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
본지는 [박진호 목사의 신앙문답]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미국 남침례교단 목사인 그는 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의 글은 박 목사가 운영하는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그가 직접 쓴 것으로, 본지는 박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를 게재합니다. 아울러 필자의 요청에 따라, 글이 그의 웹페이지에 게시된 날짜를 맨 아래 밝혀둡니다.
크리스천의 성적 순결
결혼 후에는 간음을 일절 하지 않고 배우자에 대해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수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도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신자가 혼전에도 순결을 지켜야 하는 구체적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선 하나님이 이브를 아담에게 이끌어 오시어 연합시킨 것은 명시적 기록이 없어도 그분 앞에서 서약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역으로 따지면 그런 서약 없이는 여자와 성관계를 맺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성을 주신 일차적 목적이 생육과 번성 즉, 가정을 이루는 것이므로 결혼을 하고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 각자가 혼전순결을 유지한 채 결혼하면 정말 서로 벌거벗었으나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선 플라톤 철학에 기원을 둔 인간 존재에 대한 이원론을 철저히 배격합니다. 인간을 육신과 영혼 둘로 나누어 눈에 보이는 육신은 실체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영혼이 실체이므로 정신만 깨끗하면 된다는 사상입니다. 요컨대 육체가 범하는 잘못은 죄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이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퍼져있습니다. 혈기 왕성한 때에 성적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나중에 회개만 하면 된다는 사고의 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따로 다루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육신과 혼과 영의 셋, 또는 육과 영의 둘로 나누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처럼 각기 따로 작동하는 독립개체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대신에 인간을 육, 혼, 영 셋이 합치된 전체(a whole bring)로 봅니다. 또 정신과 육체 모두 영혼의 통제를 받는데, 그 영혼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과 사탄의 미혹하는 영 둘 중 하나에 지배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짓는 죄 따로 있고, 영혼이 행하는 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적 타락은 육체가 책임지고 회개는 영혼이 맡아야 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죄를 짓던, 회개를 하던 한 사람 개인의 전적 책임인 것입니다.
따라서 결혼할 때까지 혼전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은 이미 그 사람 본인 전체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해 그만큼 더러워진 것입니다. 생리적 동정과 처녀성만 잃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반대로 순결한 상태로 결혼한다는 것은 그 만큼 자신의 전존재를 사랑하는 배우자이자 평생을 서로 도울 배필에게 순수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친다는 뜻입니다.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너무나 숭고하고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이지 않습니까?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주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원죄 하에 태어났기에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범죄 이전의 인류 최초의 결혼 같은 모습을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에 따르면 육체적 순결을 떠나서 그보다 같거나 더 중요한 정신적 순결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결혼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지 않습니까?
결국 에덴동산 이후로는 부족하고 연약하고 죄 많은 사람끼리의 결혼뿐입니다. 온전한 순결과 사랑으로 이뤄지는 완전한 결혼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최대한 그에 버금가는 성스러운 결혼으로 회복시킬 방도는 있습니다. 바로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끼리, 가능한 혼전 순결을 유지한 채 결혼하여서, 평생을 하나로 연합하여 돕는 배필로 섬기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혼전 순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단순히 동정과 처녀성을 지키려는 도덕적 수고로 그쳐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너무나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바치기 위해서 깨끗하게 보존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미혼자녀로서 진짜부모인 하나님이 허락하여 맺어주는 배필을 만날 때까지 육과 혼과 영의 합일체(合一體) 즉 자신의 전부를 순수하게 지켜내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결혼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마19:4-6)
바리새인들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당시 유대 율법(모세 율법을 바리새인들이 세부적으로 확장하여 첨가한)으로는 남편이 아내에게서 작은 하자라도 발견하면, 심지어 단지 같이 살기 싫어도 이혼을 허용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어쩌면 그 동기부터 프리섹스를 용인하려는 셈입니다.
그에 대해 예수님은 결혼이란 하나님의 창조 섭리 안에서 그분과의 성약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기에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성적으로 순결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너무나 지당하고도 기본적인 법도라는 것입니다. 혼전까지 동정과 처녀로 지내는 것 이상으로, 배우자에 대해서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럼 모세는 왜 이혼증서만 주면 내어버리라고 했는지 되물었습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으로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8절)가 예수님의 대답이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도 아무렇게나 아내를 버려도 된다는 뜻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신24:1) 분명히 수치되는 일 즉,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한 일이 발견될 때에 한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바리새인들은 이혼 증서만 주면 마음 놓고 이혼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도 원래 율법이 의도한 바에 따라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9절) 참으로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우선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음행한 연고라면 버려도 되지만 그 외에의 연고로는 절대 이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적 순결이 결혼생활의 필수적 전제라는 것입니다. 부부로 함께 살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간음은 바로 상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표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법으로 따지면 이혼할 각오가 되어있지 않는 한 간음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내가 간음하지 않았는데 버리고 다른 데 장가가면, 즉 이미 이혼했어도 그 남편은 간음한 셈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성적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 한 이혼할 수 없기에 하나님 보시기엔 그 결혼은 유효하게 지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남편은 하나님이 정한 결혼은 두고 새로운 여자와 다시 장가들었으니 간음, 정확히 말하면 이중혼의 죄를 범한 것입니다. 나아가 새로 얻은 여자도 하나님 보시기에 어엿이 아내가 있는 기혼자와 성관계를 맺었기에 본의 아니게 간음죄를 지은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도 두려운 진술 아닙니까?
혼전 순결을 유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만약 결혼 전에 여럿 혹은 한 사람과 성관계를 맺고도 그 상대와 결혼하지 않게 되면 바로 이런 원리에 따라 모든 당사자들이 간음을 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은 성적 순결을 어기는 죄에 대해선 가장 가혹한 처벌 규정을 두었습니다. 당시의 우상숭배가 전부 혼음(混淫, Free Sex)하는 종교였기에 유대인들이 그에 물들지 못하게 막고자 하는 뜻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위기 18장이나, 신명기 22장의 성적 순결에 관한 규정들은 사실상 우상숭배와 상관없이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 적용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만큼 성적 순결을 하나님은 중시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물론 당신의 청지기로 이 땅을 다스려야 할 인간은 동물과 다른 성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육과 쾌락만 목표로 하는 근친상간, 간음, 혼음, 수간, 동성애 모두를 엄격하게 금지시킨 이유입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맺어주신 돕는 배필과 성스러운 결혼을 한 후에 성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또 결혼을 통해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생육 번성시키라는 것입니다. 성생활이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당신께서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려는 계획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언급하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그 형상을 아름답게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19:2) 아담 이후로 비록 그 형상이 부패해졌지만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한 신자라면 그 형상을 거룩하게 회복 보존할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아니 성령이 이미 내주해 있기에 더러운 죄에 민감하고 저절로 싫어하고 멀리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거룩에 대한 소망과 헌신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만이라도 에덴 동산의 완벽했던 결혼 즉,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으로 회복시키길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성적 잘못을 저지른 신자는?
그런데 문제는 신자 처녀와 신자 동정이 만나 결혼을 한 후에도 예수님이 말하는 정신적 간음을, 때로는 실제적인 간음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남아 있는 죄의 본성이 그만큼 끈질기고 강력할 뿐 아니라, 죄에 물든 세상의 유혹과 시험이 사탄의 교묘한 농간에 힘입어 신자를 가만 놔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성적으로 더러워진 이후의 처리가 더 문제입니다. 우선 정말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선지자 호세아의 예에서 보듯이 간음한 아내나 남편이라도 최대한 용서하고 다시 사랑을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도록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여전히 성적 유혹에 연약할 수 있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결혼 중 간음한 경우에 한해선 끝까지 도무지 용서가 안 되면 이혼해도 됩니다만 최대한 용서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인은 모세의 율법 상으로는 그 간부(姦夫)와 함께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3)고 하자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다 물러가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용서해주었습니다. 단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지금껏 성적 범죄를 저질렀을지라도 진정으로 회개하고 다시는 그 죄를 범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적으로 시험에 든 청년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창조에 드러난 하나님의 성에 관한 섭리와, 모세의 거룩한 율법과, 예수님의 결혼에 관한 가르침에 비추어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부터 분명하게 심어주어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로서 그 영혼이 먼저 주님과 온전한 교제가 회복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인간의 전 존재(혼, 영, 육을 합친)가 찔러 쪼개지며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 감찰되어서 완전히 벌거벗기어진다고 합니다. 신자는 항상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인 말씀, 따지고 보면 사실은 바로 그분 앞에 벌거벗은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아니 그전에 그분이 우리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아십니다. 혼전에 순결을 지키고 또 결혼하여 배우자에 대해 정절을 지키는 문제 또한 사실은 그분 앞에 우리의 전 존재가 깨끗하고 순수하게 서느냐의 문제입니다.
신자의 모든 생각, 말, 행동 전부가 그래야 하지만 성적 문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이는 혼자만의 타락이 아니라, 배우자에게 그 죄가 함께 오염되며, 나아가 연관된 주위 사람 및 무엇보다 그들에게서 난 자녀까지 영적으로 부패케 만드는 정말 죄 중의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두 배필이 이루는 온전한 가정을 통해서 당신의 거룩한 통치를 이 땅에 실현시키려 하는 데에 가장 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이전에 신자 각자가 하나님을 닮아 거룩해지는 일에도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성을 단순히 도덕적 종교적 문제로 다뤄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본받고 그 거룩하심을 이 땅에 실현시키는 영적으로도 너무나 중요한, 아니 가장 근본적인 출발이 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성에 대한 올바른 성경의 진리를 바로 심어주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미처 모르고 예사롭게 잘못을 저지른 신자라면 인내와 긍휼로 끝까지 용서하면서 더더욱 잘 가르쳐야 합니다. (끝)
2010/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