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낙태죄 폐지했지만 하나님은 “낙태가 죄”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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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낙태, 살인인가 여성의 인권보호인가?

<십계명, 언약의 10가지 말씀> 저자 손재익 목사(한길교회)가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과 관련, 사흘 후인 13일(주일) 한길교회 주일 오전예배 시간에 설교한 ‘낙태, 살인인가 여성의 인권보호인가?’ 내용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설교 본문: 시편 139:13-18

▲손재익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손재익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서론

2019년 4월 11일(목)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다음과 같이 결정했습니다. “임신한 여성의 낙태를 처벌하는 법, 의사가 임신한 여성의 승낙을 받아 낙태한 것을 처벌하는 법은 헌법에 어긋난다.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에는 국가가 낙태를 허용할 수 있다.”

이러한 결정의 가장 큰 그 이유는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는 현행 법률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성의 부탁과 승낙을 받아 낙태 시술한 의사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결정에 대해 여성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본론

I. 낙태, 과연 옳은가?

낙태의 정의

먼저 우리는 낙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시다. 낙태란 뱃속에 있는 아기를 죽이는 것을 말합니다. 엄마가 임신한 뒤에 그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죽이는 것이지요.

사람은 누구든지 엄마 뱃속에 있으면서 10개월을 보내고 그 이후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데, 임신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 엄마의 결정에 따라 아이를 죽이는 것입니다.

낙태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낙태는 엄연한 살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태아 살인’이라는 표현보다는 ‘낙태’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낙태’라는 행위를 ‘지운다’, ‘뗀다’ 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 속에는 낙태에 대한 가벼움이 담겨 있습니다. 태아는 사람이 아니라 일종의 혹(lump)이나 상처(傷處)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운다, 뗀다’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것이죠.

실제로 ‘낙태(落胎)’라는 말의 ‘낙(落)’은 ‘태아를 죽인다’는 개념보다는 ‘태아를 버린다, 혹은 아이를 떨어뜨린다’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혹이라면?

그냥 혹이라면 뗄 수 있습니다. 지울 수 있습니다. 얼굴에 난 점을 빼듯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아는 혹이 아닙니다. 상처는 더더욱 아닙니다. 태아는 사람입니다. 태아는 생명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말하는 태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니, 성경에서 뭐라고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시편 139:13-18을 봅시다.

오늘 본문은 비록 낙태에 관한 본문은 아니지만 낙태에 관한 교훈을 얻기에 충분한 본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은 사람이 언제부터 시작되는 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즉 태아가 곧 사람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본문 14절은 먼저 말하기를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는 일이 참으로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신 일이 어떤가에 대해서 13절은 “주께서 내 내장(장부)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실 때에 모태(母胎) 즉 어머니의 뱃속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13절을 개역한글은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組織)하셨나이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왜냐하면 만들다라는 히브리어가 샤칸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뜨개질하다(to knit)’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16절은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우리의 몸이 그 모습을 갖추기 전, 즉 일종의 배아 상태에서부터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일을 시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모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 때부터 이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은밀한 가운데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의 모태에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의 내장을 친히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빛을 봐야만 사람이 아니라,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胎兒)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으로 말미암아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잉태되는 순간 고귀한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오늘의 본문뿐 아니라 출애굽기 21:22-25; 사사기 13:3-5; 욥기 31:15; 시편 22:9; 51:5; 누가복음 1:35 등의 구절에서는 분명 잉태되는 순간부터가 사람임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낙태에 대한 성경적 입장

성경적 가르침에 따르면 낙태는 태아를 떼어 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살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친히 생명이 존재하도록 허락하신 존재를, 사람이 함부로 죽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낙태를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사람이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낙태와 같이 심각한 죄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태아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낙태는 엄연한 살인입니다.

현대 과학도 말하는 바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은 “그건 성경이 말하는 것일 뿐이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해 일단 우리는 모든 기준은 성경이요, 하나님의 말씀임이 분명합니다. 불신자들에게도 성경이 유일한 기준임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도 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서도 과연 그러한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의료계와 과학계에서도 태아를 사람으로 봅니다. “수정되는 순간부터 독립적인 인간 생명체가 시작된다.” 이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과학적으로 수정된 배아는 독립된 유전자 배열과 구조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분명 태아는 생명체입니다.

▲헌법재판소 앞 한쪽 편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헌법재판소 앞 한쪽 편에서 낙태를 반대하는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II. 이번 판결은 정당한가?

헌법재판소의 논리

태아가 분명히 생명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결정이 내려졌을까요?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을 보면 방점(傍點)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있습니다. 즉 임신한 여성이 자기 몸 안에 있는 태아에 대해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헌법불합치 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의 기록을 보면, 낙태를 할 수 있는 조건으로 다음을 언급합니다.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것에 대한 우려,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 자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 부부가 모두 소득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하여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상대 남성이 출산을 반대하고 낙태를 종용하거나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상대 남성과의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 혼인이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경우,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이 모든 것의 초점은 ‘임신한 여성’에게 있습니다. 핵심은 임신한 여성의 행복추구권입니다. 태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결정에는 태아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22주 전이라서 임신한 여성에 의존하지 않으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사실상 생명이 아니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존재의 권리보다는 성인인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우선한다는 생각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누가 판단할 것인가?

이번 판결의 논리는 “생명의 가치를 임신한 여성이 결정할 수 있다”입니다. 생명의 가치를 어떻게 한 개인이 짧은 시간 동안에 판단할 수 있습니까?

임신을 경험한 분들이 계시지만, 임신이란 사람의 뜻에 따라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가족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임신을 하다 보니 “내가 임신을 계획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임신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작정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임신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임신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생명의 주인이 누구임을 가르쳐 줍니다. 생명의 주권자에게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이 있는 것이지, 사람에게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임신된 것은 남자와 여자의 결정, 태아의 결정에 따른 것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결정에 따른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 판결을 통해 앞으로는 임신한 여성 스스로가 태아의 존재의의를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 뱃속의 이 아이는 굳이 세상 밖에 나와서 살아갈 필요가 없어”라고 스스로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임신한 그 여성의 행복추구와 결부되느냐에 따라 말입니다.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이 배치될 때

자기결정권이란 다른 말로 자기운명결정권입니다. 자기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통해 개인의 인격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이 배치될 때에 자기결정권이 우선할 수 있습니까?

엄연한 생명인 태아는 자기의 생명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고, 오직 임신한 여성이 마음대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입니다.

자기결정권이 생명권보다 우선한다는 생각은 철저히 인본주의적인 생각입니다.

어느 정당 대변인은 이번 판결에 대해 논평을 내면서 “자기 몸에 대한 것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원칙이야말로 인권의 근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은 임신한 여성의 몸이 아닙니다. 자기의 몸 안에 있을 뿐 다른 생명입니다.

몸 밖에 있는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자기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죽일 수 없듯, 몸속에 있는 자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의 인권을 침해한다고, 자기의 삶에 방해가 된다고 죽일 수 없습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생명권보다 우선하지 않습니다. 인권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인권의 가장 기초는 생명권이며, 그 생명을 주신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 그 자체에 참 인권이 있습니다. 심장이 뛰고 호흡이 붙어 있는 한 그 사람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

여성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가?

이번 결정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은 여성단체들이 적극 활동한 결과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여성을 보호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과연 이 법이 여성을 보호할까요? 한편으로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한 측면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낙태는 여성의 몸에 큰 상처를 입힙니다. 몸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상처를 입힙니다. 낙태죄가 폐지됨으로 인해 여성은 이제 출산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보호를 받을지 몰라도, 낙태하는 그 순간에 처하게 될 수많은 어려움에 대해서는 보호받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낙태를 하려 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했는지 몰라도,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하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떤 불법적인 관계에 있는 남녀가 아이를 가졌을 때, 낙태죄가 있을 때는 그 죄와 처벌로 인해 남성이 여성에게 낙태를 요구할 수 없었습니다. 낙태를 강요하는 남성에게 여성은 “나는 이 아이를 낳을 거에요. 낙태는 불법이에요”라고 함으로써 낙태하지 않고 출산하려는 자기 결정권을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불법적인 관계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가 소위 말하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을 때, 배우자 중 한 명이 낙태를 요구할 때, 나머지 한명이 남편이든 아내든 낙태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앞으로는 낙태죄가 처벌받지 않음으로 인해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생명을 존중하여 어떤 처지와 환경에서도 출산하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침해당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성들은 낙태죄 폐지를 무기 삼아, 더욱 무분별한 성행위를 하려고 할 것입니다. 자신의 성행위에 대해 지금보다도 훨씬 더 무책임해 질 것입니다. 결국 여성은 더 큰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이번 판결이 여성을 보호한다는 생각은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이 낙태에 찬성한다는 그릇된 윤리의식을 전제한 것에 불과합니다.

헌법재판관 중 다른 의견

이번 판결은 7대 2입니다. 7명은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2명은 낙태죄를 존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재판관 조용호, 재판관 이종석입니다.

이들은 합헌 의견을 내었는데, 그들의 판결문은 이런 말로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가 자기낙태죄 조항에 대한 위헌, 합헌 논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우리 모두 모체로부터 낙태당하지 않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태아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태아는 인간으로서 형성되어 가는 단계의 생명으로서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태아와 출생한 사람은 생명의 연속적인 발달과정 아래 놓여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인간의 존엄성의 정도나 생명 보호의 필요성과 관련하여 태아와 출생한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출생 전의 생성 중인 생명을 헌법상 생명권의 보호대상에서 제외한다면 생명권의 보호는 불완전한 것에 그치고 말 것이므로, 태아 역시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태아의 생명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의 중요성은 태아의 성장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없으며, 임신 중의 특정한 기간 동안에는 임신한 여성의 인격권이나 자기결정권이 우선하고 그 이후에는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한다고 할 수도 없다.

헌법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태아가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로서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독립하여 생존할 능력이 있다거나 사고능력, 자아인식 등 정신적 능력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동등하게 생명 보호의 주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도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 소수의견이야 말로 진리입니다.

변하는 세상 법과 변치 않는 하나님의 법

이 소수의견은 2019년 4월 11일에는 소수의견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불과 7년 전인 2012년만 하더라도 다수의견이었던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2012년 8월 23일 자기낙태죄 조항을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 당시 ‘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 형법 제270조 제1항 (낙태죄) 위헌소원’ 결정에서 재판관 4(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낙태죄가 헌법에 일치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7년 만에 이제는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언론에서는 이번 결정이 1953년 제정된 이후 66년만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2012년에 결정된 이후 7년만입니다.

세상 법은 이렇게 쉽게 변합니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과 윤리는 변할 수 없습니다. 낙태는 단순한 법률이 아니라 도덕과 윤리의 최소한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쉽게 변하는 세상 법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도덕법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저는 이번 판결 소식을 접하고 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더 걱정되는 것은 몇 년 뒤, 낙태에 대해 둔감해지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2000년 연예인 홍모 씨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을 때, 우리는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2002년 연예인 하모 씨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소개하면서 데뷔했을 때, 우리 모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도 했습니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지금 물론 여전히 바람직하지 않게 바라보지만, 그 당시와는 다른 느낌으로 대합니다. 십수년 후 낙태에 대해서도 동일한 감정을 가질 것이 분명하기에 걱정이 됩니다.

‘미끄러운 경사길(slippery slope)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사회적 기준이라고 하는 것은 미끄러운 경사길에 놓여있는 돌덩어리를 지탱하고 있는 버팀목과 같아서, 한 번 예외를 허용하여 뒤로 물러나게 되면 돌덩어리가 움직여 가속도를 얻게 되고, 결국에는 또 다른 예외를 허용하는 일을 반복하여 끝내 그 돌을 지탱할 수 없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처럼 앞으로 한국 사회는 낙태가 언제 죄였던 적이 있었는지를 흐릿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회 속에서,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될 것입니다.

▲11일 헌법재판소 선고를 앞두고, 의료계 인사들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11일 헌법재판소 선고를 앞두고, 의료계 인사들이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III. 적용과 권면

전체를 향한 권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시대 앞에 놓인 여러분에게 오늘 광고 시간에 했던 권면으로 다시 한 번 더 권면합니다.

2019년 4월 11일(목) 헌법재판소에서 결정한 ‘형법 269조와 270조에 대한 위헌소원판결(사건번호 2017헌바127)’ 낙태죄 사건은 그 법리적 해석, 국가의 권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에 위배됩니다.

낙태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낙태가 죄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십시오. 낙태를 죄라고 여기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시대에 이상하게 여김 받으십시오.

성도는 세상에 속하였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 나라에 속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그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국법에 위배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이제부터 국가는 더 이상 낙태를 죄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처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산모와 의사의 자유에 맡기게 될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낙태가 죄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낙태는 여전히 죄입니다. 왜냐하면 죄냐 아니냐는 사람이 정한 법이나 사람들의 판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란 철저히 하나님과 그분의 공의에 벗어난 모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불신자들은 그 죄를 범해도 처벌을 받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그 행위는 죄입니다. 신자는 그 죄를 범해도 국가로부터 처벌을 받지는 않겠지만, 그 행위는 여전히 죄이므로 하나님과 교회 앞에서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교회의 권징을 받을 것입니다. 살인이라는 죄에 해당하는 중죄이므로 그에 적합한 권징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의 자기결정권은 생명을 함부로 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남녀는 반드시 자기의 ‘성적 결정권’을 결혼 관계 안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비록 2015년 2월 26일(목)에 헌법재판소가 ‘형법 241조(간통죄)에 대한 위헌판결(2009헌바17)’을 내려서 더 이상 간음이 죄가 아니지만, 여전히 제7계명이 명하고 있으므로 결혼 관계 안에서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낙태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아야 합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을 결혼 관계 안에서 사용한다 해도, 낙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관계 안에서 생긴 임신에 대해 낙태를 고민하는 것은 세상의 관점이요,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십시오.

결혼관계 안에서라면, 예상하지 않았던 임신이든, 경제적 어려움 가운데 생긴 아이이든, 너무 늦은 나이에 가졌든, 장애 아이를 임신했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매를 향한 권면

자매 여러분, 먼저 자기의 몸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단순히 정조를 지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소중한 생명을 잉태케 하는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은 형제들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 놀라운 영광을 소유했음을 기억하고 자신의 몸을 감사히 생각하고 소중히 지키시기 바랍니다.

혹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이나 어떤 방식으로 잉태케 하셨던 간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귀한 생명을 함부로 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여러분들 중에 낙태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절반 이상이 낙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혹여나 지금까지 낙태가 죄인 줄 몰랐다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십시오. 알았으나 회개한 적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회개하십시오.

예수님 믿기 이전의 일이라면, 예수님을 믿으면서 당신이 회개함으로 그 죄도 용서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기 이후의 일인데 아직 회개하지 않았다면,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형제를 향한 권면

형제 여러분, 지금까지 설교를 들으면서, 특히 방금 있었던 자매에 대한 권면을 들을 때 아마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남자인 나는 오늘 설교와 상관없겠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남성이라고 해서 이 문제가 상관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낙태는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번 판결은 여성의 인권보호라는 측면이 강조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사실 남성의 책임회피로 인한 결과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던 이들은 “왜 낙태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느냐?”라고 했습니다. TV나 영화에서 보면 남성은 일을 벌여놓고 그냥 돈만 지불합니다. 혹은 일방적 통보를 합니다. 남성은 모든 책임과 의무를 여성에게만 전가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모인 결과 이번 판결이 나온 것입니다.

여성만이 책임을 지니, 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태아를 희생시키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남성들이 함께 책임을 감당했다면,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역시 자매와 마찬가지로 생명의 잉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반드시 결혼관계 안에서만 허락된 성이므로, 그 안에서만 자유를 누리십시오. 혹 결혼관계 안에서라도 임신이 자신이 원치 않았던 것이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낙태를 권유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 판결은 남성이 여성에게 책임회피와 책임전가를 시켰더니, 여성이 태아에게 책임을 회피한 것입니다. 마치 첫 남자 아담이 첫 여자에게 자신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책임을 전가하고, 여자 역시 뱀에게 자신의 죄를 전가시키려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미혼을 향한 특별한 권면

특별히 미혼 청년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남녀가 결혼관계를 벗어나 성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항상 임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야만 임신이 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결혼관계를 벗어난 임신도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릴까요?

일단 여러분들이 결혼관계를 벗어난 성관계를 결코 하면 안 되겠지만, 혹여나 그러한 죄를 범한 결과로 임신하였을 경우, 그 죄를 회피하고 덮기 위해서 더 큰 죄, 즉 낙태죄를 범하는 일이 결코 없기를 바랍니다.

더 큰 죄를 범하기보다는 오히려 속히 당회와 목사에게 알려 조치를 취하여서 적절한 권징을 받은 뒤,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부모를 향한 권면

부모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자녀들에게 바르게 가르치십시오. 성교육도 시켜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성교육이란 세속적인 의미의 성교육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담보로 한 성교육을 말합니다. 고등학생 이상의 미혼 자녀를 둔 부모들은 성이란 결혼관계에서만 허락된 아름다운 것임을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녀들 앞에서 조심해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이런 말을 종종합니다. “너 안 낳으려다가 낳았어.” 이런 말을 통해 자녀들은 생각합니다. “아, 나를 낳고 안 낳고를 부모님이 결정하는구나.” 사소한 말 한 마디지만, 잘못된 견해를 갖게 만드는 위험한 말입니다.

의사를 향한 권면

그리스도인 산부인과 의사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비록 대한민국 법률이 인정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도덕법이 허락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임산부의 요청이 있다 하더라도, 거절해야 합니다.

교회의 역할

낙태반대운동연합 회장 함수연 교수(한양여대 아동복지과)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결정되기까지 천주교는 나름대로 열심히 반대를 해 왔는데, 개신교는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들은 거의 대부분 관심이 없습니다. 목사님들이 낙태를 주제로 설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노회와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1장 제5절에 따라 겸손한 청원의 방식으로 국가에 이 문제를 재론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비록 이런 결정을 했지만, 그 결정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다시금 호소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최근까지도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온갖 시위를 하면서도 정작 이 일에 침묵하고 있는데,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각 교회의 치리회인 당회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낙태가 비록 국가가 인정했다 하더라도 국가의 권위와 무관하게 여전히 죄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목사는 설교로, 장로는 심방과 권면으로. 또한 열심히 가르쳐서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만, 혹여나 교회 안에 이 죄를 범한 사람이 있을 때 적절히 권징해야 합니다. 세상이 더 이상 이 죄를 벌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교회는 이 죄를 여전히 벌함으로써, 이 죄가 동서고금을 막론한 영원한 죄임을 분명히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은 교회는 자매만 아니라 형제도 권징의 대상임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이번에 낙태를 허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임신한 여성을 처벌하는 것이 여성차별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교회는 여성만을 차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기억하고, 지금까지 국가가 여성만 처벌한 것과 달리 오히려 남성과 여성을 동일하게 권징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단지 권징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러한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혹 교회 안의 형제, 자매가 낙태를 원하는 상황에 놓인 경우, 특히 결혼관계를 벗어난 상황이거나 하는 도덕적이지 못한 방식의 임신이거나 심지어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일어난 일일 경우 그들을 적절히 징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낙태를 하지 않고 출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어야 하고,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여러 가지 상황들을 교회가 도와야 합니다.

비록 사람이 보기에는 원치 않는 임신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그 생명의 필요가 여전하므로 출산케 하고, 그 부부가 감당하지 못할 때 교회가 함께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이렇게 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진정한 권징의 실천입니다. 권징의 참된 완성입니다.

예수님과 그 부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말 그대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원치 않는 임신입니다. 그들은 약혼만 했지, 결혼하기 전이었기에 아무런 성관계도 없었습니다(마 1:18; 눅 1:34). 그들이야 말로 낙태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낙태를 해야만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있던 그들이었습니다. 왜요? “처녀가 임신했다니, 어쩜 그럴 수 있어?”라는 조롱을 들어야 하는 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과 마리아는 세상의 눈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이 세상에 구주가 오시게 만들었습니다.

온 백성을 구원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은 2-3살 아이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30살 청년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태아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40주 동안 자궁에서 성장하셔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습니다.

▲2019 생명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전시를 보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2019 생명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전시를 보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결론

“우리 모두는 태아였다.” 헌법재판관 2명의 결정문 앞부분입니다.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은 그 어머니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낙태하지 않고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출산하였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판결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도 낙태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를 막 가질 만한 나이에 있는 20대 부부, 30대 부부 중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인류 역사상 아이를 막 낳을 시기의 부모가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단 말입니까?

우리 모든 부모님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우리를 낳아 지금까지 키워주심으로 우리가 지금 존재합니다. 우리의 부모님 역시, 그 부모님 역시, 그 부모님 역시,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법과 상관없던 이들도 감당했던 생명사랑을, 하물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영원한 도덕법인 십계명을 매 주일 낭독하는 우리들은 낙태는 살인이며, 하나님 앞에서 영원토록 범죄임을 잊지 맙시다. 세상의 가장 높은 법원이 죄가 아니라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이 죄를 죄라고 하십니다.

원치 않는 임신, 원하는 임신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임신과 출산은 남자와 여자의 계획에 따라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생명의 근원이 아닙니다. 부부됨, 임신과 출산,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2019년 4월 11일(목)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결정했습니다. “낙태는 더 이상 죄가 아니다.” 그러나 영원 전에 생명의 주권자요 모든 법의 근원이며 재판관 되신 하나님께서 결정하셨습니다. “낙태는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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