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그분의 앙상함이 가장 그리운 계절입니다

|  

[류한승의 러브레터] 그 계절, 그 사람 되기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 속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장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 속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장면.

1. 가을이 지나갔어요. 초겨울이 되어 아직 듬성 듬성 매달린 단풍을 보면 안쓰럽습니다.

“온 몸마저 붉게 물들이고 뭐가 부끄럽니”.

나뭇잎은 흔들림으로 대답합니다. 몸을 흔들림으로 대답을 대신한 그들 사이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이 보입니다. 빨강과 파랑은 꽤 잘 어울리네요.

2. 겨울왕국이 유행입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겨울왕국이 와서 그런지 사람들 옷차림이 더 겨울같아 보입니다. 몸을 감추고 싸매고 덮습니다. 이제 귀도 덮고 손도 덮고 입도 막아요.

겨울이 되니 나무는 자신을 덮어주었던 잎사귀들을 기꺼이 보냅니다. 가리워졌던 것들이 사라지자 앙상하고 볼품없는 가지들만 뾰족뾰족합니다.

어김 없네요. 가지들만 남은 것 같은 나무들 사이로 더 크게 하늘이 비추입니다.

3. 생각해 보니 나뭇가지만 대단한게 아닙니다.

겨울 나뭇가지를 만져보니, 차디찹니다. 손바닥으로 매만지는 순간 나무의 거친 표피가 손에 묻습니다. 그닥 좋은 느낌은 아니더군요.

손바닥에 흙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뭍어 손을 씻습니다. 문득 떨어진 잎사귀 생각에 코끝이 찡합니다.

어린아이 손으로 살짝 만져도 찢어지고 떨어질 그 연한 몸뚱이로 잘도 버텼구나. 어찌 그 연한 몸으로 거칠고 뾰족한 나무가지를 덮었을까. 온 몸 다해 덮었을까?

나의 삶이 이랬노라 하늘을 향해 찬양하고 싶으련만, 너는 마지막 순간 땅을 선택하는구나. 이제 즈려 밟히는 삶으로 가는구나.

그 순간 하늘 위 흩날리던 잎새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가지가지 사이마다 하늘이 보입니다.

찰떡처럼 붙어 있어야 할 그들이 서로 간의 거리와 여백마저 사랑할 때, 나무는 하늘을 단풍으로 물들입니다.

4. 돌아보며,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살아갈까 생각합니다.

‘노랑 빨강 파랑처럼 서로를 수용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은, 갈라진 광장을 묵상함으로 아프게 다가옵니다. 지식과 스펙을 채우는 것이 살 길이라고, 여기저기 껴입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보면 겨울이 더 깊어지는 요즘, 왜 이렇게 답답한지 알게 됩니다.

우리에겐 앙상함을 가리고자 하는 아담과 같은 본능이 남아있었네요. 앙상함이 존재의 가치였는데, 그것을 가리운 채 장갑도 목도리도, 심지어 타인마저 나의 추위를 덮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네요.

외롭다며 슬프다며 상대를 껴입어 버렸네요. 내 가시로 그가 찢김을 모른채, 그가 힘들어하는 것은 모른 채, 그저 그대는 나의 외로움의 도구로 살아가기를 바라네요.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 보여야 할, 드문드문이라도 보여야 할 하늘이 사라져버렸네요. 우리를 보며 사람들은 그래서 답답해한 거군요.

5. 갈라진 한국 땅, 아니 어쩌면 전 세계가 그러하겠지요.

주님의 몸된 교회들이 갈라지는 이 땅,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나무일까요? 여전히 같은 곳에 우두커니 사계절을 맞이하는 나무를 보며 배우고 싶습니다.

수많은 바람 스쳐 지나가도, “언젠가 다시 불어오렴 다시 만나”라고 말할수 있도록, 그저 그 자리 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빨강도 노랑도 제법 어울린다 보일 수 있는, 얼굴빛 부끄러워 빨개지는 사람 되어야지. 잘난 줄 알았지만 온통 앙상한 나를 가리워 주고, 뾰족함을 안아주던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지. 분주함과 멀어지고 친밀함과 멀어질 줄 아는 나뭇가지처럼 되어, 나를 보면 한가함이 느껴지고, 그래서 나와 너 사이를 볼 때 하나님 보이는 사람 되어야지.

언젠가 나도 잎새처럼 누군가의 뾰족함을 덮어주곤 “안녕 잘 있어. 더 좋은 친구가 찾아올거야” 하고 떨어질줄 아는 그런 사람 되어야지.

6. 완벽한 부활을 꿈꾸었지만, 부활마저 옆구리에 상처난 채로, 손에 구멍난 채로 가장 약하고 여린 몸을 보이시며 도마의 구멍난 믿음을 사랑하셨던 그분의 앙상함이 가장 그리운 계절입니다.

만지지도 못하게 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도, 상처 깊숙히 만져보게 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도, 두려움 가득해 문을 잠근 곳에 있던 제자들도 모두 하나된 그 계절,

그 계절이 오늘이기를, 내가 그 사람되기를.

샬롬. 평안하세요

▲장애인의 날 기념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류한승 목사 ⓒ미주 기독일보

▲장애인의 날 기념예배에서 말씀을 전한 류한승 목사 ⓒ미주 기독일보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123 신앙과 삶

CT YouTube

더보기

에디터 추천기사

예수님 생일카페 CCC

도심 속 ‘크리스마스 진짜 주인공’ 찾으러… 2천 년 전으로 시간여행

로마 병정 복장으로 길거리 홍보 성탄 의미 알리려는 다양한 코스 CCC 유학생들 간사와 직접 사역 변화하는 시대 속 그리스도 소개 “예수님 생일카페, 가 보시겠어요?”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낮 1시, 로마 병정 옷을 입은 청년 3명이 서울 종로구 혜…

한덕수 총리 권한대행 탄핵

헌법을 짓밟은 거대 야당의 겁박과 독재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에 대해 12월 24일로 예정했던 탄핵소추안 발의를 한 차례 연기했다. 12월 26일까지 내란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을 수용하고, 또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들 임명에 대해 입장을 밝히라고 연일 압박하고 있다. 그렇지 …

2024 올해의 책

문학부터 MBTI와 SNS, 정치와 과학… 교회 안팎에 대안 제시한 책들

‘책 읽는 그리스도인’ 문화 확산을 위해 매년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있는 크리스천투데이가 ‘2024년 올해의 책’을 선정했다. 지난 2014년부터 시작해 11년째를 맞이한 ‘크리스천투데이 올해의 책’은 2023년 12월 1일부터 2024년 11월 30일까지 기독 출판사에…

EXPLO7424 도시전도운동

목회자·성도 대다수 “‘해외 선교’보다 ‘국내 전도’가 시급”

기독교인들의 연령대별 ‘전도 활동률’을 조사한 결과, 19~29세가 가장 적극적이고 40대가 가장 소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목회데이터연구소(대표 지용근, 이하 목데연)가 ㈜지앤컴리서치와 함께 한국교회의 선교와 전도 현황을 점검하기 위한 대규모 실태 조사…

 길선주, 스크랜턴, 알렌, 헨리 데이비스

한국교회 빛내고 사회 발전 견인한 인물들 재조명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한 기독교 종교문화자원 보존과 활용을 위한 학술연구 심포지엄이 23일 오후 3시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한교총이 추진한 종교문화자원 목록화 및 관광자원화 사업의…

러브라이프 태아 생명 낙태 사랑

성탄 전날, 강남역서 펼쳐진 ‘예수님 생신 선물 프로젝트’

12월 성탄·연말 이후 낙태 급증 선물과 함께 전단지와 엽서 나눔 러브라이프, 벌써 4회째 캠페인 12월 25일 성탄절 ‘예수님 생신’을 하루 앞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태아로 오신 예수님’께 드리는 ‘생신 선물’ 프로젝트가 올해도 마련됐다. 24일 오…

이 기사는 논쟁중

인물 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