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북한주민들의 세계관을 지배해온 유일사상체계의 변화 및 기독교 신앙체계와의 유사성
북한주민들의 정신세계, 세계관을 지배해온 사상
1967년, 북한이 당의 유일사상으로 주체사상을 내세우면서 김일성 일인독재권력이 구축되었다. 1974년에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김정일은 주체사상을 체계화시켜 <김일성주의>를 선언한다. 김일성주의는 '김일성유일사상체계'와 '김정일유일지도체계'로 구조화되었다. 후자는 김정일의 유일적 지도 아래에서만이 김일성의 혁명사상이 완수된다는 논리로, 김정일이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다.
2012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은 곧 바로 김일성주의를 <김일성-김정일주의>로 확대·강화시켰다. 이것은 <김정일애국주의>로 대변되는데,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 아래에서만 완성된다는 새로운 논리로 김정은의 시대를 활짝 열게 해주었다.
주체라는 용어가 하나의 사상으로 제시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50년 넘게 김씨 정권은 북한주민들의 정신세계, 세계관을 완전히 지배해오고 있다. 사상의 철로가 되어 탈선하면 곧 죽음이라는 공포를 조장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김일성이 제시한 주체사상의 원리가 무엇이길래 일인독재를 가능케 했는가. 김정일이 체계화시킨 그 사상이 어떤 성격이기에 김일성은 신적 존재가 되고 김정일은 유일무이한 후계자로 권력을 향유 할 수 있었는가. 김정은은 그 사상을 어떻게 심화·발전시켰길래 미진한 후계자수업에도 불구하고 30대 초반에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했는가.
필자는 이 질문들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주체사상 및 그 체계의 틀을 종교적 성격으로 접근하였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유일사상체계는 그 성격에 있어 기독교의 신앙체계와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그 핵심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이 그 존재 방식에 있어서 비견된다는 사실이다.
유일사상체계에서의 율법적 모형
구원자로서의 '여호와'와 '김일성'
북한에는 전체 인민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지도사상(이념) 및 행동규범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주체사상과 10대 원칙(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다. 주체라는 용어는 1955년부터 대두되었지만, 이것이 하나의 사상으로 제시된 시기는 김일성이 빨치산 아류인 갑산파를 제거하고 일인독재 권력을 구축하게 된 1967년이다. 북한공식문건(당문건, 정치문건)에는 '주체사상'보다는 '당의 유일사상체계'라는 용어가 압도적으로 많이 표기된다. 즉, 북한에서 '주체사상'과 '당의 유일사상'은 동의어이다.
'당의 유일사상'은 곧 김일성의 혁명사상, 혁명정신을 가리킨다. 이 혁명정신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해방운동에 그 초점을 맞춘다. 김일성이 일제의 압박에서 조선을 해방시킨 구원자요, 일제 암흑기에서 조선에 빛을 비춰준 태양이라는 존재성을 설정한다. 이처럼,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존재론에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이 주체사상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심을 나타내는 신론적 구약의 율법과 같은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김일성은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과 비견되어진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시기 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출20:2). 그런 후에 "너는 나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고 명령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그분만이 섬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하셨다.
물론, 히브리민족이 하나님께 먼저 자기 민족을 다스려달라고 요구하였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백년 이상 애굽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키시고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홍해를 초자연적 역사로 가르셔서 바닷길을 열어주셨다. 뒤쫓아 오던 애굽군사들을 물이 합쳐지게 함으로 한꺼번에 수장시키셨다. 이 놀랍고 웅장한 광경을 지켜보았던 모세와 백성들은 탄성을 지르며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한다(출15;1-18).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
이 노래의 핵심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하신 구원자시요. 오직 여호와만 찬송 받으실 분이요, 경배받으실 분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싯구에서 영원무궁토록 그들 민족을 다스리실 분은 오직 여호와라고 고백하며 그분의 통치를 구하였다.
이 찬양과 고백을 받으신 하나님은 3개월 후,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십계명과 법규를 주신 것이다. 그 민족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알려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법을 제시해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이다. 따라서 율법의 시작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라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북한에서 당이 확립할 유일사상은 김일성의 혁명사상, 혁명정신이다. 이 혁명정신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혁명활동에 기초한다. 북한에서 주체라는 용어가 대두된 것이 1955년 12월 28일 당선전선동원대회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들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 기원을 1930년 만주 카륜회의에서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김일성의 연설문에서 찾는다. "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조선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인민 자체의 힘으로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정합니다." 이것이 주체사상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주요문헌들 모두는 '주체'를 조선혁명, 조선독립의 'Key Word'로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주체사상의 모체가 항일혁명정신임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이 왜,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지 그 목적을 알 수 있는 지점이다. 김일성의 항일혁명활동 선전의 핵심은 바로 김일성이 조선의 해방자, 구원자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것이다.
북한은 1968년에 김일성의 생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고 1972년 4월 24일, 조선혁명박물관 개관과 동시에 김일성 동상제막식을 진행하면서 '김일성 장군의 노래'라는 시를 주악에 맞추어 불렀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우에
아 그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력력히 비춰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만주벌아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만고의 빨치산이 누구인가를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밀림의 긴긴밤아 이야기하라
절세의 애국자가 누구인가를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이 시(혁명가요)의 요지는 김일성이 조선민족의 해방자요, 구원자라는 것이다. 조선혁명박물관 안에 웅장하게 설치된 김일성 항일혁명 활동, 혁명역사관을 둘러보면서, 또한 거대하고 찬란한 김일성의 금빛동상(23m, 북한국보 1호)를 바라보면서 그 어느 누가 김일성의 혁명정신에 도취되지 않겠는가.
이처럼, 북한은 사상적 체계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상징물(동상 기념관, 기념비 등)을 매개체로 김일성만이 오직 조선민족의 영도자임을 주입시켰던 것이다.
유일지도체계에서의 복음적 모형
율법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 유일사상의 완성자 김정일
구약의 핵심이 율법이라면, 신약의 핵심은 복음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된 새 언약이자,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곧, 복음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또한, 그분은 구원의 주체이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리라"(요14:6).
복음은 율법을 완성시킨 것으로, 그 율법의 완성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신약은 복음의 주체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서는 십계명 중, 제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를 보완하여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라는 복음을 제시하였고, 28절에서는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를 강화하여 '음욕을 품지 말라'는 복음으로 완성 시켰다.
이를 통해, 성경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율법의 해석자, 보완자, 완성자이심을 선언한다. 율법을 완성시키는 목적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게 함으로(마5:48) 아버지께로 가는 생명의 길을 제시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요14:6).
김정일은 '유일지도체계'를 내세우면서 자신이 주체사상의 유일한 해석자요, 계승자요, 완성자라고 선언하였다. 이런 면에서, '김정일 유일지도체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성격에서 매우 유사하다. 동시에, 김정일은 율법의 해석자요, 율법을 완성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 존재방식이 비견된다.
그는 주체사상을 '김일성 유일사상체계'와 '김정일 유일지도체계'로 양분시켰고 이를 <김일성주의>로 천명했다. 또한, 구약의 십계명과 같은 10대 원칙(1967년, 김영주(김일성 친동생)가 초안 작성)을 보완하여 충성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켜 명문화시켰다. 제10조에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라는 내용을 추가시킨 것이다.
유일사상의 독점권을 행사하던 김정일은 1986년에는 '혁명적수령관'(1974년)을 '사회정치생명체론'으로 강화시켜 김일성의 지위를 신적 위치까지 올려놓았다. 다음 해, 1987년에는 김일성 신격화의 일환으로 <김일성 전설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은 지도자에게 목숨바쳐 충성을 다하는 '수령결사옹위정신', '총폭탄 정신'을 종용받게 된 것이다.
김정은, 유일영도체계화로 리더십 확보
북한의 삼위일체 교리 완료
김정일에 의해 <김일성주의>로 공표된 주체사상은 김정은에 의해 <김일성-김정일주의>로 확대·강화되었다. 김정일주의는 '김정일애국주의'를 가리킨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김일성, 김정일의 혁명사상을 결합시킨 것에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를 그 지도체계로 한 것이다. 즉, 김일성-김정일의 혁명사상은 오직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에 의해서만 완수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김정은이 김정일의 뒤를 이어 주체사상의 해석자요, 계승자요, 완성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김정은이 주도적으로 정식화한 <김정일 애국주의>는 크게 '조국관', '인민관', '후대관'으로 나뉘는데,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김정은은 2013년 6월에 10대 원칙의 '유일사상체계의 확립'을 '유일영도체계의 확립'으로 수정하면서 그 자신도 충성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제1조에서 '김정일주의화'를 추가하였고 제10조에는 혁명위업의 '대를 이어'를 '백두혈통으로'라고 바꾸었다. 제6조에는 특정 간부, 개별적 간부에 대한 맹목적 추종금지 내용을 더욱 강화시켰는데, 이 원칙이 개정되고 6개월 후에 장성택이 즉결 처형되었다는 점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정권 돌입 후, 북한의 '삼위일체' 교리가 완료되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존재원리가 삼위일체인 것처럼, 북한에서 김씨 3대 부자의 존재원리도 삼위일체로 설명된다. 기존에 북한의 삼위일체로 제시되어왔던 김일성-김정일-주체사상(당)은 기독교의 원리와는 상이하다.
북한의 삼위일체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가리킨다. 김정은 정권 이전에는 김일성-김정일의 '이위일체' 원리만 성립되었을 뿐이다. 김정은이 포함된 삼위일체 원리는 북한이 내세우는 영생론에 기초한다.
북한은 2012년 2월에 김일성-김정일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금수산태양궁전', '수령영생궁전'으로 명명했다. 2013년에는 <수령영생법전>을 만들어 김일성-김정일의 영생론을 법제화시켰다. 영생하는 김일성-김정일의 존재방식은 크게 세 가지(곳)이다.
하나는 '수령 영생궁전'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들 마음 안'이다.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김정은이다. 최근 북한에서는 세 번째를 가장 내세우고 있다. 이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대표적인 것이 '수령복-장군복'이라는 용어인데, 이 슬로건이 사용될 때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은 삼위일체 존재방식으로 선전되어진다.
북한 주민들 세계관의 현주소
신화적 사고, 대중적 '신들림의 현상'
북한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김정일이 '김일성주의'를,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지도이념으로 내세우는 가장 큰 목적은 북한주민들의 정신 및 사고를 지배하여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 및 절대적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함이다.
이는 정치학자 메리암(Charles e, Merriam)이 제시한 권력유지이론인 크레덴다(credenda)원칙에 부합된다. 이 원칙은 1) 통치체제에 대한 존경(respect) 2) 기존의 권위에 복종(obedience) 3)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sacrifice) 4) 합법성(legality)의 독점, 이 네 가지로 분류된다.
권력자가 목적달성을 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제도 및 사상의 틀을 만들어 지배구조를 형성한다는 이론이다. 이 원리 안에서는 권력자에 대한 어떤 이견도 존재할 수 없다. 만일,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그는 바로 대적자, 반역자, 루시퍼로 몰려 제거, 박멸대상이 되고 만다.
북한 최고지도자들에 대한 절대적 충성 및 무조건적인 순응은 결국 북한주민들로 하여금 피어슨(C. A. Van peursen)이 제시한 '신화적 사고'에 지배당하게 한다. 피어슨은 현대에서도 원시적인 신화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주변의 힘과 환경에 적응하려는 태도, 방법을 '신화적 사고방법'(mythical thinking)이라고 하였다.
그는 신화적 사고방식의 기본적 특성의 하나를 생명과 우주를 주재하는 근원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과 전율의 태도로 보았다. 또한, 진정한 신화적 사고는 사람이 그것을 신화적인 것이라고 깨닫지 못하는 것으로, 마치 자신이 하나의 인상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그로 인해, '신들리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즉, 사람이 자유로운 사색을 하지 못하고 완전히 인상의 포로가 되는 식의 사고를 신화적 사고로 규정하였던 것이다.
피어슨이 제시한 '신화적 사고'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북한이다. 김씨 독재정권 하에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서 이 사고(의식)는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북한 주민들은 절대성이 부여된 지도자 인상에 사로잡혀 있다. 지도자 인상에 대한 대중적 '신들림의 현상'에 빠져있다.
이로 인해, 북한은 김정은의 어린시절을 선전하면서 그가 세 살 때 자동차를 몰고, 사격에서는 백발백중의 명사수라는 스토리를 가공해내는 것이다(2014년, 김정은혁명활동교수참고서 내용). 그런데, 이 같은 선전이 북한주민들에게는 여전히 통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 북한 주민들 세계관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다.
정교진 박사는
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기독교한국침례회 국내선교회 북한 선교부장을 역임했다. 고려대학교 북한학과에서 석·박사를 마친 후 고려대 북한 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이며, 사랑깊은교회에서 청소년부 담당 전도사로 사역 중이다. 최근 탈북자 선교 사역을 했던 자신의 경험을 담아 소설 「역사 위에 서다: 두 탈북자의 목숨을 건 회심」(예수전도단)을 펴내기도 했다.
* 이 글은 월간 「월드뷰」 7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