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정훈(울산대 법학과 교수, 법철학)
크리스천 야당 대표가 한 사찰의 부처님오신날 행사인 봉축 법요식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는 합장도 반배도 하지 않았다. 언론은 "논란"이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필자는 논란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개인의 "종교의 자유"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인권의 관점에서 이것을 "논란"이라고 지칭하고 설왕설래하는 한국 사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봉축법요식이었다면, 분명히 삼귀의례를 했을 것이다. "삼귀의"란 불(부처)-법(진리, 가르침)-승(승가)에 귀의한다고 예를 표하는 종교의식이다. 기독교인이라면 부처에 귀의할 수 없기에, 공손하게 손을 모은 자세로 합장과 반배를 하지 않은 황대표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지사지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교회에 초대받아 예배에 참석한 불교도 정치인에게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가? 신앙고백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교도 정치인을 기독교 예법을 따르지 않아서 무례하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만약 인권을 소중히 한다는 여당 인사들이나 황 대표를 무례하다고 비난하는 분들에게 상황을 '무슬림'으로 바꾸어 질문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오히려 역정을 내며 어떻게 이슬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불교의식의 종교 예법을 무슬림에게 정치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강요할 수 있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슬람권 유학생을 위해 대학이 할랄 음식을 제공해야 하고, 특별히 기도처를 제공하는 것은 '인권적 의무'라고 거칠게 항의하는 인권옹호자들에게 왜 기독교인의 신앙은 인권이 아니라 무례가 되고 논란이 되는 것일까?
필자는 기독교 대학에서 채플 학점을 졸업요건으로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이 논란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학은 선택 가능하고 기독교 대학임을 알고 입학했기 때문에 채플을 졸업 필수 학점으로 학칙을 정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될 수 없다.
한 불교종립대학에서 "자아와 명상" 시간에 불상을 향해 3번 절하는 것을 강요받은 기독교인 학생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한 사건에서 피해 학생에게 전문가로서 조언한 바 있는 필자로서는 소위 인권 타령이 넘쳐나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 인권"에 대한 감수성은 왜 기독교인에게만 가혹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채플은 수업의 형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수업내용에 동의하도록 강요받거나 적극적으로 신앙고백을 강요받지 않는다. 특정 종교의식인 '삼배'라는 행위를 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설령 불교 대학임을 알고 입학한 기독교도 학생일지라도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언론을 중심으로 "논란"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 사건(?)의 본질은 야당 대표라는 이유로 개인에 대한 종교 강요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거나, 황 대표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종교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박탈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반인권적으로 공론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참으로 한심하고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혹자는 기독교인이 불교 행사에는 왜 참석했느냐고 비난한다. 그는 야당의 대표다. 다종교 사회의 정치인이 타 종교 행사에 초대받고 이에 응하는 것을 비난한다면 크리스천은 크리스천끼리만 분리되어 살아가자거나 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라는 비합리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그는 야당의 대표이기 때문에 불교나 불교 신자들을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사회적 위치에 있다. 그의 불교 행사 참석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문제는 그에게 타 종교의식의 예법을 강요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은 당연한 행동을 비난하는 한국 사회의 참담한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예의상 불교 행사에 참석한 기독교도 정치인에게 종교의식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예의고 상식이다.
이것이 뉴스가 되고 논란이 된다는 사실이 전문가인 필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공공장소에서 음란한 퀴어축제를 벌여야만 인권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기초인 "자유권", 특히 정신적 기본권으로써 법의 역사에서 중시되어 온 "종교의 자유"에 대한 존중과 이를 보장하기 위한 인권 감수성이 성숙해진 사회야말로 기본을 갖춘 인권 친화적 사회라고 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논란이 될 수 없는 논란을 보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멀다는 우려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