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한 꼬마의 편지
1. 가끔 청년들에게 반말 편지를 보낸다.
솔직함과 편안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이다. 반말이 가진 힘은 편안함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목사와 성도 사이에 있는 높고 낮은 벽이 허물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직분이 다 무슨 소용인가. 목사건 전도사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중요한 것은 평등한 관계 아닌가’ 하는 점에서이다. 평등해야 솔직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상한 척 해본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하는 까마귀의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몸부림일 뿐, 백로임에도 까마귀 무리에 끼어든 예수를 닮을 수 없다.
2.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급격하게 가까워지기보다, 존중함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청소년, 청년 성도 누구에게든 1년 넘게 존댓말을 하기로 했었던 내가, 청년 모두에게 반말 편지를 썼다. 무덥지는 않았던 2014년 여름이었다.
청년 모임 도중, 고민을 듣고 나서 마음이 아파 쓴 편지였다. 그 해 청년들의 고민은 모두 자기 믿음에 대한 고민이었다. 죄다 ‘너무 힘들어요’ 라는 고민이었다.
내가 그 친구들의 삶을 살지 않는다고, 또 내가 담임이 아닌 청년부를 섬기는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고 생각했었다.
고민 앞에서 나는 무력했던 나는, 친구들의 고민에 위로가 되기 위한 자기 스스로의 다짐을 약속으로 전해줄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반말로 약속을 했다. 정확한 워딩은 찾아봐야겠지만, 이렇게 이야기했다.
“얘들아. 너희 믿음이 혹시 직분자들의 모습 때문에 상처받는다면, 믿음이 실족한다면, 나는 이 직분 떼고 너희들 곁에 있고 싶다. 약속할께. 직분 없어도, 사례 없어도 너희들 곁에 그대로 있는 형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절대로 믿음은 실족하지 말아라.”
3. 하나님은 그 약속을 기억하셨다.
정확히 그 해 목사 안수를 받을 때, 비전을 물어보셨다. 다른 분들이 멋있는 비전과 사명 이야기할 때, 나는 사도바울의 고기와 형제 사이의 갈등과 결단을 근거로 제게 있는 친구 한 명이라도 믿음이 실족하지 않게 살고 싶은게 사명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명의 믿음을 위해서라면 고기 안 먹어도 된다고. 가난해져도 된다고.
그런데, 교회에 아픔이 생겼다. 교회의 모습, 직분을 가진 자들의 모습 등에 상처를 입고, 교회에서 가장 성실히 섬겼던 친구가 교회를 떠났다.
고민을 나눌 틈도 주지 않고, 내겐 아무런 말 없이 훌훌 떠남은 오히려 갑절의 무게로 다가왔다. “정말 아팠구나.”
4. 교회가 가장 어려웠던 순간,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 주요 직분자들이 교회를 우르르 떠나갔다.
담임목사님이 갑자기 그만두셨다. 청년 시절 10여년 전, 상처입었던 그대로 다시 재연되는 듯 했다. 모두 힘들어서 떠났다.
고민이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친구의 말없는 고민과 고통에 내가 응답하는 방법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었다.
5. 5살에 꼬마 목사로, 하나님께!
목사님이 되는 것이 꿈이던 나는, 고민 끝에 그 해 송구영신예배에 목사 직분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직분 내려놓고 그 옆에 그대로 있겠습니다.”
직분을 내려놓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떠나지 않는 것. 아무 대가가 없어도, 원래 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주는 것. 그것이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내가 섬겼던 청년을 위한 것이었다.
교회가 어렵지만, 교회의 주인이 사람인 누구도 아님을 알고 있던 내가 앎을 삶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6. 그렇게 나는 다이렉터로 돌아갔다.
디렉터가 아닌 다이렉터 말이다. 한 마디 지시하지 않아도 늘 함께 있었던 자리다. 누구의 의견이라도 지지해주고자 했던 자리로 돌아갔다.
교회가 평안을 되찾았다. 누구의 문제도 아니었다. 다른 목사님의 문제도, 다른 직분자의 문제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어쩌면 그 시간, 나의 행동을 눈여겨 보고 계셨던 것이다.
“남 탓 하지 말고, 한승아 너는 어떻게 할래?”
7. 지난주 나눔예배에서 다시 한 번 반말로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에는 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청년들이 주도한 시간이었다. 다들 일상의 아픔들이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어하는 친구도 있고, 그럼에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결단을 한 친구도 있고, 이별을 준비한다는 친구도 있고, 직장의 고민이 있는 친구도 있다. 가족의 고민이 있고, 재정의 고민이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들어보면 사실 내가 걸어온 길과 다른 고민이 아니다. 여전히 내가 느꼈던 고민과 고통은 그들을 힘들게 한다.
8. 시간이 훌쩍 지나
내 나이가 벌써 40대 중반에 이르고, 직분도 담임을 맡고 있음에도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같다. “그러니까, 나는 옆에 있어야지.”
가끔 돌아보며 생각해 본다. ‘2014년 송구영신예배처럼 직분을 내려놓고 섬길수 있는 용기가 있을까?’
9. 이번 휴가 기간 홍콩을 다녀오려고 했다.
거리에서 어떤 눈물의 흔적이 있을까 . 서 있어 보고 싶었다. 방탄소년단 정국이가 선물해 준 인형이 거리에서 나뒹군 사진을 보며 뭉클했다.
일상에서 평범한 꿈 많은 소녀가 거리에 나설 정도로 힘들구나. 하지만 재정적인 이유와 내가 몸담은 학교 일정 등이 있어서 갈 수는 없었다. 거리 위에서 나뒹구는 인형처럼, 사람들은 오늘도 각자 힘들어 한다.
10. 통합 교단에서 세습이 사실상 허용된 소식이 들려온다.
작년 여름 휴가 기간에 명성교회 앞에서 휠체어를 끌고 1인 시위를 할 때, 소낙비를 맞아가면서도 우산을 들 수 없었다. 우산을 들 수 없을만큼 손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무지하게 비가 쏟아졌다. 시위기간 내내 비를 쫄딱 맞으며 누가 봐도 초라한 모습으로 홀로 있을 때, 마음이 저몄던 순간은 명성교회의 모습과 김삼환 목사님의 세습 결정 때문만은 아니다. 저민 마음은 보이지 않는 욕망이 아니라, 보이는 성도들의 땀이었다.
비가 오는데도 내 앞을 오가며, 시위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말하는 성도들의 발걸음에 얼마나 무거운 상처들이 있을까?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교회를 지키겠다며 오가는 발걸음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을까?
계속된 1인 시위를 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그들 마음에는 “류 목사님 당신이나 잘하세요”라는 마음이 왜 없었을까.
내가 있는 교회에 똥물을 끼얹겠다고 말하는 분들이나, 내가 쓴 사랑의 편지에 악플과 여러 메일을 보낸 분들, 모두가 다 성도들이었다. 교역자들이나 진짜 관계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 보였던 것은, 성도들의 땀과 눈물이었다.
휠체어를 탄 모습을 빈정거리는 모든 분들의 말 하나 하나가 전혀 밉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고민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 성도들이 내가 섬기는 교회 성도들의 모습으로 비춰졌다. 나도향 씨의 표현처럼, 그들의 모습에 별이 보이고 달이 비추듯 말이다.
11. 보이지 않는 욕망은 보이는 사람들의 수고를 이용한다.
보이지 않는 목회자의 욕망은 보이는 성도들의 땀과 눈물을 요구한다. 나는 발걸음을 돌이켜 다시 내게 맡겨진 생명샘교회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달꿈예술학교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내게 있는 욕망은 무엇일까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내 욕망을 위해 누구의 땀과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아닌가. 다시 두렵다.
12. 담임이 되고 10년 목회를 약속했다.
그것은 그저 내가 생각한 철학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다. 나는 쉽게 흔들리고 낙담하는 나를 믿지 못한다. 나는 쉽게 욕망이 생겨도 깨닫지 못하는 나를 믿지 못한다. 그러나 늘 그런 나를 위해 죽어주신 주님을 믿는다.
그 분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분이므로 그 분을 신뢰한다. 그 보이지 않는 욕망을 억제하고자 보이는 제도를 만들어 나를 묶어둬야 한다.
13. 청년들이 많아지면서 사람들은 물어본다.
“생명샘교회는 비전이 있네요.”
“비결이 뭐에요?”
“이렇게 지하에 허름한데, 왜 뜨거워요?”
그런데 비결은 없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내 욕망으로 청년들, 성도들을 땀흘리게 한 탓이겠지. 뜨거움을 주셨다면 당연히 주님께서 하셨겠지.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교만하고 욕심 많은 사람에 불과하니까.
14. 나는 목사이고 달꿈예술학교의 교장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불린다. ‘커피숍 아저씨’.
지역과의 소통, 지역 주민들의 쉼터이자 학교를 후원하기 위해 쿰 카페를 만들고, 여기서 봉사하는 내게 지나가는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인사한다. 우리 교회 아이들이 아닌, 지역의 아이들이다.
그런데 어떤 꼬마 아이가 어느 날 편지를 놔두고 갔다. 초록파랑 색색종이를 붙여 만든 봉투에는 ‘커피숍 아저씨께’라고 적혀 있고, “감사해요. 왕감사”, “힘내요”라고 적혀있다.
편지 내용은 또박또박 힘주어서 쓴 것이 역력한 글씨로, 감사의 이유를 밝힌다. “우리를 지하에서 같이 놀아줘서 감사해요. 다음에는 저희가 춤 많이 보려드릴게요.”
서툰 맞춤법이 전혀 거슬리지 않은 예쁨으로 다가온다. 감사의 이유는 저번에 지하에서 놀아줘서란다. 다음에는 춤도 보여주겠단다.
행복하다. 육체의 노곤함은 이렇게 사라진다. 내가 해준 것은 아이가 오면 지하를 내어주고 그저 함께 있어준 것밖에 없는데, 아이가 지나갈 때 인사해주는 것밖에 없는데, 아이는 웃는다.
15. 모든 성도를 같은 마음으로 사랑함에도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아이만도 못할 때가 많다.
나는 왜 지하에 있는 생명샘 교회가 왜 뜨겁게 느껴질까. 해답은 간단했다. 성도들이 그저 있어준 것이다. 텁텁한 공기를 내뿜고, 여름마다 물 새는 지하에서 나와 함께 놀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때가 많이 묻었다. 주님이 더러운 제자들 발을 씻어 더러워진 손처럼, 이들은 내 휠체어를 밀며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힌다.
16. 그래서 나는 오늘도 높아져가는 내 욕망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반말 편지를 보낸다.
이 아이처럼 춤은 춰줄 수 없지만, 내 아들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세상, 원로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교회, 내 뜻대로가 아니면 상처받는 관계.
많은 직분자들이, 청년들이 힘들어 떠나는 교회에서, 그래서 이제 자기 갈 길을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질 이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다르지 않음을 잊지 말자.
“그러니까 한승아 너는 옆에 있어야지.”
언젠가 직분 떼고 계급장 떼고, 아무것도 없이 그저 옆에 있어주는 사람…. 그 날은 오겠지. 그 날을 기다려본다.
Understand, 그 때쯤 나는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 날이 올때까지, 어떤 상황이 와도, 설령 두세 명밖에 안 남는다 해도, 남아서 기다리고, 남아서 놀아주고 남아서 같이 울고 웃는 그저 그런 사람.
그래서 오랜 기간 방황하다 돌아와도 여전히 같은 곳에서 기다리고 안아줄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아저씨가 될 것을. 공부할 것 때문에 사람을 놓치지 말고, 돈 때문에 눈물을 버리지 말것을. 상처 받았다 해서 상처를 버리지 않을 것을. 그냥 그렇게 그저 같이 평범히 늙어갈 것을, 한승아 약속하자.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