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교단 총회가 사랑침례교회에 공문을 보내 교단이 공식적으로 사랑침례교회를 이단으로 지정한 바가 없으며, 이단대책위원회의 결정은 교단의 공식적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사과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교단 소속이 없는 어떤 독립교회가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것을 이유로 이단이라고 공격당하는 오류를 바로 잡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말씀보존학회'라는 것이 생기고 난 뒤 킹제임스 성경 한글 번역본만이 참된 국문 성경이라는 주장이 등장했고, 그 후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침례교회는 자타가 인정하듯 말씀보존학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독립교회다.
킹제임스 성경이 갖고 있는 문제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역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1514년에 스페인에서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 라틴어로 된 대역 성경인 "콤풀루텐시아 대역성경"(Complutensian Polyglot)이 출판된 것을 제외하고, 헬라어 신약성경 전체를 단권으로 출판한 사람은 에라스무스(D. Erasmus)였다. 그는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급하게 헬라어 사본들을 구하였으나, 신약성경 전체를 포함하는 사본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부분에서 다른 사본들을 사용하여 편집할 수밖에 없었고, 그가 주로 사용한 사본 두 개는 그리 썩 좋은 사본은 아니었다. 그가 편집한 헬라어 성경은 3판까지 총 3300부에 이를 정도로 많이 인쇄되어 콤플루텐시아 대역성경보다 많이 보급되었다. 인쇄업자들이 콤플루텐시아 대역성경보다 헬라어 본문이 부정확하고 가치가 떨어지는 에라스무스의 성경을 더 널리 보급함으로써 소위 "수용본문"(Textus Receptus)이라는 것이 형성되게 되었다.
수용본문은 에라스무스가 만든 오류들을 수정하지 않은 채 계속 퍼져나갔고 1611년에는 수용본문을 기초로 해서 킹제임스 영어 번역본이 나왔다. 수용본문이 갖고 있는 오류를 해결하기 위해 본문의 다른 이독(異讀)들을 수집하고 비교하여 분석하는 연구는 지속되었고, 결국 1831년 독일의 문헌학자 라흐만(Karl Lachmann)이 베를린에서 수용본문과 상이한 이독(different reading)들의 리스트를 출판함으로 수용본문은 사실상 폐기되었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는 수용본문을 사용한 킹제임스 성경이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아마 그 공로는 윌리암 틴달(William Tyndale)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틴달이 순교할 뒤인 1611년에 출판되었다. 틴달이 목숨을 걸고 번역하여 1530년대에 출판한 그의 영어성경이 없었다면 오늘 날의 킹제임스 성경이 있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해서 킹제임스 성경이 어느 정도 틴달의 번역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측정해 본 결과 킹제임스 성경의 90%는 틴달의 번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문학적으로 뛰어난 표현들을 잘 살린 틴달의 번역본은 그 이후 수많은 영어 성경 번역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틴달은 셰익스피어와 함께 근대 영문학의 기초를 놓은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것이 영어 성경을 읽을 때 킹제임스 성경이 여전히 사랑을 받는 이유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에도 틴달의 수려한 영문번역이 얼마나 감지될지는 약간 의문이다. 하지만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 현대영어로 번역한 성경인 "메세지"(The Message)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보급하는 것을 생각하면, 옛 영어 문체인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해서 사용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다. 합동 측 모교단이 말씀보존학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독립교회인 사랑침례교회를 단순히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단이라고 결정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모든 교회가 현재 성서공회가 출판한 개역성경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어떤 율법이라도 있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개교회가 자유롭게 자신들이 사용할 한글 성경 번역본을 결정할 자유도 없는 나라인가?
솔직히 현재 개역성경의 번역 상태는 심각할 정도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주최로 2013년에 "한국어 성경 번역의 초기 역사와 한국교회"라는 주제의 학술발표회가 있었고, 1906년에 최초로 신약성경 전체가 출판된 『신약젼셔』의 번역을 헬라어 본문과 비교하면서 번역 상태를 점검한 논문 두 편이 발표되었다. 당시 선교사들과 국내 번역가들의 실력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각종 오류들이 발견되었다. 문제는 1906년 번역의 오류들이 현재 개역성경에 여전히 다수 남아 있다는 점이다. 독립된 개교회가 어떤 성경을 쓰는지 상관할 시간에 개역성경 번역이라도 제대로 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옳다. 대한성서공회가 현재 진행 중인 성경 번역이 나왔을 때 과연 그런 오류들이 개선되어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김철홍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