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Understand, 아이들이 있는 곳에 늘 서 있을 것
꿈트리에서 달꿈극단까지
생각하지 않으면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고로 오늘 2019년 5월의 삶도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5월 5일은 달꿈학교 1층의 카페 ‘쿰’이 열린지 1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달꿈예술학교가 취약한 재정을 보완하고 지역 주민들에게 쉼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소명을 위한 소통의 공간으로 세워진지 1년이 지나면서, 저는 다시금 1년 전 학교가 생기기 전부터 제가 가졌던 학교의 소명의식을 점검하려 합니다.
이 내용은 단지 1년만의 내용이 아니라 달꿈예술학교가 생기기전 ‘꿈트리’와 함께하며 느꼈던 내용을 추린 것입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소명과 사명, 그래서 생각의 힘이 되살아나 오늘의 삶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사랑이 먼저다
학교의 전신인 꿈트리가 생길때 일입니다. 한 청년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교회 밖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전도가 되지 않을까요?”
너무 좋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순서가 잘못되었습니다. 전도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없는 전도는 때론 자기 욕심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입니다.
소외된 자들에게 찾아가 먼저 식탁의 자리를 함께하신 이유입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아이들을 품어주셨던 이유입니다.
사람들은 간혹 사랑이 마지막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이 먼저입니다.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에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품어주고, 사랑하고, 키스하고, 먹이고 재웁니다. 그것이 교육입니다.
양육보다 앞서는 교육이 없듯, 사랑보다 앞서는 어떤 것도 없습니다. 사랑의 열매가 마지막에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사랑을 심지 않으면 그저 자기 욕심일 뿐, 아무리 전도하고 사람의 숫자가 늘어도 사랑이 없으면 ‘Nothing’입니다.
2. 한 사람을 열 명, 스무 명처럼 여길수 있어야 한다
처음에 이러한 마음을 가진 청년들과, 청년부 중 마음이 있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한겨울에 홍보물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음악, 미술 분야를 가르쳐 주고 그룹 상담까지 이어지는 토요 예술 수업이었습니다.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몇명이나 모일 거 같아?”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적어도 10명? 한 20명 모이면 어쩌죠?” 행복한 고민을 했습니다.
예술 전공생들이 직접 가르치는 무료 수업이니 당연히 폭발적 관심이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한 명이 와도, 열 명처럼 생각하자.”
그런데 우리 하나님 정확하셨습니다. 청소년 한 명. 그런데, 청년도 한 명 보내주셨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입니다.
우리 계획과 다르다고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한 명이라고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3. 내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우리 계획대로 처음부터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처음 온 청소년은 홍보물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제가 상담하던 친구였습니다.
국립재활병원 한 선생님의 따님이 학업생활로 고통받아 몇 번 만났던 친구였습니다. 10명은커녕, 홍보를 통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청소년 대상으로 한 수업인데 청년이 왔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이었습니다.
그 친구를 위해 예술수업과 상담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돌아보니 그것이 하나님 뜻이었습니다. 2019년 달꿈학교의 정규 학교 학생은 상근, 즉 군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와 지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4. 오는 사람 막지 말아라
이듬해 소문이 났습니다. 꿈트리 오리엔테이션에 성북구청에서 오셨습니다. 지역 아동청소년센터에서 적극 협조하시더니 여기저기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학교에서 상담하는 선생님의 추천으로 한 명, 또 다른 중학교 선생님이 아이들 무리를 이끌고 데리고 오시더니 지역 아동청소년센터에서 우르르, 다른 지역의 그룹홈에서 예쁜 어린이들까지 왔습니다.
그야말로 비빔밥이었습니다. 모인 곳의 단체도, 아이들 연령대도, 성별도, 장애를 가진 아이도, 아닌 아이도, 모두 다 다른 아이들을 섞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시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원칙과 다르다고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달려오는 어린아이를 막지 않으셨던 마음, 그것이 중요했습니다.
5. 열매맺는 방법, 사랑이 전부이다
전도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청년의 말을 듣고는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앞서지 않기 원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심을 때 당신이 열매맺혀주실 것 믿습니다.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여주시면,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하며 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도 아이들에게 ‘너네 기도해야 해. 말씀 읽고 살아야 해. 교회 다녀야 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들이 먼저 묻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떤 곳이에요?”
“저도 와 보고 싶어요.”
너무 기쁜 마음에 “그래 그럼 내가 너네 태우러 갈게”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아니요, 우리들이 갈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룹홈에서 사는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아이들이 어느날 교회에 손잡고 왔습니다. 이른 아침 교회에서 버스에서 내려, 손잡고 오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그 날 이후로 이제 의심하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꿈트리에 온 모든 아이들은 교회에 다니게 됐습니다. 단 한 번도 기도, 말씀, 예배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은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농부되신 예수님을 믿으시는 여러분, 사랑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전부입니다. 그걸 믿고 행동하면 열매는 저절로 열립니다. 그 때도 시기도 농부되시는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6. Understand, 함께 있어주는 것이 사명이다
상처입은 아이들은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과 교사들이 있어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이 단체도, 선생님도 정부 지원받아 하잖아요. 어차피 선생님들도 더 좋은 기회 있으면 떠날 거잖아요.”
저는 저희와 비슷한 단체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단체들, 그러나 어찌 보면 많은 단체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단체들이 행정과 지원금이 우선이 되는 경우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표가 아이들과 함께 있기보다, 행정과 돈이 있는곳에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 사람보다 숫자가 중요해지고, 단체가 사람보다 중요해지고, 돈을 위한 행정으로…, 결국 지원이 사라지면 무너지는 경우들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다시 제가 가진 철학을 점검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공감(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만, 이해(Understand)해 주는 사람이 돼야겠다. 이해는 같은 자리에 서 있어주는 거니까, 그런 사람이 되야겠다.’
그래서 먼저 돈이 우선이 되지 않는 단체가 돼야 했습니다. 3년 동안 지원금을 거부했습니다. 모인 선생님들과 저희의 힘으로, 아니 솔직히 말하면 주님의 힘으로 버텼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며 옆에 있어주는 것이 가장 소중함을 알기 위함이었습니다.
단체를 처음 만들자고 이야기한 청년이 교회의아픔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교회를 떠나며, 단체마저 떠났습니다. 몇몇 선생님들도 떠나셨습니다.
그럴수록 더 굳게 다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 곁에 있어줘야지. 아무도 없어도. 아무것도 없어져도.”
7. 사랑에 빚지면 광야에 은혜가 더한다
3년의 궁핍한 생활을 더하며 빚이 생겼습니다. 난생 처음 빚이 생겼는데 두렵지 않았습니다. 빚지는 만큼, 아이들에게 사랑이 쌓여갔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꿈트리와 비슷한 단체들이 여럿 생겨났습니다. 시작부터 화려한 곳들도 있었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조직과 행정이 탄탄해진 곳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서두를 수 없었습니다. 그저 아이들 곁에 있어주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8. 모두를 하나 되게, ‘예술로 예수를’의 시작
하나를 위해 모두가 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많아진 아이들을 하나되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예술이라는 매개체는 예수님의 마음과 닮았습니다. 비지시적이고, 마음을 만져주고, 모두를 하나 되게 합니다. 따뜻하고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들 각자 각자에게 심겨진 꿈을 하나로 묶어줄 매개체도 필요했습니다. 그저 악기만 배우고 미술만 배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딪치고 어우러질 프로그램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만나게 된 것이 뮤지컬입니다. 뮤지컬 퍼블릭의 대표 옥한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 학교의 대표적 프로그램인 뮤지컬이 생겼습니다.
지금이야 여기저기 뮤지컬 수업도 많아졌습니다만, 당시 저희 같은 단체에서 뮤지컬 수업을 시작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습니다.
뮤지컬은 음악과 춤, 연기가 어우러져 모두를 하나의 주제로 이끌고 가는 매개체만큼, 아이들을 하나로 묶는데 탁월한 것은 없었습니다.
9. 양육과 교육을 분리하지 말라, 양육적 교육
20명의 아이들이 오가는 곳이라, 이제 재정 지원도 절실해졌습니다. 프로그램도 다양해졌고, 카페 공연은 물론 구청 아트홀에서도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이제 제법 규모도 조직도 갖춰진 상태가 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두명의 아이에게 꿈이 생겼습니다. “뮤지컬로 진학을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상담에서 꼭 지켜야할 원칙 중 하나는,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내담자는 다른 곳으로 ‘transfer’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곧 죽어도 ‘꿈트리(달꿈예술학교의 전신)’였습니다. 심지어 연말에 꿈을 물어보면 ‘꿈트리 선생님’이었습니다. 여기서 배워야겠답니다. 여기가 너무 좋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아이들이었습니다.
돈이 부족하고 행정이 안 되고 도와줄 사람 없다고 아이들을 돌려보내는 것은, 소명도 사명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함께 있어주기, 그것이 우리 사명인 것처럼, 품기로 했습니다.
아이를 돌볼 능력이 안 된다고 다른 가정에 보내는 것이 양육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제게 생긴 교육 철학이 하나 있습니다. ‘양육적 교육’입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좋은 부모가 잘 양육하는 것을 밑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잘 배워도, 부모가 사랑을 주지 않고 잘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는 머리만 가득찬 아이가 됩니다. 그래서 교육의 바탕과 방향은 양육이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한 명의 아이를 위해 모든 프로그램 행사를 취소했습니다. 연말 행사는 물론, 신규 학생 모집을 중단했습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모시는데 모든 비용을 다 들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2천년 전 예수께서 일구어놓으신 ‘양육적 교육’입니다. ‘양 한 마리를 위해 99마리를 내려놓고 찾아갈 수 있느냐? 찾기까지 찾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셨던 교육입니다.
10. 좋은 선생 이전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라
이듬해가 되어 또 다른 친구가 꿈이 생겼습니다. 역시 뮤지컬입니다. 학교를 자퇴한 친구였습니다.
주변에서 모두 말렸습니다. “학교를 왜 그만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학교를 그만둔 이유가 너무 타당했습니다. 공교육에서 아이의 꿈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성적으로 차별했습니다. 지각 몇 번으로 아이를 판단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아이의 꿈을 무시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고민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네가 선택한 거야. 학교의 문제이기 전에 네가 선택했기 때문에 누구를 미워할 필요 없어. 왜냐하면 네가 학교를 그만 둔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라 좋은 선택이 될 거니까. 널 위해 스스로 선택한거야. 알았지?”
그 뒤 학생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인강 학원’을 알아봐서 같이 수학 과학 공부를 했습니다.
교회 공간이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지하에 있기에 아이와 둘만 있을 때는 내려갈 수 없었으므로, 카페에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 여기 있습니다. “같이 공부했습니다.” 네, 좋은 선생보다 좋은 친구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아이들은 친구 따라 정말 강남 갑니다. 학교를 그만둔 아이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과학과 수학 공부를 하고, 모르는 내용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좋은 선생님이 중요하지만, 지금은 좋은 친구가 될 거야. 그러니까 같이 공부하자.” 검정고시 30-40점대를 형성하던 친구가 순식간에 평균 92점을 받았습니다. 정말 좋은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요.
11. 가족이라며, 한 명을 위해 무얼 내려놓을 수 있어?
지하 교회에서 아침 일찍 와서 밥도 해먹고, 공부하고, 연습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집은 중학교 1학년부터 부모님과 온 가족이 살던 집입니다.
대지 58평의 제법 예쁜 정원과, 그래서 절대로 이 집을 안 떠나고 평생 살고 싶어하는 소녀같은 어머님, 밖에서는 돈이 아까워 짜장면 한 그릇도 못 사드시는 아버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입니다. 가을이면 동네 사람들과 정원의 감나무에서 딴 감을 나누며 정겹게 살던 감나무집입니다.
30년을 살다 보니 이제 옛 동네분들은 다 떠나시고, 옆집 앞집으로 빌라들을 지을 때도 ‘이웃이라서’ 아무 소리 안 했던 동네에서 가장 오래 산 가족이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집에서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서 고생했습니다. 아버님은 계단을 없애는 리모델링 공사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쓰였습니다. 제가 편하자고 저를 위해 집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닌데, 하나님은 자꾸 찔리게 하셨습니다. 공기 안 좋은 지하에서 매일 같이 자기 집처럼 지내는 아이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래서 30년 살던 저희 집을 허물고 새로지었습니다. 아이에게 맘 놓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함입니다. 지하부터 2층까지, 완전히 아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무료로 내어주었습니다.
12. 보이지 않는 삶이 교육이다
1) 건축도 교육이다
‘양육적 교육’이라 함은, 특별한 장소와 시간이 교육이 아니라 함께하는 모든 것이 교육이라는 것입니다. 건축을 맡기며 만나게 된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소개시켜주신 분은, 꿈트리에 처음 학생을 보내주신 국립재활원 선생님이셨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므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라고 믿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심한 일은 끝까지 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믿음이므로 보지 않고 믿기로 했습니다. 이력서도, 경력도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철저히 따졌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므로, 보이지 않는 것부터 하나님이 보낸 사람을 믿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건축이 시작되었습니다. 신기하게 집이 허물어지던 날, 저는 밀알 집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30년 살던 집이 허물어짐을 하나님은 못 보게 하셨습니다. 저뿐 아니라 부모님 모두 떠나 있을 때 허물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철저히 건축소장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소장님은 기도하면서 집을 지으셨습니다.
2) 고개숙임도 교육이다
다녀왔더니 온갖 소문이 나있었습니다. 몇몇 분들은 이 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장애인 시설이 들어온다”, “정부지원금으로 지었다”, “동네 집값 떨어진다”, 그리고 “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을 내신 것입니다.
동네 분들을 만나뵙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개 숙여 소음과 여러 불편한 부분들에 대해 직접 사과드렸습니다. 아버님이 굉장히 서운해 하셨습니다.
“한승아,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30년 산 동네에서 죄인이 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동네에서 건축할 때 아무말 없이 다 수용하시고 늘 베푸셨던 아버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아버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 지금은 우리가 고개 숙이지만, 우리가 고개숙임으로써 언젠가 여기서 공부하게 될 아이들이 고개 들고 다니게 될 거예요.”
저는 그 고개숙임도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3) 끝까지 사람을 믿는 것도 교육이다
건축을 진행하면서 예정된 건축비보다 갑자기 2억원 가량이 올라갔습니다. 그에 대한 영수증이나 비용에 대한 보고서도 없었고, 아버님께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미 수억원의 빚을 내셨고, 그나마 월세를 받으셨던 임대아파트까지 매매하신 상태에서 2억원이 갑자기 올라가니 말입니다. 건축비가 올라간다고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2억이나 올라갈 줄은 꿈에도 모르셨던 아버님셨으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녀와서 이야기했습니다. “믿음으로 시작한 일, 믿어줌으로 완성됩니다. 처음에 믿은 것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올라간 금액에 대한 계산서나 영수증을 받지 못했지만,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세상 물정에 무뎌서가 아닙니다. 믿음은 세상 계산과 달라야함을 건축에서부터 구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믿어줌으로써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여기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는 달꿈학교의 건축 이야기부터 합니다. 건축을 하신 분에 대한 이야기, 완공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이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4) 물질보다 정신이 중요함을 아는 것이 교육이다
비영리 민간단체를 신청했는데 서울시로부터 거절당했습니다. 비전에 ‘예수’라는 글자를 빼라는 요구였습니다. 이미 다른 단체들은 그런 비슷한 단어가 들어가도 통과된 경우가 많았는데, 유독 우리에게만 심하다 싶었습니다.
학교는 운영을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좋은 프로그램을 할 수 있고, 좋은 선생님이 오실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예수라는 글씨를 뺄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교육자로서 정직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목사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혀 강요하지 않는 것과, 신앙과 믿음의 내부 비전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쉽게 지원받기 위해, 비전이야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었습니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핑계를 댈 수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예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비전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비영리 교육을 하되, 신앙의 미션과 비전아래서 교육하는 것을 두고 비영리민간 단체를 등록하는 것을 막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학교는 먼저 이 일에 대해 물질보다 정신이 중요함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이 넘는 시간 서울시와 씨름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하게 되었습니다.
13. 예술로 예수를, 예수로 세상을
위에서 설명했듯, 예술과 예수는 닮아 있습니다. 따뜻함. 자유로움, 표현, 마음, 아름다움까지 모두 비슷합니다. 가르침 이전에 사랑이듯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술과 예수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술은 예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한 매개체입니다.
우리가 지금 보는 문학과 예술 장르의 대가들은 대부분의 말씀의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은 늘 예수님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죽음과 삶에 대한 고뇌가 짙게 묻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치관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인간과 사회를 묵상하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쓴 도스토옙스키는 하나님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문학 작품 안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쁨이 없었던 것은, 모든 사람을 사랑한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흔한 판타지 소설을 쓰면서도, 톨킨과 루이스는 하나님의 세계관을 넣어 소설을 썼습니다. 다빈치는 그림 하나를 그릴 때 조각을 묵상하면서도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뉴턴은 과학과 하나님을 떼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배고픔을 가지고 장발장이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현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예수를 별개로 나누어 버렸습니다. 예술에 빠져 살면서, 오히려 예수님은 등한시합니다.
예술가들이 주일 예배를 지키지 못하는게 당연해졌습니다. 수많은 뛰어난 예술 작품을 만들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어떻게 표현할까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남아있는 사람은 비전문가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전문성은 떨어지고, 결국 ‘예술은 예술대로 예수는 예수대로’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로 세상을 바꿔야 하는 사명들이 사라진 것입니다.
14. 졸업한 아이도 포기하면 안 된다: 달꿈 극단을 준비하다
그러므로 이제 달꿈학교에서 기독교 극단을 만들 생각입니다. 학교는 대학을 보내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학교는 바른 가르침을 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달꿈예술학교는 ‘양육적 교육’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져주는 부모 마음이 있어야 하는 곳입니다.
보이는 곳을 추구하는 세상이기에, 어쩌면 함께 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 극단이라고 해봐야 똑같겠지, 초라해 보이는 곳에 함께한다고 무슨 이득이 날까’ 싶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꿈트리를 운영할 때도 느꼈지만 처음 한두 해 함께하다 그만두는 분들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감동을 받고 돕겠다고 오시다가도 이 일이 결코 만만치 않고, 아무런 페이 없이 몇 개월 버티는게 쉽지 않음을 깨닫고는, 금세 처음의 감동이 사라지는 분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일해도 드러나는 일 하나 없는 이곳은, 늘 자기가 죽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쉽게 오셨다가 쉽게 떠나는 선생님도 많고, 아니 애초에 더 많은 아이들, 더 불쌍해 보이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들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극단 이야기를 했더니 아이들이 적극적입니다. 올해 졸업한 친구와 올해 학교를 다니는 학생 둘이 먼저 시작하려 합니다.
아이들이 말합니다. “이제 우리 소속사가 생겼네요!”
15. 맞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속할 곳이 없는 것입니다. 분명히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교육받아 세상에 나갔는데, 그곳에서 버티기에 홀로 힘든 세상입니다. 달꿈예술학교가 아이들에게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진 극을 만들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주려 합니다.
아이들이 묻습니다. “누가 가르쳐줄 분이 계실까요?” 겉으로는 “그럼, 선생님들 많이 계시잖아.” 하지만 속으로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밖에 안 계시네.”
먼저 예배부터 드릴 생각입니다. 함께 마가복음 5장부터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연관된 작품들을 함께 볼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은 아이들을 홀로두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반드시 누군가 돕는 자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아이들 밥이라도 사주겠다는 사람, 시나리오를 써주겠다는 사람, 예배는 같이 드려주겠다는 사람, 그냥 그자리에 함께 있어주겠다는 사람도, 반드시 생겨날 것입니다.
그렇게 먼저 예배자로 모이고 이 자리를 지켜갈 때 예술로 예수를, 예수로 세상이 바뀌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때까지 저는 Understand, 아이들이 있는 곳에 늘 서 있을 것입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