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노트르담 옆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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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성당이 불타고 있다.  ⓒ가디언 영상 캡처

▲노트르담 성당이 불타고 있다. ⓒ가디언 영상 캡처

1. 노트르담 대성당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아주 먼 옛날, 12세기에 지어진 성당의 위용은 전 세계인들을 압도했습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창조에 이바지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노트르담 성당은 믿는 자건 믿지 않는 자건, 흠모하는 건축물이었습니다. 역사적 유물이며 문화재였습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사랑스러운 부인’이라는 뜻의 프랑스 말로,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가장 높은 분, 사랑스러운 부인’이라는 뜻입니다.

건축가는 설계하면서 이 건축물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를 보며 십자가와, 그곳에서 마음이 불타고 있는 네 명의 마리아를 만납니다.

2. 요한복음 19장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를 못박은 군인들은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합니다. “옷을 어떻게 나누어 가질까?”

예수의 모든 옷을 벗기고 나눕니다. 속옷 하나만 남았는데, 이 속옷은 나눌 수 없는 통 하나로 되어 있었습니다. 더럽고 냄새나는 속옷마저 제비뽑기하여 가져가기로 하니, 이제 예수는 군인들 앞에 알몸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예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던 네 명의 군인들은 정작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몰랐습니다. 가장 강력한 남자의 상징. 군인 넷은 그렇게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조차 소유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소유를 생각하는 자는 존재의 귀함을 모릅니다. 그러나 존재의 귀함을 생각하는 자는 소유를 버리게 됩니다.

너를 위해 알몸이 된 예수, 그 예수는 조롱과 멸시 속에 십자가 위에 달렸습니다.

3. 그러나 19장 본문 속에서 또 다른 네 명을 만납니다. 19장 25절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본문 속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우리가 잘 아는 인물입니다. 그 옆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의 삶은 잘 알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말하지만 의도적으로 이름을 생략하면서, 지금 이곳에 마리아들이 서 있음과 동시에 이름이 생략된 마리아들이 있음을 말합니다.

4. 그러니까 이 곳에, 강함의 상징인 군인들과 대비되는 인물들로 네 명의 연약한 여인 마리아가 서 있습니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흔한 이름이었습니다. 흔한 이름이 된 것은 누군가가 그들을 소유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뜻이 ‘우리의 사랑스러운 부인’이듯, 부모가 이 이름을 지을 때를 상상해 보십시오.

“최고의 여인이 되어야 한다”, “너는 돈 많은 귀족과 결혼한 고귀한 부인이 되어야 한다”. 마리아라는 이름이 흔해진 것은 바로 부모들의 열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5. 그러나 성경 속 마리아의 삶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등장한 막달라 마리아의 삶을 압니다. 일곱 귀신 들린 미치광이 여인이자 창녀 출신으로, 세상에서 보기에는 가장 미천한 자였습니다.

또한 이곳에 생략된 어머니 마리아의 삶 또한 성경을 통해 압니다. 그녀는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녀를 좇아다니기만 하고 자녀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한 가련한 어머니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성경 속에 등장한 마리아, 생략된 마리아의 삶을 통해 나머지 마리아들의 삶 또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부모의 바람처럼, 누군가의 기대처럼 살지 못하는, 흔하디 흔한 아픔과 고통 속에 홀로 선 듯한 우리의 흔하디 흔한 삶 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6. 네 명의 마리아는 예수를 바라보는 기대의 시선이 있었습니다. 이름이 생략된 어머니 마리아는 “내 아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 속에 살았습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놀라운 소식에 가슴 뛰면서, 아들과 떨어져 지냄을 위로하며 삽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내 삶을 변화시킨 놀라운 능력의 예수를 사모하고 사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의 대상 예수는 오늘 이 현장에 너무나 무기력하게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차마 바라보지 못할만큼 흉측한 몰골로, 피투성이가 된 채, 심지어 속옷마저 빼앗기고 알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를 사랑한다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가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슴 속이 타들어가는 그 순간에도 네 명의 마리아는 그 곁에 있습니다. 예수를 소유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통의 일상, 흔하디 흔한 마리아의 삶에 예수가 찾아오셨듯, 그들도 예수의 나약함 곁에 서 있습니다. 존재를 사랑하면, 자기 바람도, 자기 소유도 모두 버릴 수 있습니다.

7.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타오른 것은 건물 보수공사를 하면서 화재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건물을 유지하려다 전부를 상실할 뻔한 이 사고 뒤, 마크롱 대통령은 “더욱 아름답게 5년내에 재건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가시 면류관과 수의 등 많은 유물들은 루브르 박물관으로 옮겨졌다며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 가운데 고난주간 예수의 아픔과 눈물,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성전의 외형은 사라질것이요 내 몸이 성전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성전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시대 속에 삽니다.

어쩌면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마음에는 고유의 역사적 산물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 화려함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 예수의 유물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큰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는 예수를 여전히 소유의 대상으로 여기며, “속옷을 나누어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만 하나 되는 네 명의 군인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 마음으로는 예수를 소유의 대상으로만 여기다, 정작 십자가의 자리를 떠나버린 제자들이 될 뿐입니다.

9. 그러나 네 명의 군인처럼 소유에 집착하는 시대, 파리 대성당 옆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곳곳에는 마리아가 있습니다.

이곳 대한민국에도, 속으로만 울음을 삼키는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 흔하디 흔한 우리네 일상에 주님은 그대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외로움과 아픔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 속에 여전히 당신의 알몸을 던져주고 계십니다. 아무것도 아끼지 않고 살과 피를 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에게 보답하는 길은, 그저 내 모습 그대로 그 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10.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십시오. 여러분 옆에 사람도 마리아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그들은 모두 오늘 본문 속에 생략된 마리아입니다.

가족과 자녀들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속으로만 끙끙 앓는 노년의 고민은 여러분만의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손주 손녀를 보기 위해 굽은 허리로 장을 보고 다니는 옆 사람도,
같은 고민을 하는 마리아입니다.

직업에 대한 고민,비전이 무엇인가 꿈꾸기에도 버거워 이불 속에서 울어야하는 청소년 청년의 고민은, 여러분만의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옆에 지체에게도 같은 눈물자국이 밤마다 이불에 묻어 있습니다.​

사랑에 대한 아픔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제 누가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상실감은 여러분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저 흔하디 흔한 우리네 일상속에 모두가 같은 아픔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마리아입니다.

10. 오늘 본문 속 네 명의 마리아가 함께 예수 옆에 있듯이, 이제 우리 모두 참된 마리아가 되십시다. 화려함을 멀리하고 골고다 십자가 위에 기꺼이 죄인들 한 가운데 달리신 예수를 사랑하기 위해, 흔하디 흔한 마리아들이여, 함께 손을 잡으십시다.

노트르담 성당의 외형과 역사적 유물의 상실에 안타까워하는 시대 속에서, 여전히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 죄인들 한가운데 십자가에 서신 예수님을 ‘함께’ 바라보는, 흔하디 흔하기에 귀한 마리아가 되시기를 골고다 언덕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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