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 한 편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아직 보지않은 사람은 꼭 보길 권유하고 싶다.
목아래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세하와 다섯 살 지능을 가진 동구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장애가 없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영화, 사랑이 뭔지 알게 해 주는 영화였다.
극중 대사 몇 개가 심금을 울렸다.
"나중에 줄기세포 이런 거 발달해서 일어설 수 있으면 뭐하고 싶어요?"
"약속 시간에 늦어서 뛰어가 보고 싶지...!"
약속 시간에 늦어서 뛰어가는 그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해보고 싶은 소망이 될 수 있다. 인디언의 시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당신의 오늘은, 어제 죽은 누군가가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내일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아픔에 갇혀있다. 각자의 감옥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는 수많은 감옥들의 집합소가 이 지구다. 어떤 이들은 그 감옥을 열고 나왔으나 다른 이의 감옥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그 감옥은 슬픔과 고통으로 덧칠되어져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평생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슬프게도.
목 아래로는 전혀 쓰지 못하고 아무 감각도 없는 세하의 죽고 싶어하는 심정을 누구나 이해할 것이다. 나 같아도 그런 생각을 수없이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짐으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이 비참했을 것이다.
그러나 살고 싶지 않던 세하에게 '책임의집' 신부님이 세하에게 설득력 있게 해 주던 말. "누구나 태어났으면 끝까지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는 거야."
이미 태어난 이상 끝까지 살아가야 한다. 중간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그 행위야 말로 가장 비참하고 슬픈 일이다. 불쌍한 자기자신에게 해서는 안되는 살해 행위다.
팔 다리가 없더라도, 학대를 당했더라도,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질병이 있더라도, 생명이 있는 한 살아야 한다. 그냥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가장 훌륭한 사람이다.
키울 능력이 없어 어릴 때 엄마에게 버림받았던 착한 동구가 세하에게 하는 말. "형아는 나 안떠날꺼지?"
버림받음의 기억은, 어른이지만 지능은 다섯살짜리인 동구에게도 위협적이었다. 버림받음의 상처는 여러 통로로 온다. 동구처럼 엄마에게 실제로 버려졌거나, 폭력이나 폭언으로 상처받았거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거나...,
그러한 끔찍한 상처가 '버림받았다는 기억으로 재구성'되어 영혼에 새겨진다. 그 끔찍한 상처는 빠르게 치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치유될 거라는 소망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치유된다.
이 생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다. 팔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온전한 몸이 생기고, 상처와 눈물이 치유되어 마르고, 고통이 환희로 바뀌며, 모든 것이 완전해지는 날이 반드시 온다.
이 생에서의 불완전한 것들이 껍질 벗겨지듯 벗겨지면 완전하고 눈부시고 찬란한 세계가 다가 올 것이다. 단지 잠깐뿐인 이 세상에서는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그냥 살아가면 된다.
그러므로 지금의 고난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을 밀어내고 눈부신 빛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주님이 내미는 손을 잡길 바란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내길 바란다.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