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초점 잃은 눈으로 멈춘 몰골의 싸늘한 냉기- 처참한 그날이 우리들의 인생 중에 있다. 생각조차 하기 싫다. 그저 두렵고 막막하다. 천만번 생각해 보아도 피할 길이 없다. ‘생명은 피에 있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섭리 앞에 고개를 조아릴 수 밖에 없다.
사는 동안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행한 일이라고는 고작 이것저것 먹고 마신 섭생이 전부인데, 일백년 동안 체온이 유지된 사실을 무슨 원리라고 증거하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경의롭고 신비한 영역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믿음을 소망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소유한 인생이기에 죽음의 두려움을 해소하고자 믿음을 소유한다. 죽음이 없다면 믿음이 무슨 소용이랴. 죽음에 대한 해답을 찾아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믿음을 소유한다.
죽음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해답은 무엇일까. 오답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다. 인생들에게 죽음보다 중대한 문제는 없다. 너무도 중대한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인생들은 오답을 해답으로 여기며 죽음 문제를 외면하고 살아간다.
죽음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부르짖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 안에 존재하는 한계적 인생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죽음으로부터 해방 받기를 원하는 인생들의 나약함을 이용하여 오답을 제시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르는 목회자는 수많은 종교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오직 인생들의 죽음 문제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권세로 해결하셨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한 오답이 난무한 세상이다. 자신의 죽음조차 해결하지 못한 인생들의 사상이나 도덕률을 숭배하는 행위들은 모두 어리석은 신념의 종교이다.
‘종교’라는 허울은 죽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인간이 인간을 숭배하거나 인간이 자연을 숭배하는 행위는 모두 종교이다.
기독교 또한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었던 그리스도 비밀’을 망각하거나, 믿음의 핵심적 가치인 그리스도를 희미하게 바라보게 되면 죽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종교의 범주로 예속된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거부할 수 없다. 더군다나 죽음을 물리칠 수 없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죽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정하신 일이 이루어진 실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비하(卑下)하셨다. 그리스도의 비하는 인생들에게 죽음의 족쇄를 채운 죽음의 권세자를 물리치고 승귀(承句), 곧 부활하시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죽음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없는 인생들이지만,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이긴 그리스도와 신비로운 연합으로 죽음 문제를 해결받게 된다.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물리친 부활 사건을 바라보는 인생들은 안타깝게도 양론의 당위성으로 갈라선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인생들과,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신 사실을 은혜로 여기며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인생들로 구별된다.
기독교가 ‘종교화’되고 있다. 기독교의 타락에 비례하여 종교는 난무하고 이단은 성행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줄어들고 있다.
교회를 다닌다고 죽음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라고, 직분자라고 모두 죽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 언약을 굳게 붙잡은 자만이 죽음에서 해방됨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많은 목회자들이 우상숭배와 같은 탐심으로 하나님의 물질을 횡령하고 착복한 사실이 발각되어 세인(世人)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심지어 교회당을 사유화하며 실형을 선고 받을 정도로 타락일로를 걷고 있다.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망각하게 되면 인생들은 언제나 과욕의 노예가 된다. 욕망은 삶의 목적이고 도전이며 열정을 이끄는 에너지일 수 있으나, 죽음 문제를 해결해 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할 때 아름다운 동력이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主)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일점 일획까지도 깊은 의미를 담아 기록해 주신 성경의 십자가는 단순한 열 십(十)자 십자가가 아닌,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성경 66권은 ‘그리스도’를 망각할 때 고난과 역경의 환경에 처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회복한 자를 선택하셔서 영생복락을 보장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성도들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엄한 출정이며, 은혜로 부여하실 영생의 면류관이다.
하민국 목사(웨민총회 인천신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