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더함 목사의 플러스통신] 신(新) 소피스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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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 자극한 인기 추구, 가장 위험한 국가 경영 방식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1510, 프레스코)’. ⓒ한길사 제공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1510, 프레스코)’. ⓒ한길사 제공

개혁주의 신학을 다루는 진영 내부의 불문율 같은 인식 중 하나는 ‘신(Neo, 新)’으로 시작하는 어떤 사상이나 문화적 조류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고대의 신플라톤주의로부터 시작해 신정통주의(Neo-Orthdoxism), 신복음주의(Neo-Evangelicalism) 등이 그 예다. 그런 점에서 제목을 ’신‘으로 시작함이 그리 개운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한다는 원리를 인정하면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종의 철면피 같은 수다쟁이(?)들을 고발한다는 점에서, 이들을 ’신(新) 소피스트‘라 불러도 무방할 듯싶다.

고대 소피스트들은 B.C. 5세기경 아테네에 정착하기 시작한 순회 교사들에게서 시작되었다. 그들을 ‘지혜’를 뜻하는 소피스트라 부르게 된 것은, 자신들이 가진 학문적 지식을 대중들에게 직접 가르치는 일을 주업으로 삼았으며, 특히 순수한 동기와 열정으로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즐겨하여 사람들로부터 ‘현자’라는 평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며 도덕적 삶을 주창한 프로타고라스(B.C. 481-411?)는 대표적인 소피스트 중의 소피스트였다.

그러나 애초에 훌륭한 동기를 가지고 시작된 그들의 말로(末路)는 결국 변질되고 말았다. 세련된 철학의 탐구와 대화술로 인기를 끌던 그들에게 부수적으로 찾아온 부와 명예는, 쉽사리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점차 높은 부를 누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아야 했고, 자기들끼리 언쟁을 주고 받는 ‘부질없는 논쟁꾼’, 다시 말해 입만 살아있는 '수다쟁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소피스트들의 인류사회적 공헌은 지대했다. 근 한 세기 동안 철학과 문학과 언어학 및 사회개혁에 대한 논의를 통한 학문적 진전, 그리고 국가와 그 정당성을 다루고, 금기시되었던 종교의 영역까지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한 일들은 높은 평점을 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의 순수한 개혁적 시도와 활동들은 점점 정치적인 목소리와 함께 당파로 갈라졌고, 그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훗날 회의주의를 낳는 모태가 되었다.

▲폰 폴츠 그림, 펠로폰네소스 전쟁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연설하는 페리클레스.
▲폰 폴츠 그림, 펠로폰네소스 전쟁 희생자들의 장례식에서 연설하는 페리클레스.

성경과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얼마나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인가를 명백히 진술하고 증거한다. 인간이 얼마나 진리에 눈을 가리고 부질없는 일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가를 증명한다. 본질보다 현상적인 일에 환호하고, 실리보다 명분이나 체면을 앞세우다 큰 낭패를 본 사례들이 부지기수다.

특히 한국 사회의 체면 문화는 모든 상처난 몸뚱이를 감싸고 있는 붕대와 같다. 한국에는 ‘품위 유지비’ 즉, ‘체면 유지비’라는 게 있다.

‘양반은 겻불도 쐬지 않는다’는 속담에서부터, 한국 여인들은 시장에 갈 때에도 차려입고 가고, 집 앞 수퍼마켓에 가도 입술에 루즈를 발라야 하고, 뒷동산 단풍놀이를 가도 기능성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 2009년 어느 기업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소형차를 기피하는 절대 다수 이유가 ‘체면’ 때문이라 했다.

문제는 이런 체면 문화가 개인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나라 안의 정치, 경제, 사회의 영역은 물론, 나라 밖의 국제관계에 적용되면서 대의명분으로 발전할 때엔 심각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리스 역사가인 투키디데스(Thukydides, BC 460-400?)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멜로스 대화편’에는 그리스 도시국가였던 멜로스가 어떻게 멸망했는가가 정확히 기술돼 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사생결단으로 서로 맞붙었다. 이때 멜로스는 아테네보다 스파르타를 택했다. 이에 아테네 사절단이 멜로스를 방문해 다시 아테네와 손을 잡을 것을 강권했다. 멜로스더러 “여러분은 여러분보다 압도적인 강자에게 저항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멜로스는 “우리는 700년 전통을 유지해 온 자부심이 강한 나라”라며 끝내 항복을 거절했다. 실리보다 대의명분에 집착한 것이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아테네의 대군 앞에 멜로스의 모든 남녀는 죽임을 당했고, 여자와 아이들은 모두 노예로 팔려갔다.

▲지난달 G20에서 악수만 하고 헤어진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 ⓒ청와대
▲지난달 G20에서 악수만 하고 헤어진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 아베 총리. ⓒ청와대

오늘 한국을 보라. 특히 집권 세력을 보라. 민족주의와 평화주의와 대의명분을 앞세워 자신들을 정의의 사도로 자인하고 독선과 파격과 파행을 일삼으며, 일사분란의 대오를 갖추고 스스로 이상주의자로 자처하며, 투쟁과업의 고지로 설정한 적폐청산을 위해 힘겨운 달음박질을 계속하고 있다.

결과가 무엇이든 자신들이 세운 원칙과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논쟁을 불사하며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한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으로 자영업자의 경제적 손실과 일용직을 비롯한 여러 비정규직 일자리가 날마다 날아가고 있음에도 정책 변경이나 전환은 없다. 원전가동을 중단하고 4대강 보를 해체하고 자사고를 폐지하는 것은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어쩔 수 없이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한다.

외교 관계에서도 실리보다 대의명분을 주장한다. 일본은 무역보복을 하는데 우리 쪽의 카드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이다. 앞의 것은 치열한 외교적 전략의 결과이고, 뒤의 것은 국민 정서에 호소하는 대의명분의 발로이다.

문제는 이런 일들을 누가 조장하는가이다. 많은 가담자들이 보인다. 이들은 각 분야에서 자신들의 철학과 세계관과 정책을 대변한다. 이들은 방송을 장악하고 각 시민단체와 노조들을 우호세력으로 만들고 세련된 문화적 컨텐츠와 지성의 오물렛 상품들로 무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참으로 부질없는 논쟁거리가 많다. 이런 논쟁꾼들이 이름하여 ‘신 소피스트들’이다. 이들이 대접을 받는 세상이다. 어떤 이는 한 번 강연료를 1, 2천만원씩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정말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개선하고 사회적 안정을 꾀하고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걸까? 분열을 조장하는 궤변론자는 아닌가?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보고 알자.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당장 인기를 누리려 하는 것보다 위험한 국가의 경영 방식은 없다.

지금의 집권 세력들도 동기는 순수했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도 그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과 함께 다시 점검하고 추스르고 희망을 노래하자. 그리고 쪼개고 걷어차고 무서운 말로 주눅들게 하고 겁박하고 몰아세우고 증오심으로 저주하는 일을 버리자.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회를 건설하자.

이런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이여, 먼저 모범을 보입시다. 낮은 데로 임합시다. 배려하고 베풀기를 즐겨 합시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합시다. 화내지 말고 삿대질하지 말고 포옹하고 친절하며 감사합시다.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최더함(Th.D. 바로선개혁교회. 개혁신학포럼 총괄책임)

▲최더함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최더함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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