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칼럼] 한가위를 위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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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덜도 말고 팔월 한가위만 같기를 소원하며 살아온 우리 민족이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 내내 가꾸어 온 곡식들의 추수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인과응보(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안 심은 데 안(풀) 난다)의 진리를 배우는 절기이기도 하다. 많은 시인들이 팔월 한가위(추석)를 소재로 시를 읊었다. 그 중 몇 개를 모아 보았다.

① “남의 집 추녀 밑에, 주저앉아 생각 는다 날 저물 때까지/ 그때는 할머니가 옆에 계셨는데, 어머니도 계셨는데, 어머니래도 젊고 이쁜 어머니가 계셨는데/ 그때는 내가 바라보는, 흰 구름은 눈부셨는데 풀잎에 부서지는 바람은, 속살이 파랗게 떨리기도 했는데/ 사람 많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주저앉아 생각 는다/ 달 떠 올 때까지”(나태주/ 추석 지나 저녁 때)

② “고향의 인정이, 밤나무의 추억처럼, 익어갑니다/ 어머님은 송편을 빚고, 가을을 그릇에 담아, 이웃과 동네에, 꽃잎으로 돌리셨지/ 대추보다 붉은, 감나무 잎이, 어머니의, 추억처럼, 허공에, 지고 있다”(황금찬/ 추석날 아침에)

③ “가을이 되엇으니, 한가위 날이 멀지 않았소, 추석이 되면, 나는 반드시, 돌아간 사람들을 그리워하오/ 그렇게도 사랑 깊으시던 외할머니, 그렇게도 엄격하시던 아버지, 순하디 순하던 어머니, 요절한 조카 영준이! 지금 천국에서, 기도하시겠지요”(천상병/ 한가위 날이 온다)

④ “어제는 시래기 국에서, 달을 건져 내며 울었다, 밤새 수저로 떠낸 달이, 떠내도 떠내도 남아 있다, 광한전도 옥토끼도 보이지 않는, 수저에 뜬 맹물 달, 어쩌면 내 생애 같은, 국물을 한 숟갈 떠 들고, 나는 낯선 내 얼굴을 들여다 본다, 보아도 보아도 숟갈을 든 채 잠든, 자식의 얼굴에 달은 보이지 않고, 빈 사발에 한 그릇 달이 지고 있다”(정희성/ 추석 달)

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이해인/ 달빛 기도)

⑥ “빈 집 뒤 대밭 못 미쳐, 봐주는 사람 없는 채마밭 가, 감나무 몇 그루 찢어지게 열렸다, 숨 막히게 매달리고 싶었던 여름과, 악착같이 꽃 피우고 싶었던 지난 봄날들이 대나무 받침대 세울 정도로 열매 맺었다, 뺨에 붙은 밥풀을 뜯어 먹으며, 괴로워했던 흥보의 마음, 너무 많은 열매는 가지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거적때기 밤이슬 맞으며, 틈나는 대로 아내는 꽃을 피우고 싶어했다, 소슬한 바람에도 그만 거둬 먹이지 못해 객지로 내보낸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까짓 뺨 서너 대쯤이야 밥풀이나 더 붙어 있었으면, 중 제 머리 못 깎아 쑥대궁 잡풀 듬성한 무덤 주위로 고추잠자리 한 세상 걸머지고 넘나드는데, 저기, 자식들 돌아온다, 낡은 봉고차 기우뚱기우뚱, 비누 참치 선물세트 주렁주렁 들고서”(유용주/ 추석)

⑦ “나이 쉰이 되어도, 어린 시절 부끄러운 기억으로 잠 못 이루고/ 철들 때를 기다리지 않고 떠나버린 어머니, 아버지/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깊은 밤/ 반백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드러운 달빛의 손길,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유자효/ 추석).

명절은 그 자체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계기로 평소 흩어져 살던 가족들과 일가 친척이 한데 모인다는 의의가 크다.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은 재결합의 날(Reunion Day)로 지낸다. 서로 모여 씨족 간 일체감과 단결, 그리고 한 조상 밑에 친척이라는 혈연 공동체임을 재확인함으로 든든한 인간관계망을 조성하고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도 느낀다.

그리고 자랑거리나 성취가 있을 때, 사심 없이 축하해 주는 기쁨과 인간 지지대로서의 혈족을 확인하는 든든함도 느끼게 된다.

김형태 박사(한국교육자선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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