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이중직 금지 제도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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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익 목사.
▲손재익 목사.

서론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는가?”

언제부터인가 교계에 이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 문제는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든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서 근로의 의무(대한민국 헌법 32조)가 있고, 직업 선택의 자유(헌법 15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총회)가 목사에게 “직업을 가지지 마시오” 라고 강제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역시 이 문제는 이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 이유는 세상 사람들의 이유와 전혀 달라야 한다. 바로 “목사가 굳이 직업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것도 목사들이 다른 직업을 겸직할 수 있게 공적으로 결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2019년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총회에도 이 문제에 대한 안건이 올라왔다.

예장 합동은 목회자 이중직 금지 조항을 삭제해 달라는 안건과 목회자 이중직 연구위원회 신설 요청 건이 올라왔다. 예장 고신은 생계 대책을 위한 목사의 이중직 허락 연구 청원 건이 올라왔다.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본론

Ⅰ. 원리적 접근

목사라는 직분을 맡은 자들이 다른 직업을 갖지 않았던 이유

정상적인 성인은 모두 다 직업을 갖는다. 부득불 일할 능력이 없거나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든 직업을 갖고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그런데 왜 목사들은 직업을 갖지 않을까? 그 이유는 목사라는 ‘직분’이 감당해야 할 ‘직무의 독특성’ 때문이다.

목사의 직무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자들’이다(딤전 5:17). 그리스도의 양떼를 살피는 자들이다(행 20:28). 이와 더불어 장로교 헌법(고신, 합동, 합신)에 의하면, 교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 찬송을 지도하는 일, 성례를 거행하는 일, 교인을 심방하는 일, 교회를 치리하는 일 등을 해야 하는 직분자이다.

이 일들은 영적으로도 무거운 일이지만 물리적으로도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일이다. 남는 시간에 틈틈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오랜 시간이 요구되고 연속성이 요구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남는 시간들을 잘 활용하여 직분을 수행하기가 어렵다.

이 일에 수고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남의 일처럼 쉽게 “그 일이 뭐 그리 힘들다고” 라고 말할 수 있으나, 목사의 일을 감당해 본 모든 사람들은 잘 알듯이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일이다. 특히 목사의 직무 중 가장 핵심적인 ‘설교를 준비하는 일’만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요구된다.

목사는 ‘직업’이 아니다. ‘직분’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목사는 ‘무직’이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 봉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직분은 봉사직이요, 목사도 마찬가지며, 목사 외의 다른 항존직원인 장로, 집사도 자신의 직업을 갖고 직분에 수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목사직은 다른 직분과 달리 무직 상태에서도 쉽게 감당하기 힘든 직분이다.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만 힘쓰겠다는 사도들(행 6:4)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직무이다.

이렇게 목사라는 ‘직분’이 갖고 있는 ‘직무의 독특성’ 때문에, 역사적으로 목사는 ‘직업’을 갖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직업이 없는 목사에 대한 생계를 교회가 책임져 왔던 이유

직업이 없다는 것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그러다 보니 직무의 독특성 때문에 직업을 가지지 않는 목사와 그 가족의 생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목사가 직업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가 감당하는 ‘직무’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결국 교회에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이에 대해 교회 역사는, 교회가 목사와 그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방식으로 해결해 왔다.

간략히 설명하면, 성경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전적으로 수고하는 이들에 대해, 교회(회중)가 책임질 것을 명하는 말씀이 여러 곳에 나타난다.

갈라디아서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디모데전서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고린도후서 11:8-9 “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또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비용이 부족하였으되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였음은 마게도냐에서 온 형제들이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였음이라 내가 모든 일에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조심하였고 또 조심하리라”라고 말하는데, 이 본문들은 복음 전파의 사역을 감당하는 직분자의 생계를 교회가 책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교회론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교회가 목사에게 생활비를 배려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목사 개인을 위해서이기 이전에 교회 전체를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목사직이 감당하는 ‘직무’는 모두 ‘교회’를 향하기 때문이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일, 교인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 찬송을 지도하는 일, 성례를 거행하는 일, 교인을 심방하는 일, 교회를 치리하는 일 등 이 모든 일들은 교회를 위한 직무이다. 교회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전체를 통해 일해야 하는 직무이다.

이렇게 목사의 직분이 곧 교회를 위한 직분이기에 목사의 생활을 교회가 책임지는 것이다. 다른 모든 자연인이 자신의 생계를 자기가 책임지지만 목사의 생계는 교회가 책임지는 것이다.

목사의 이중직을 허용하고 목사의 생계를 목사가 직접 책임지게 될 때

목사와 그 가정의 생계를 교회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런 이유 때문에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가짐으로써 직접 생업(生業) 전선에 뛰어든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 타격은 목사와 그 가정에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회중에 돌아온다.

왜 그럴까? 목사는 생업이 있으니 생계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목사와 그 가정이 받는 타격은 크지 않다.

단, 목사가 생계에 전념하느라 목사의 직무를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목사가 목사의 직무를 하기 싫어서 혹은 게을러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생계를 감당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소홀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목사도 사람이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생계와 목사의 직무를 동시에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 결과 목사는 말씀 연구에 전념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며, 성도들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부담은 결국 회중이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목사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의 의미는 “목사님~! 당신이 맡은 직분은 그 특성상 삶 전체를 교회에 드려야 하는 직분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생활은 교회가 책임져 줄 터이니,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목사에게 맡기신 그 직분을 담당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생활에 대한 염려는 하지 마십시오. 목사의 생활에 대한 염려는 교회의 회중인 우리의 몫입니다”라는 것이다.

원리: 목사의 이중직 금지와 교회의 책임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목사의 이중직 금지’는 원리적으로 볼 때에 목사의 ‘직무’를 보존하기 위함이요, 나아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함이니, 이를 위해 “교회가 목사의 생활비를 지급함으로써 목사로 하여금 자신의 직무에만 전념하게 하는 방식”이 오늘날까지 장로교회와 대부분의 교파 안에 정립되어 왔다.

이러한 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때, ‘목사의 이중직 금지’가 목사를 억압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목사직과 교회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Ⅱ. 현실적 접근

원리를 오도하는 현실

앞서 살펴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상식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앞서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목사가 굳이 직업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는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복잡한 교회 현실과 원리가 사라진 시대 속에서, ‘목사의 이중직 허용’이라는 주장이 마치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원리’인 듯 생각되고 있다.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의 필요성

현실 때문에 원리가 잠식(蠶食)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왜 목사의 이중직 논의가 발생하게 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상당수의 목사들이 부족한 생활비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만 초점을 둔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현실에 대한 바른 이해

“왜 목사들이 합당한 생활비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되었는가?”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교회의 양극화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들은 ‘평균케 함의 원리’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어떤 교회는 1년 재정이 몇백 억이지만, 어떤 교회는 1년 재정이 2천만원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교회는 목사를 위해 넉넉한 생활비를 제공하기 어렵다. 게다가 상당수 교회들이 재정적 측면에서 미자립교회라는 사실은, 원리를 제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현실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있다 하더라도 공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다면 현실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고, 원리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다. 공교회 정신에 따라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교회는 마땅히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를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원리를 실천할 수 있다.

또 하나, 무분별한 교회개척 때문이다. 장로교 원리상 교회 개척은 노회의 소관이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노회는 교회개척을 위한 목사를 ‘전도 목사’로 파송하면서 생활비 지원을 약속하게 되어 있다. ‘전도’ 활동이 끝나 교회 ‘개척’이 종료할 때까지 노회는 목사의 생활비를 책임지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러한 현실이 왜곡되어, 목사 개인이 일단 교회를 개척한 뒤 노회의 허락을 받는다. 물론 사후 허락을 원천 봉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후 허락이 보편화되다 보니, 충분한 여건이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목사들이 많아지고, 결국 합당한 생활비를 교회(노회)로부터 받지 못하여 다른 직업을 함께 가져야 할 형편에 놓인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현실은 현실이지 원리가 아님

이러한 ‘왜곡된 현실들’은 오늘날 목사의 이중직을 허용해야 한다는 새로운 ‘원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래서 ‘목사의 이중직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해 달라는 것이지, ‘원리’가 그러해야 한다는 주장이 될 수는 없다.

‘목사의 이중직’을 허용해 달라는 분이나 이 주장에 대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분들은, 목사의 이중직 허용이 ‘원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목회자 이중직 관련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목회자 이중직 관련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Ⅲ. 원리와 현실 사이에서

원리, 현실, 제도

원리와 현실, 그리고 제도가 있다. 제도는 기본적으로 원리에 근거한다. 그러면서 때로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이 때 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해야 한다.

원리를 무시하고 현실만 반영한 제도는 시행되면 될수록 문제점이 드러나고 결국 원리를 잃게 만들고 현실을 악화시킨다. 원리에 근거한 제도가 남아있을 때는 그나마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텐데, 현실에 근거하여 제도를 바꾸어 버리면 원리가 사라진다.

원리에 근거한 현 제도

목사의 이중직 금지와 목사 생계에 대한 교회의 책임은 ‘원리’다. 목사에게 합당한 생활비를 제공하기 어려운 교회와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목사들이 있다는 사실은 ‘현실’이다.

이러한 원리와 현실 사이에서, 현재의 제도는 원리에 근거한 ‘제도’다. 원리를 지키기 위해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따라 제도를 바꾸어 버리면, 원리가 사라질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따라 제도를 바꾸게 되었을 경우의 예상되는 시나리오

목사의 이중직 허용을 주장하는 분들의 의견대로, 원리보다는 현실에 따라 제도를 바꾸면 어떻게 될까? 가까운 시점에는 생계의 위협을 받는 목사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생계를 충분히 책임지지 못하는 교회의 부담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원리가 훼손되고 현실만 남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현실마저도 더 악화될 것이다. 어떤 식으로 악화될까?

① 재정적으로 넉넉한 교회가 연약한 교회를 돕는 책임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공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개인에게 미뤄버릴 것이다.

②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요구할 것이다. “다른 교회 목사는 자신이 직접 생계를 책임지는데 왜 우리교회 목사는 교회가 생계를 책임지는가?”라고. 그래서 “형편이 어려운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가져도 되느냐?”의 문제가 아닌, “목사도 자기의 생계를 자기가 책임져라”는 방향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충분한 재정적 능력이 있는 교회마저도 목사의 생활비에 대한 교회의 책임을 소홀히 하게 될 것이다.

③ 그 결과 원래는 이 제도와 상관없는 목사들마저 일터로 내몰릴 것이다.

④ 어떤 교회는 ‘부자 목사’를 원할 것이다. 상당한 재산을 갖고 있어서, 일하지 않아도 자기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으면서도 일하지 않기 때문에 목사직에 전념할 수 있는 목사를 청빙하려고만 할 것이다.

⑤ 목사이면서 다른 직업을 가지려는 분들이 아니라,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목사도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목사라는 직분이 삶 전체를 드려 감당해야만 할 수 있는 직분이 아닌 누구나 겸직할 수 있는 직분인양 오해하는 일이 나타날 것이다.

⑥ 위에서 언급한 모든 일들이 확산되어, 교회 전체가 말씀에서 멀어지고 목사직의 세속화로 이어질 수 있다.

목사의 이중직 금지는 교회를 위함이다

공무원이나 사기업 사원들에 대해서 이중직을 금한다. 공무원의 경우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 제1항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25조 (영리 업무의 금지)에 의하면 다른 직을 겸할 수 없다. 그 이유 중에는 공무원의 직무 능률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있다. 대부분의 사기업이 직원들이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을 금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기업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목사가 다른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그렇게 될 때 목사로서의 직분을 감당함에 있어 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결국 교회로 돌아오고, 교회를 말씀의 터 위에 든든히 세우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리와 현실 사이에서

원리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있다. 이 때 원리는 잘 보존해야 한다. ‘목회자의 이중직 금지’라는 원리를 제도화한 현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현실에 따라 이 제도를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교회는 최대한 목사의 생활을 책임지도록 하는 일에 힘쓰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예외적 허용’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제도를 바꿔서가 아니라, 제도는 그대로 두되 그에 대한 적용을 통해서 해야 한다.

그리고 목사들도 부득이한 이유 때문에 다른 일을 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일은 부차적인 것이지, 절대로 주(主)가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임시로 다른 직업을 겸하는 것이요 부업으로서 갖는 것이지, 그 직업이 주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때에 교회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원리를 쉽게 잃어버릴 것이다.

결론

안타깝게도 직분과 교회에 대해 바르게 가르쳐야 할 교회의 교사인 목사들이 나서서 이중직을 공식적으로 허용해 달라고 한다. 그리고 목사의 이중직 허용이 결국 목사들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모르고 있다.

목사의 이중직 금지는 목사의 생계를 위협하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의 귀한 전통과 유산이요 목사와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목사로 하여금 생업 전선에 내몰리지 않게 함으로써 목사의 직분과 직무를 보호하고, 목사 개인을 보호하는 제도다.

또한 교회로 하여금 교회가 감당해야 할 마땅한 책임을 다하게 함으로써 목사직의 성실한 수행을 통해 교회가 보존되게 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하지만, 목사의 이중직 금지는 목사와 교회를 위한 제도다.

손재익 목사(한길교회 담임)

『특강 예배모범』(흑곰북스)
『설교, 어떻게 들을 것인가?』(좋은씨앗)
『나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을까?』(좋은씨앗)
『벨기에 신앙고백서 강해』(디다스코)
『성화, 이미와 아직의 은혜』(좋은씨앗)

※위 글은 2015년에 기독교개혁신보에 기고한 것을 조금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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