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말, 연인을 아주 멀게 느껴지게 만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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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83] 사랑은 ‘뻔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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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영화의 고전 <러브스토리>는 제니와 올리버가 눈밭에서 장난을 치는 명장면과 배경음악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은 명대사로도 유명한데, 그것은 사과하는 연인에게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들을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나이에 따라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너무 친밀하면 굳이 미안하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리지만, 그리 단순한 뜻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란 ‘뻔뻔함’을 빼고는 이루어지기도 지속되기도 어려운 것이다. 이것은 무례함이나 낯두꺼운 것과는 다른 감정이다.

사랑하는 대상이야말로 기댈 곳이며, 피난처이고, 비빌 언덕이다. 속 썩이는 자식보다야 당연히 낫겠지만, 너무 자기 앞길을 잘 열어가고, 부모의 손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알아서 잘하는 자식은 부모의 자랑거리는 될지 몰라도 사랑을 줄 공간은 별로 없다.

예전 친누나가 자동차 딜러를 할 때 차를 사고 파는 과정에서 오가는 세금 등 돈의 차액이 1, 2만 원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돈을 나중에 입금했다가 누나에게 서운함과 비난의 말을 동시에 들은 적이 있다.

가족끼리 너무 계산적이고(?) 인간미가 없다는 이유였다. 셈이 흐린 사람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잘한다고 한 일에 욕을 먹으니 황당했지만, 그러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자식이든 연인이든 배우자이든 사랑하는 대상에게 가장 갈망하는 것은 나를 필요로 해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존재감이 엷어지는 것만큼 씁쓸한 것은 없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은 연인을 아주 멀게 느껴지게 만드는 말이다. 일상의 오해나 실수에는 물론 자주 사과하고 미안한 줄 알아야 하지만, 사랑한다면 남이 감당해 주기 어려운 일을 해주는 연인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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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도 우리가 회개하고 자주 반성할 필요가 있지만, 조금 뻔뻔할 필요도 있다. 조그마한 실수라도 할까 두렵고, 잘못한 것 하나라도 고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처럼 행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바, 아버지…, 즉 아빠와 같은 존재이시며, 우리의 잦은 실수에도 중심을 보시는 분이다. 그분의 긍휼은 우리의 작은 신음에 민감하시며 상한 심령을 더 아끼신다. 만신창이가 된 영혼이 그 분 안에서 쉬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 분의 뜻이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라도 사과해야 할 일은 분명하게 사과해야 한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은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날 한 시에 함께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노부부 중 한 사람이 먼저 그 길을 나설 때는, 혼자 두고 떠나는 미안한 것이 분명하지만 미안해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오히려 따라가지 못하고, 살려내지 못하는 상대방이 더 미안한 일인지도 모른다.

연애를 하고 또 결혼을 해서 살다 보면, 미안할 일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매번 미안하다고 할 수는 없어서, 담아두고 담아두었다가 특별한 날이나 돼야 미안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경우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이미 사랑한 사람들끼리 문제가 생겼다 해서, 연애 시작할 때 먼저 관심 갖기 시작해서 미안하다든지, 죽도록 일했는데 돈을 풍족하게 못 벌어다 줘서 미안하다든지 하는 일은 사실 진짜 미안한 일은 아니다.

물론 두 사람이 정말 사랑하고 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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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미안한 마음은 당연히 갖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배려이고 사랑이다. 예전에 그런 유머가 있었다.

한 아이가 아파서 조퇴를 하는데, 친구가 업어서 집에 데려다주고 있다. 그런데 등에 업힌 아이가 말한다.

“힘들지? 내 가방이라도 내가 들게.”
“.........”

어차피 무게는 똑같을 텐데 가방을 누가 들든 무슨 차이인가. 하지만 이 유머는 웃음보다는 미소가 번지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안함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지만, 미안해하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 도움이 안 되지만 돕는 마음 같은 것….

그래서 사랑은 '뻔뻔함'이다. 하나라도 더 있는 사람이 베풀고, 없으면 같이 굶는 거다. 기대지 않으려는 마음은 사랑 같지만 사랑이 아니다. 잘못을 했든지, 미안할 일을 했든지, 싸웠든지, 사랑의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그 특권을 쉽게 포기하는 것은 사랑하는 이를 모독하는 것이다.

실수를 사과하고, 갚아야 할 것을 갚고, 마땅히 할 도리를 빠짐없이 다 하는 기계적인 관계가 사랑이라면, 사회에서 만난 다른 이들과의 차이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다른 이들과 동일시되는 것만큼 치욕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염치를 모르고 무례하며, 밖에서는 잘하면서 배우자나 연인에게는 안하무인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더 절도가 있고 신사적이어야 하는 것이 사랑하는 관계이다.

다만 어려움이나 실수나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가장 먼저 쉴 곳이 되어주고 싶은 상대방의 마음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아니 미안하다는 말은 마음 깊이 넣어두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사랑하는 이는 그 마음을 충분히 느끼고 알 것이기 때문에….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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