고 있습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기댈 줄 아는 것입니다. 기댄다는 것은 나를 맡기는 겁니다.
3, 요게벳의 노래에 나오는 가사처럼 ‘너의 삶의 참 주인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내가 맡기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습니다. 내 의지대로 살겠다는 것이니까요. 여러분은 맡기고 살고 계시나요?
4. 그런데 여러분, 그렇다고 인간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기댈 줄 아는 것뿐 아니라,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힘들어서 기대고 싶을 때, 시간이 없고 바쁘다고 외면해 버리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기꺼이 내 어깨를 누군가가 기댈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 그것이 인간됨의 출발입니다.
5.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 인(人)은 누구 하나 위에 있지 않습니다.
너를 위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어줬다고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기가 꼿꼿해지는 것이 아니라, 기댄 사람과 똑같이 엇비슷해지는 것입니다. 자기를 드러냄이 아니라 그와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6. 그런데 금방 깨닫게 됩니다. 자기 어깨를 내어준 사람도, 어쩌면 기대고 싶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내가 뭔가 있어서 도움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나 역시 네가 없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지요.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하고 보듬고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삶. 위태롭게 버티고 버티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 연약함 때문에 결코 서로와의 관계 속에 완전한 행복을 찾을 수 없습니다.
상처와 아픔은 늘 사람을 통해서 옵니다. 가뜩이나 연약해 의지해야 되는 내 삶에 상처가 생기면, 우리는 점점 아무것도 맡기기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외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의지하기도, 어깨를 내어주기도 힘든 시간들만 가득해졌습니다.
7. ‘人間’, 그런데 인간이라는 단어를 보니 한 가지 한자가 더 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 그런 사람 사이에…. ‘사이 간(間)’이라는 단어가 결합돼 인간이 되었습니다.
사람 사이…, 그것이 인간이라니, 참 이상하지요?
어떤 목사님께서 수업 중에 학생이 이렇게 질문했답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목사님은 대답했습니다.
“그 질문을 하는 그대와, 대답을 하는 나 사이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8.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람 사이, 우리 사이. 그 곳에 누군가 계심을 깨닫는 사람, 그가 인간이 될 수 있구나.
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모두 연약해 살짝 건드려도 쓰러질 존재들입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맡기기 싫은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나 혼자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버거워 휘청거립니다. 그런 연약한 나와 그대 사이에 우리 주님은 늘 계십니다.
10. 상처입고 아파서 그냥 홀로 서겠다고 결심한 나와, 똑같은 상처로 얼룩진 그 사람 사이에, 놀랍게도 십자가의 상처로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우리를 사랑한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것을 믿는 사람이 되면 저절로 사람을 사랑할 힘이 생깁니다.
11. 욥기를 통해서 깨닫습니다. ‘잘 봐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친구들, 그러나 그 친구들이 원수가 된 것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세상의 많은 소리들, 청년들의 용어로 ‘Too much Information(TMI)’ 때문에, 진리의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12. 욥기에 드러난 욥과 세 친구들의 삶은 서로 같은 듯 달랐습니다. 욥은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비판했고, 울었습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만난 하나님을 근거로 욥을 평가했습니다. 우리가 뱉는 수많은 말은 이렇게 누군가의 시야를 가리는 도구가 됨을 알게 됩니다.
상처주고 상처받는 시대, 문제는 들음입니다. 수많은 비판을 들은 욥에게, 자신을 위해 7일을 침묵으로 함께해주었던 친구가 원수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거침없이 하나님을 비판하고 자아를 비난하던 욥을 보며, 함께 한 친구들은 격분하기 시작합니다. 존경하던 욥이 원수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탄은 이렇게 관계의 균열을 가져오는 시험을 던집니다. 관계의 균열이야말로 사탄이 바라는 바입니다.
결국 혼자, 니 인생이니 너 혼자 버티고 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욥과 친구들 가운데 욥의 모진 비난까지 품어주신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13.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모든 비난과 아픔을 다 끌어안아 주시면서, 우리 서로를 사람 되게 이어주시는 십자가의 예수님이 늘 함께 계십니다.
그 주님을 통해 서로를 바라볼 때 왜곡된 시선이 회복되어, 그 사람에게 기대고 나도 기댈 언덕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 그 사람 사이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참 인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