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장애 남겨 주셨지만… 저는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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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한승의 러브레터] 부활절과 장애인의 날

▲영화 ‘부활’ 중 한 장면. ⓒ영화사 제공

▲영화 ‘부활’ 중 한 장면. ⓒ영화사 제공

1.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고 오후 2시 '부활'이라는 영화를 성도님들과 함께 봤습니다. 영화 내용은 잔잔하지만 깊이가 있었습니다. 몇 가지 기억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늘 편지는 그것을 먼저 나누려 합니다.

예수님을 못박았던 호민관인 클라비우스는 빌라도와의 은밀한 대화와, 혼자 있는 목욕탕에서 그의 본질적 고민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정말 찾는게 뭘까…, 평화인가 죽음 없는 일상일까’라고 되뇌입니다. 아무도 대답 못하는 혼잣말입니다.

그런 그의 눈앞에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나는 순간이 목격됩니다. 예수를 버린 제자들앞에 예수님은 그저 웃고 떠들고 계십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온 몸에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던 것입니다.

도대체 왜? 손과 발의 대못자국이 선명하게 있습니다. 옆구리 상처가 그대로 휑합니다. 그 분은 상처를 두고 그대로 도망간 제자들이게 온 몸을 만지도록 하십니다.

제자들, 그리고 도마는 “주여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분위기조차 무겁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기분좋고 유쾌한 분위기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도마에게 온 몸을 만져보게 하시며 “괜찮다”고 말해주십니다.

2. 영화 막바지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갈릴리에서 만납니다. 허기져 아무것도 낚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오른편으로 던져보아라”고 외칩니다.그러자 그물이 찢어질만큼 고기가 잡힙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클라디우스는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이 또한 웃고 떠들며 우리 일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때 음식을 나누어 먹던 그들 앞에 한 문둥병자가 지나갑니다. 주변 사람들은 문둥병자를 사정없이 때리고, 예수님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물고기 한 마리를 들고 말이지요.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꼭 끌어안아주십니다. 생선을 나누어 주십니다. 생선의 쓰임에 대해 알려주십니다.

3. 이어서 곧바로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릅니다. 베드로에게 있었던 상처를 치유하는 대화를 하십니다.

“너 나 사랑하니?”

아시지 않느냐고 되묻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마지막 명령을 하십니다.

“내 양을 먹여다오.”

물고기를 이 시대 문둥병자들에게 먹이라는 주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 날 새벽입니다. 클라디우스는 잠에서 깨어 새벽에 예수님과 대화합니다. 클라디우스는 죄책감에 못견뎌 말합니다. “주님, 당신이 죽던 날, 거기에 저도 있었습니다.”

클라디우스는 온 몸 가득 남겨진 주님의 상처가 못내 신경쓰입니다.

주님은 웃으며 바라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나도 안다…. 무엇을 찾느냐?”

뜸들이는 그를 향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평화? 죽음없는 일상?”

그 말을 들은 클라디우스는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은 그토록 예수를 찾아다녔던 그에게, 그리고 자신이 십자가에서 못박은 모습만 기억하는 클라디우스에게, 빌라도와 나누었던 은밀한 대화의 순간…, 그리고 아무도 없는 목욕탕에서의 고백도 들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가 찾던 예수의 보이는 모습 말고, 일상 속에 주님은 늘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자, 모든 제자들은 자기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자기가 위협당할 수 있는 그곳으로, 그러나 그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클라디우스는 호민관의 상징인 기념물을 내려놓고 떠납니다.

“어떻게 이전과 같이 살겠는가”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의 일상이 화려해지지 않는다 해도, 그는 전과 다른 삶을 살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일상은 변화하고, 누군가의 일상도 변화하겠지요.

5.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이라서 특별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포도나무 주일과 부활주일이 겹쳤으므로, 오늘은 다른 곳에서 말씀해 주실 분이 오시는 날입니다.

오늘이 특별한 이유는 평범한 은혜를 회복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목사님을 모시지도 않았고,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도 없었습니다.

지난 주에 마리아에 대한 묵상을 한 뒤, 이 시대의 마리아와 같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교회에서는 중등부를 섬기시는 집사로, 사회에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 가정에서는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평범한 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들었습니다.

목사의 시선과 메시지로는 결코 전할 수 없는 울림이 전해졌습니다. 그 분의 평범한 일상에 늘 함께 하셨던 주님이 그대로 성도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 분의 메세지 결론도 같았습니다. 평범한 일상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것은 저절로 이와 같은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사랑하자. 우리가 어떻게 이전과 같은 삶을 살겠는가?”

5. 오신 분과 토요일에 식탁교제를 했습니다. 그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산을 지키는 나무는 못생긴 나무’라는 말이 참 좋아요. 저는 땅 끝은 못가요. 큰 나무는 가잖아요. 저는 산을 지키는 그런 나무같이 살고 싶어요.”

크고 곧게 뻗은 나무는 다 잘려나가, 결국 산을 지키는 것은 남들이 안 봐주는 못생기고 작은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작은 나무의 일상으로 산이 지켜진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는 듯해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 나라, 이 땅에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사라져가는 현실 앞에 작은 나무의 고백이 가슴을 울립니다.

저도 말했습니다. “꼭 지켜주세요. 저도 함께 지킬께요.”

6. 부활주일 이전에는 장애인의 날이 있었습니다. 저는 1980년 연탄트럭에 치였습니다. 그로 인해 제게 육신의 상당한 부분들에 장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날이 행복한 날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저를 만나주셨기 때문입니다. 비교가 되지 않는 가치를 발견한 날입니다. 5살 이전의 삶을 살 수 없게 된 날입니다. 사고 이전의 삶 말입니다.

▲사고 후 휠체어를 탄 모습. 유 목사는 지금도 휠체어를 타고 있다.

▲사고 후 휠체어를 탄 모습. 유 목사는 지금도 휠체어를 타고 있다.

7. 현재의 저는 휠체어를 타고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부터는, 아예 휠체어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어쩌면 평생 타고 있어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압니다. 설교할 때마다 성도들의 눈높이와 조금 더 맞출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저만 압니다.

성도와 이야기할 때면 제가 올려다보아야 하는 키 작은 나무가 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저만 압니다. 저만 아는 낮은 일상, 행복 주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8. 상담봉사를 하기 위해 병원에 가던 어느 날입니다. 갑자기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이럴 때면 고스란히 비를 맞아야 합니다. 우산을 들 수도 없고, 휠체어를 밀어야 하기 때문에 비 맞는 건 당연한 일상입니다. 머리와 어깨만 맞는 것이 아니라 온 몸이 다 젖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기 때문에, 다리는 완전히 젖습니다.

비에 홀딱 젖은 제 몸을 보고, 상담을 받았던 친구가 따라나왔습니다. 함께 비를 맞으며, 15살 이후 처음 비를 맞아본다고 했던 친구가 기억납니다. 상담을 마치고 주차장까지 가면서, 다시 홀딱 젖은 저를 차 안에서 보면서 웃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드렸습니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리신 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몸 주셔서 감사합니다.”

9. 장애는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내가 컨트롤할 때,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에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삶이라면, 얼마든지 도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조금 아파도 아픈 것뿐, 무기력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능력이 됩니다.

한 번은 장애를 입고 동료상담가가 되겠다는 분들에게 강의한 일이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대놓고 말했습니다.

“장애인이어서 오히려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장애가 없는 분이 이 이야기를 했더라면 상처와 폭력이 될 말이, 그 분들에게는 도전이 되었습니다. 제게 주신 하나님의 복입니다.

10. 교회 지하 계단을 내려갈 때 청년들이 들어서 내려갑니다. 쿵쾅쿵쾅. 내려갈 때와 올라갈 때, 꼼짝없이 제 몸을 맡깁니다.

교회가 1층이 아니고 엘레베이터가 없는 건물이라, 성도들에게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즐거움입니다.

그 때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한승아. 너 혼자 아니다. 도와주는 사람 있다는 것 잊지 마라.”

교회를 갈 때나, 다시 돌아갈 때나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 힘으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걸 안 이상 외롭지 않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혼자 힘으로 교회 일을 하지 않아야 함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그것이 좋습니다.

11. 고등학교 때까지 목발을 짚고 다니던 저는 누구와도 팔씨름에서 진 적이 없었습니다. 유도 선수에게도 악력 싸움에서 져본 일이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고 전에 미식축구를 했냐고 묻습니다. 5살에 다친 제가 운동을 했을 리 만무합니다.

모든 것이 대학교까지 남들이 다 휠체어에 앉아다닐 때, 목발로 다녔던 일상 덕분입니다. 눈물나게 힘들었던 그 시절 일상들이 사실 지금의 저를 버티게 합니다.

요즘은 운동할 시간 자체가 없습니다. 사고로 휘었던 허리가,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점점 휘어감을 느낍니다. 그것을 버티고자 제 오른팔은 하루종일 온 몸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설교 시간 내내 마이크를 잡은 채 휠체어에 몸을 버티는 오른손에게 고맙습니다. 제 몸이 산이라면, 이 몸을 버티게 해 주는 두 팔은 나무입니다. 팔꿈치는 계속 온 몸을 버텨, 마치 때가 낀 듯 피부색이 시커멓게 죽어버렸습니다.

“고맙다. 조금만 더 버텨다오. 얼마 안 남았다.”

12. 한밤이 되어 방으로 돌아와, 하루종일 제 발끝부터 허리까지 보호하는 보장기구를 뺍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쇠붙이로 꽉 둘러맨 두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차갑게 식은 발에게 인사합니다.

의사가 알면, 왜 이렇게 다니냐고 할 잔소리가 머리에서 맴돕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가지 않습니다. 아직 남아있어야 할 나무인데, 잘라내 버릴까봐 말입니다.

남들처럼 가고 싶은 곳 딛지 못하고, 땅과 만나는 일 없이 늘 휠체어 바닥에 붙어 있어야 하는 두 발이 오늘도 잘 버텨줘 고맙습니다.

“오늘 외로웠지? 하루종일 같은 곳에 서 있어줘서 고맙다.”

제 두 발이야말로, 제가 같은 곳을 지키게 해주는 작고 못생긴 나무입니다. 남은 이곳 저곳의 상처를 소독한 뒤, 다시 일상이 시작됩니다.

이제는 엎드려서 책을 읽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새벽 3시까지 엎드려서 하는 제 일상의 시작입니다.

이 정도 상처를 갖고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된지 오래됐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상처 그대로 남아있고, 치료되지 않아도 버텨주는 이들이. 그렇게 주님 흔적처럼 제게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전 아버지가 아파하는 허리를 보시고는 한숨을 쉬십니다. “힘들지 않냐. 적당히 해라.”

▲장애인의 날 기념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류한승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장애인의 날 기념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류한승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13. 주일을 준비하는데, 바퀴가 이상했습니다. 보니까 바퀴와 본체를 연결하는 쇠의 마디 마디가 다 끊어진 것입니다. 조금만 늦게 발견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휠체어 A/S하는 곳은 “쉬는 날”이라며 “대체 어떻게 휠체어를 쓰시길래 쇠가 다 끊어지느냐”고 나무랍니다.

여기저기를 뒤져도 수리되는 곳이 없습니다. 결국 샷시 공업하시는 분이 긴급하게 납땜해 주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꼼짝 못하는 나무처럼 됐을 때, 묵상했습니다. 그 순간 성도들 생각이 났습니다.

‘아, 우리 성도들도 보이지 않는 마음의 바퀴가 닳았구나. 다쳤구나. 아프겠다. 그래도 또 급하게 땜질해서 내일 또 굴러가는구나. 그리고 우리 주님이 거기 함께하시는구나.’

그러고 나니 제 바퀴에 상처가 생기고 둔탁해졌다 한들, 멈출 수가 없습니다.

속으로 되뇌어 봅니다. ‘내가 어떻게 이전처럼 돌아가겠는가.’

14.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평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과 같습니다.

평범한 제게 하나님은 상처와 아픔, 그러니까 장애를 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났는데, 그 상처와 아픔은 고스란히 남겨두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래서 제게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이 제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상처 그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저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제 일상이기 때문에, 일상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오늘 저와 함께하십니다. 양을 사랑하고 양을 먹이기 원하시는 주님이 오늘 저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다짐합니다. “어떻게 예전처럼 살겠는가!”

여러분과 늘 함께하는 작은 나무가 되어, 주님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산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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