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승의 러브레터] 그 계절, 그 사람 되기를
1. 가을이 지나갔어요. 초겨울이 되어 아직 듬성 듬성 매달린 단풍을 보면 안쓰럽습니다.
“온 몸마저 붉게 물들이고 뭐가 부끄럽니”.
나뭇잎은 흔들림으로 대답합니다. 몸을 흔들림으로 대답을 대신한 그들 사이사이로 파란 가을 하늘이 보입니다. 빨강과 파랑은 꽤 잘 어울리네요.
2. 겨울왕국이 유행입니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겨울왕국이 와서 그런지 사람들 옷차림이 더 겨울같아 보입니다. 몸을 감추고 싸매고 덮습니다. 이제 귀도 덮고 손도 덮고 입도 막아요.
겨울이 되니 나무는 자신을 덮어주었던 잎사귀들을 기꺼이 보냅니다. 가리워졌던 것들이 사라지자 앙상하고 볼품없는 가지들만 뾰족뾰족합니다.
어김 없네요. 가지들만 남은 것 같은 나무들 사이로 더 크게 하늘이 비추입니다.
3. 생각해 보니 나뭇가지만 대단한게 아닙니다.
겨울 나뭇가지를 만져보니, 차디찹니다. 손바닥으로 매만지는 순간 나무의 거친 표피가 손에 묻습니다. 그닥 좋은 느낌은 아니더군요.
손바닥에 흙인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뭍어 손을 씻습니다. 문득 떨어진 잎사귀 생각에 코끝이 찡합니다.
어린아이 손으로 살짝 만져도 찢어지고 떨어질 그 연한 몸뚱이로 잘도 버텼구나. 어찌 그 연한 몸으로 거칠고 뾰족한 나무가지를 덮었을까. 온 몸 다해 덮었을까?
나의 삶이 이랬노라 하늘을 향해 찬양하고 싶으련만, 너는 마지막 순간 땅을 선택하는구나. 이제 즈려 밟히는 삶으로 가는구나.
그 순간 하늘 위 흩날리던 잎새는 낙엽이 되어 떨어지고, 가지가지 사이마다 하늘이 보입니다.
찰떡처럼 붙어 있어야 할 그들이 서로 간의 거리와 여백마저 사랑할 때, 나무는 하늘을 단풍으로 물들입니다.
4. 돌아보며,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하고 살아갈까 생각합니다.
‘노랑 빨강 파랑처럼 서로를 수용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은, 갈라진 광장을 묵상함으로 아프게 다가옵니다. 지식과 스펙을 채우는 것이 살 길이라고, 여기저기 껴입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보면 겨울이 더 깊어지는 요즘, 왜 이렇게 답답한지 알게 됩니다.
우리에겐 앙상함을 가리고자 하는 아담과 같은 본능이 남아있었네요. 앙상함이 존재의 가치였는데, 그것을 가리운 채 장갑도 목도리도, 심지어 타인마저 나의 추위를 덮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네요.
외롭다며 슬프다며 상대를 껴입어 버렸네요. 내 가시로 그가 찢김을 모른채, 그가 힘들어하는 것은 모른 채, 그저 그대는 나의 외로움의 도구로 살아가기를 바라네요.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 보여야 할, 드문드문이라도 보여야 할 하늘이 사라져버렸네요. 우리를 보며 사람들은 그래서 답답해한 거군요.
5. 갈라진 한국 땅, 아니 어쩌면 전 세계가 그러하겠지요.
주님의 몸된 교회들이 갈라지는 이 땅,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나무일까요? 여전히 같은 곳에 우두커니 사계절을 맞이하는 나무를 보며 배우고 싶습니다.
수많은 바람 스쳐 지나가도, “언젠가 다시 불어오렴 다시 만나”라고 말할수 있도록, 그저 그 자리 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빨강도 노랑도 제법 어울린다 보일 수 있는, 얼굴빛 부끄러워 빨개지는 사람 되어야지. 잘난 줄 알았지만 온통 앙상한 나를 가리워 주고, 뾰족함을 안아주던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지. 분주함과 멀어지고 친밀함과 멀어질 줄 아는 나뭇가지처럼 되어, 나를 보면 한가함이 느껴지고, 그래서 나와 너 사이를 볼 때 하나님 보이는 사람 되어야지.
언젠가 나도 잎새처럼 누군가의 뾰족함을 덮어주곤 “안녕 잘 있어. 더 좋은 친구가 찾아올거야” 하고 떨어질줄 아는 그런 사람 되어야지.
6. 완벽한 부활을 꿈꾸었지만, 부활마저 옆구리에 상처난 채로, 손에 구멍난 채로 가장 약하고 여린 몸을 보이시며 도마의 구멍난 믿음을 사랑하셨던 그분의 앙상함이 가장 그리운 계절입니다.
만지지도 못하게 하신 예수님을 만난 마리아도, 상처 깊숙히 만져보게 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도, 두려움 가득해 문을 잠근 곳에 있던 제자들도 모두 하나된 그 계절,
그 계절이 오늘이기를, 내가 그 사람되기를.
샬롬. 평안하세요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