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우리는 언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까?
하나님 나라는 죄인들의 교회
교회는 죄인들이 회개하는 곳
심판관의 차가운 시선 아니라
죄인의 통회하는 무릎 되어야
우리 교회(대전 더드림교회)의 현관 로비에는 성화 한 폭이 게시되어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1950년대 후반)교회의 여름성경학교(당시엔 하기 아동성경학교)과정 중 장로님 댁의 하얀색(회칠한)담벽을 스크린 삼아 무성 환등기로 ‘탕자의 회개’를 보았다.
그때의 대사는 변사인 선생님이 1인 다역의 성대모사로 들려주었다. 시골사람이 최초로 비활동 사진을 만화 보듯이 보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은혜를 받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화 중 하나로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의 ‘돌아온 탕자’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이 성화는 누가복음(15:11-32)의 내용을 그린 것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살아계심에도 불구하고 불경하게 아버지의 유산을 달라 하여, 가급적 먼 곳으로 아버지를 떠나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면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 사육장에서 돼지 먹는 것을 같이 먹을 정도로 끝장에 이르렀다.
제정신을 차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옷과 신발은 누더기가 되었고 그의 머리는 죄수의 머리처럼 짧고 부분적으로 탈모 현상까지 보이기도 한다.
그는 완전 알거지가 되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도 그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않은 것은 허리에 차고있는 칼이었다. 그 칼로 인해 그가 귀족 가문의 사람인 것을 나타내주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멀리 서서 먼저 발견하고 달려갔다. 반쯤 장님이 된 아버지는 몸을 낮추어 그 아들을 부드럽게 끌어안는다.
이 성화의 핵심은 아버지의 손이다. 그 손에 모든 빛이 모여있다. 그리고 그의 손에 화해와 용서와 치유가 나타나있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껴안으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렘브란트는 아들을 무한한 사랑으로 끌어안는 아버지이시며 동시에 아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어머니의 손으로 그렸다.
탕자를 끌어안는 손을 그릴 때 아버지의 손과 어머니의 손으로 구별하여 그렸고 아버지의 배에 고개를 파묻은 탕자의 얼굴도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태아의 모습으로 그렸다.
우리도 주님 앞에 무릎꿇고 죄인임을 고백할 때 탕자처럼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체험하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마치 큰아들처럼 그런 아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투덜대고 있지는 않은가?
사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사람은 큰아들이다. 긴 수염과 붉은색 겉옷은 물론이고 얼굴의 광채마저 닮았다. 그러나 큰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긴 지팡이를 들고, 두 손을 포갠 채 마치 심판관처럼 꼿꼿이 서있다. 그의 자세는 너무나 올곧아 싸늘한 느낌마저 들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죄인들의 교회, 정확히 말하면 교회는 죄인들이 회개하는 곳이다. 우리는 심판관의 차가운 시선이 아니라 죄인의 통회하는 무릎이 되어야겠다.
우리도 돌아온 탕자처럼 주님 앞에서 무릎 꿇고 고백해야 되겠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껴안으시며 말씀하실 것이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신분 회복) 손에 반지를 끼우고(상속자 복원) 발에 신발을 신겨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마셔라.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눅 15:22-24)”.
그런데 돌아온 탕자는 노년이 된 렘브란트의 삶과 흡사하다. 그는 방탕한 삶을 살았고, 낭비로 모든 재산을 잃었으며, 부인과 두 딸을 젊은 시절에 잃었다.
노년에는 파산을 한 뒤 외아들 티투스마저 잃는 등 모든 것을 잃은 뒤에야 하나님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이 하나님의 자비임을 깨달았다.
화가는 이 성화를 그린 다음 해에 하나님 품으로 갔다. 우리는 언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까?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