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81] 사랑은 오해로 쌓은 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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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보를 담은 애정 영화의 최고봉인 <러브 어페어>는 원작보다 아네트 베닝과 워렌 비티의 94년 리메이크작이 더 유명하다.
풋볼 스타 마이크는 우연히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여성 테리와 3개월 후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는데, 둘 중 한 사람이 나오지 않더라도 이유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여자는 나오지 않았다. 마이크는 테리가 마음이 변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마이크는 테리를 잊을 수 없었다. 참다 못한 그가 여자를 수소문해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테리는 나와 보지도 않고, 마이크를 몇 마디 말로 돌려보내며 배웅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여자는 약속 장소로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고, 어차피 그와 함께할 수 없는데 남자의 마음만 아프게 할 것 같아 약속을 어기고 돌아선 것처럼 침묵한 것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녀를 오랜 세월 오해하고 살았던 것이다. 오해가 그대로 남았더라면 두 사람은 만나지도, 행복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이 보고 듣고 느끼며 인지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자신이 충분히 현상과 속뜻을 이해했다고 믿어버린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오해가 차지하는 부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오해는 선입견이나 자기 트라우마, 걱정하는 부분들 때문에 극대화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분명히 듣고도 단어와 조사까지 바꿔서 기억하는 경우도 있다.
연인이나 부부가 다툴 때나 이별할 때는 더욱 그 현상이 심해진다. 그쯤 되면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리지도 않는다. 내 말, 내 항변을 하기 바쁘고 서운함과 분노로 가득 차 남의 말은 억울한 감정을 통과하면서 왜곡되기가 일쑤다.
그 과정에서 둘의 러브스토리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지난 일도 모두 의미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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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관계가 나쁠 때만 이런 오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시작되고 급속도로 가까워질 때도 오해는 사랑의 전령사가 된다.
이 때는 어떤 남자도 훌륭한 시인으로 과분한 오해를 받는다. 또한 어떤 여인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녀로 즐거운 오해를 받는다. 오해는 이처럼 단점을 가리는 긍정적 필터 역할을 한다.
그러다 사랑의 상승곡선이 분수령을 그리고 나면, 오해는 이제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다시 두 사람의 눈을 가린다. 넘지 못할 숙제들이, 사랑해서 느끼는 서운함이,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오해를 부풀린다.
최고의 오해는 다툴 때나 이별할 때 나타난다. 모든 말이 왜곡되어 비수처럼 꽂히고 막다른 길을 향하기 때문에 한 가지 해석 이상의 입체적인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렇게 잘못 이해(理解) 한 것이 오해(誤解)이다.
사랑할 때는 두 배, 세 배로 오해를 곱하기해서 감정을 부풀리지만, 거기에다 0으로 추락한 사랑을 곱하면 그 값은 '0'이 되고 만다.
마이크와 테리는 오해가 풀려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 하지만 오해가 풀리는 건 영화라서 그렇다. 현실에서 오해가 풀리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사람이, 혹은 그녀가 왜 갑자기 돌아섰는지 알 길이 없다.
드라마에서처럼 마마보이의 엄마가 나서서 여자에게 돈 봉투와 생수 한 잔을 투척한 뒤 아들을 외국으로 보내는 것처럼 막장의 사연이 있었는지, 그게 아니면 애틋한 사연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로 헤어지면 그만이다. 오해는 오해로 남는 것이다.
<러브 어페어>의 연인들은 서로를 잊지 못해 둘 다 솔로였다. 그들은 오해를 풀고 불행 속에서도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면 오해를 푸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들어봐야 허탈하고, 허무하고, 죽고 못 살던 시간을 지나 밥만 잘 먹는 지금에는 부끄러워 숨고 싶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진실을 알게 되면 사랑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승자와 패자가 바뀔지도 모르지만 이제 와서 그게 다 무슨 의미일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위안하거나 그냥 오해로 남는 것이 더 행복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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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해라는 벽돌로 쌓은 탑이다. 그리고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도 오해다. 사랑은 견고한 이해의 탑이 돼야 한다.
부실공사는 철근의 개수를 줄이는 등 편법을 써서 비용을 절감하는 거다. 정확한 절차를 건너뛰면서 후딱 짓지만, 제대로 된 공사는 느려도 정품 정량으로 바르게 시공한다.
사랑을 오해로 쌓아올리는 것은 쉽다. 감언이설과 지키지 못할 공약 남발도 눈이 가려진 남녀에겐 잘 먹힌다.
상대를 위해 노력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성실하게 이행하고 이런 것은 힘이 든다. 하지만 오해를 이용하면 가성비가 좋고 일시적 효과도 탁월하다.
그러나 이것은 부실공사다. 오랫동안 튼튼할 수 없고 언젠가 무너진다. 그것도 그 재료가 되는 오해로 인해 자멸한다.
이해로 짓는 건물은 쌓기 어렵고 더디지만 단단하다. 지진이 나도 내진설계가 된 건물은 훨씬 안전한데, 촘촘한 철근처럼 이해로 차곡차곡 쌓은 관계가 바로 이렇다.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이해하는 일은 고통스럽고 귀찮으며 당장의 효과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건물은 결단코 스스로는 붕괴되지 않으며 위기에도 강하다.
영화 속 순애보, 아름다운 오해란 현실에 거의 없다. 있다 해도 적절한 때에 풀려서 해피엔딩으로 연결되는 것은 바랄 수 없다. 기대해서도 안 된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쌓은 건물은 다시 쌓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때우고 덧바르고, 리모델링을 하고, 버팀목을 세워 봐도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은 이해를 부르고, 지속적으로 인내하고 노력하면 오해를 이해로 바꾸는 것도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편법과 눈가림의 섣부른 시도는 이전보다 더 나빠진 흉물로 만든다.
단점도 가려주고 호감을 부르는 ‘오해’는 사랑의 묘약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오해의 편리함에 기댄다면 사랑은 붕괴되고, 이해의 견고한 성을 다시 쌓을 기회는 영영 멀어지고 말 것이다. 지금 나의 관계들은 무엇으로 쌓아올린 것인가?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