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의 ‘연애는 다큐다’ 84] 사랑과 전쟁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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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다툰다. 아니, 사람은 늘 싸우면서 살아간다. 사무적 관계일 경우에는 결별하거나 소송을 하지만, 가까운 사이라면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끊임없이 싸우고 또 화해하고, 기억하고 잊으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이는 서로 돌봐주고 아끼는 사이면서도 서로 생채기를 내는 관계일 수밖에 없다.
가끔 우리는 고민한다. 싸우지 않고 살아갈 방법이 없을까 하고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는 걸 즐기는 사람은 없다. 제발 좀 피하고 싶은 일이 싸움이고 다툼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 싸움은 죽을 때까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장미의 전쟁>이라는 영화는 목숨 걸고 싸우는 부부의 지긋지긋한 다툼 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에 둘은 다투다 못해 몸싸움에 전쟁을 벌이다가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등 난장판이 되면서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그토록 싸웠지만, 한 날 한 시에 서로 꼭 붙어서 죽게 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워서 죽어가는 여자 옆에, 엎어지며 숨을 거둔 남편의 손 하나가 여자의 가슴에 얹힌다. 마지막 순간, 여자는 힘을 다해 남편의 손을 꼭 잡는다. 그리고 매몰차게 뿌리치며 자기 몸에서 떼어놓은 다음 비로소 눈을 감는다.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네버엔딩이었다. 죽음도 이들을 화해시키지 못한 것이다.
대개 너무 많이 싸우는 커플은 서로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빨리 이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굴 만나도 다툼은 끝나지 않으며, 더 큰 적수(?)를 만날 수도 있는 법이다. 아직 사랑한다면 결별부터 생각하기 전에, ‘잘 싸우는 기술’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손찌검을 하거나 흉기를 들 정도의 과격한 사람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기술도 통하지 않는다. 빨리 돌아서야 한다.
하지만 다소 강한 분노의 표출이 있어도 상욕(辱說)이나 자해, 기물 파손 수준만 아니면 잘 다룰 여지가 충분하다. 매사에 무결점인 사람은 없으며, 태도는 상대에 따라 개선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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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싸움은 다투는 이유나 서로의 성격, 입장 차이, 잘잘못 등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 때문에, 싸움의 기술이 따로 없다. 분명한 것은, 싸우더라도 잘 싸워야 한다는 거다. 이기기 위한 연습을 말하는 게 아니다. 건강한 관계를 위한 마음의 준비를 말하는 것이다.
사적인 다툼이라 제3자의 조언이나 솔루션도 사실상 큰 의미가 없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지키는 것이 좋겠다.
일단 다투더라도 전제를 흔들지 말라. 정말 끝에 다다른 것이 아니면, “같이 못 살겠다”든지 “만남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식의 표현을 써서 자신의 힘든 감정을 강조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다투더라도 관계의 신실함을 유지한 채 항변을 해야, 감정싸움으로 번지지 않는다.
연인이나 배우자와 적당한 거리를 두라. 거리감이 너무 없으면, 한쪽에서 불이 났을 때 함께 타 버린다. 관계에 적당한 거리가 있으면 과도하게 화를 낼 수 없고, 지나친 월권 행위도 할 수 없는 법이다. 무조건 친밀해야 사랑이라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싸움을 오래 끌지 말되, 성급하지는 말라. 다툰 상태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 상처가 깊어지고 오해도 커진다. 그전에 속전속결하는 것이 물론 좋다.
하지만 앙금이 남은 것을 무작정 덮으려 하거나, 내키지 않는데 억지로 풀려 하면 상처가 덧나기 쉽다. 일정 기간이 지나고 서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다툼도 있으니, 사안에 따라 잘 대처해야 한다.
선을 넘지 말라.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약점과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가족을 들먹이거나 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이 모두가 언어적 폭력이므로 금지할 일이다.
(손찌검이나 상해 등 사람에 대한 물리적 폭력은 백 퍼센트 아웃이다. 이것은 잘 싸워서 될 일이 아니며, 이 글에서 말하는 ‘다툼’의 주제와 관련이 없는 별도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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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완전한 사랑, 지고지순함, 잉꼬부부, 운명적 만남 같은 것을 이상적인 사랑의 원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거기서 벗어나는 만큼을 사랑에 실패한 정도로 계산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툼 없는 사랑을 꿈꾸는 것은 무지개를 좇는 일이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다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은 슬기롭게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며, 멀어지기 위해 다투지 않고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다툴 뿐이다.
오래 동행한 사람들에게는 아침에 싸우고 저녁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되돌아갈 일도, 한참 사랑할 때는 깊은 고민의 이유가 된다. 하지만 다툼의 소용돌이 안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다.
모든 일이 끝나고 돌아보면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정말 사랑했다면 다툼도 사랑의 일부였다는 깨달음이 온다. 그래서 철 지난 유행가의 한 대목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만약에 우리… 이별도 사랑인 줄 알았다면
우리… 눈물도 행복인 줄 알았다면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었다고….
많은 연인들과 부부들이 다투다가 이별하고, 이별하기 위해 다툰다. 관계의 끝도 다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런 다툼의 본질은 사랑일지 모른다. 최소한 처음부터 미움을 품고 전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심을 원해서, 질투 때문에, 서운함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시작한 다툼이 싸움이 되고, 싸움이 거듭되어 깊은 상처로 남은 것이다. 그래서 ‘사랑과 전쟁’ 혹은 ‘전쟁 같은 사랑’의 끝은 이별뿐이다.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다투지 않을 재간은 없는 것이 사람이고 사랑이지만, 아직 사랑을 그르치기 전이라면 왜 다투고 왜 싸우는지 사랑과 전쟁의 본질을 잘 돌아보아야 한다.
다툼을 통해 애초에 사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면 몰라도, 아직 사랑한다면 기억할 일이다. 다툼도 상처도 어쩌면 사랑의 일부임을.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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