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진의 북한포커스]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각성, 정권교체의 핵심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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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각성… 저항의 몸짓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

▲정교진 박사

▲정교진 박사

들어가는 말

고든 털럭(Gordon Tullock)은 민주주의를 대상으로 연구되는 '공공선택론'을 사용하여 전제정치를 분석한 미국의 경제학자였다. 'Autocray'(1987)라는 그의 저서에서 과거 전제(독재, 군주)정치체제가 교체된 가장 주된 유형을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첫째는 독재자가 자신의 측근인 고위층 관리에 의해 타도되는 것이다. 둘째는 외국의 개입에 의해서다. 셋째는 민중봉기이다. 그는 과거 독재자들 중, 편하게 눈을 감은 이들보다 첫 번째 유형(군사쿠데타 포함)인 최측근들로부터 타도된 독재자들의 수가 훨씬 많다고 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은 대체로 극소수 확률에 포함된 독재자들이었지만 이들의 독재시기가 그렇게 평탄치만은 않았다. 김일성은 '8월종파사건'(1956), '갑산파사건'(1967) 등 끊임없이 권력투쟁을 해왔으며 김정일 시기에는 더욱 거센 저항에 부딪혔다. 군사쿠데타 모의도 있었을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울분을 토해 내기도 했다. 김정은 정권 초기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

이 사건은 김일성-김정일의 권력 교체 시기였던, 1993년에 소련 군사유학생 출신 인민무력부 소속 장교들이 주축이 되어 일으킨 쿠데타 모의사건이다. 1993년 2월 8일에 일망타진된 이 사건을 북한 당국은 공식화하지 않았고 북한 언론매체들도 일절 함구했기에 하나의 설로만 회자 되었던 사건이다. 2012년 이후부터 외교관 출신 등 고위 엘리트 탈북자들이 다수 입국하면서 쿠데타 모의사건에 대한 증언이 흘러나오다가 2013년 4월, 소련 군사유학생 출신 탈북자를 통해 구체적인 사건의 전모가 밝혀졌다. 이 쿠데타 모의사건으로 1993년 2월부터 1997년까지, 5년에 걸쳐 대대적인 숙청이 이어졌고 소련 군사유학생 출신의 80%인 약 200여명이 총살을 당했다.

쿠데타 주동자는 당시 인민무력부 부총참모장(상장)이었던 홍계성이었다. 이 사건이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이라고 불린 것은 홍 상장과 강영환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중장)을 비롯한 주도세력들이 모스크바에 소재한 프룬제 아카데미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홍계성은 당시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사위였고 현, 김정은 정권 실세인 최룡해(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매부이기도 했다. 홍계성과 쿠데타를 모의한 장교들은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소련에 파견된 2차 군사유학생 250여명이었다. 이들은 북한 군부내 부군단장, 사단참모장, 연대장, 초소장 출신 등 다양한 직제에 있으면서 주로 군사작전과 군사기술 부문에서 종사하던 현직 군관들이었다.

이들이 군사쿠데타를 도모한 결정적 이유는 소련에 체류하면서 소련의 붕괴과정(공산당 일당 독재의 폐기, 대통령제 도입, 사유재산제 인정 등) 및 동구권의 급변사태를 목격하면서 북한 체제의 모순(독재성, 부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북한에 돌아와서 친목모임을 가진 이들은 잠재되어 있던 불만들을 서로 공유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쿠데타 시도까지 이르렀다. 십여 차례 이상 회의를 하며 구체적인 모의를 하던 중, 보위국(당시 인민무력부 산하)의 감시망에 걸려 1993년 2월 8일 평양시 인민무력부 본부 회의실에서 70명 장성과 고위급 군관들이 체포되어 결국 쿠데타는 수포가 되어버렸다.

이후 2001년도에 이 쿠데타 모의사건은 '간첩사건'으로 둔갑했다. 2001년 6월, 당중앙위원회는 성급 기관과 당 조직에 비공개 지시문을 내렸다. 지시문에는 '프룬제 군사아카데미 사건'은 남쪽 괴뢰정부가 보낸 간첩 리봉원(인민무력부 총정치국 부국장)이 소련에서 선진 군사과학기술을 배운 유학생들을 없애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었다고 하달했다. 왜냐하면, 이 프룬제 사건은 북한 전역에 널리 펴졌고 꽤 오랫동안 회자되어 북한 정권이 간첩사건으로 무마시켜야 할 만큼 인민 대중의 가슴을 출렁이게 한 사건이었다.

심화조 사건

이 사건은 앞의 '프룬제 아카데미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완료된 1997년에 터졌다.  이 사건도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김정일 정권의 대규모 숙청사건이었다. '심화조'(深化組)는 김정일이 사회안전성(현, 인민보안성)내에 설치한 비밀경찰조직으로 그 수가 8천 명이나 되었다. 심화조는 주민의 경력, 사상조사를 심화시킨다는 뜻으로 대기근으로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경제가 악화일로로 치닫는 가운데, 터져나오는 인민 대중들의 불만들을 잠재우기 위해 조직된 것이다. 당시 인민들의 동요와 불만들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김정일은 자신을 향한 비난의 화살들을 피하기 위해 고위 당간부들을 대중의 울분을 잠재우는 제물로 삼았다. 대표적 희생양은 서관희, 당 비서국 농업담당 비서로 그는 농업정책 실패 및 아사자 발생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고 평양 시내에서 공개총살 되었다. 심화조 사건으로 처형당한 수가 10,000여 명에 육박했고 15,000여 명은 수용소에 수감 되었다. 당시, 김정일은 자신의 통치에 비협조적인 당 간부들을 심화조를 통해 일거에 몰아 내버렸다.

심화조로 김정일의 권력은 안정되었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그 후유증이 상당히 컸고 원성들이 잦아들지 않았다. 김정일은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이젠 역으로 심화조 대원들을 향해 그 칼끝을 돌렸다. 심화조 책임자였던 채문덕(사회안전부 총정치국장)을 처형하고 그 대원들을 처벌하였다. 민심동향을 날조하여 보고함으로 심화조를 결성시켜 무고한 인민들을 죽였다는 혐의를 씌웠다. 한편으로, 김정일은 심화조 사건으로 숙청당하여 수용소에 들어갔던 이들을 억울한 누명을 쓴 희생자라고 하며 사면해주고 복권 시킴으로 난항을 모면했다.

황해제철소 노동자 폭동사건

이 사건은 1998년에 위의 심화조 사건과 맞물려 일어난 것으로 북한의 대표적인 식량 소요사태이자 민중의 항거였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의 대대적인 숙청시기에 발생함으로 그 진압은 참으로 끔찍하고 무지막지했다. 시위하는 공장 노동자들을 탱크로 사정없이 깔아뭉게 버렸던 것이다.

황해제철소는 송림시에 소재하고 있는 공장으로 사건 당시 종업원의 수가 10만 명에 이뤘다. 당시는 평양에도 배급이 끊길 만큼, 고난의 행군시기의 정점에 있던 시기이다. 황해제철소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굶주린 노동자들은 출근을 못하게 되고 공장은 올 스톱 상태에 이르렀다. 생산 실적에 책임을 져야 하는 공장 간부들은 노동자들에게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공장내 압연철판을 중국의 강냉이와 맞교환하기로 협의하였다. 이를 시행하던 중 보위부에 적발되어 공장 책임비서를 비롯한 7명의 간부들이 즉결 처형을 당했다. 죄목은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를 위반하고 국가물자를 외국에 팔아먹는 국가반역죄였다. 처형장소는 시내 공설운동장이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이 처벌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게 되었다. 자신들에게 식량을 배급해주기 위해 벌인 일인 일임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당의 처사가 너무나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공설운동장에서 강제로 처형장면을 지켜본 시민들도 동요했다. 8명의 처형이 끝나자 한 중년 여인이 앞에 나와서 이렇게 울분을 터트렸다고 한다(탈북민 증언).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총살하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제철소 간부들이 위대한 장군님께 생산을 많이 하여 기쁨을 드리자는 일념으로 강냉이를 바꾸려 했는데, 방법이 틀렸으면 처벌을 주어야지 총살까지 하는 건 너무합니다. 총살당한 간부들이 노동자들을 먹여 일을 시켜보자고 했지, 제가 먹자고 한 일도 아닌데 이렇게 사형까지 하는 건 너무 무지막지 합..."

채 말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구둣발로 차이고 입에 재갈이 물리고 머리채가 잡힌 채, 처형대로 끌려갔고 즉결 총살당했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과거에 평양에 있는 봉화진료소에서 김일성의 담당 간호사였고 당시에도 중앙당의 신임을 받고 있던 여인이었다.

총살이 강행된 다음 날, 오후에 분노한 제철소 노동자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공장내 도로에 몰려서 시위를 단행했다. 노동자들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제철소를 위한 간부들의 행동은 잘못이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버티기 투쟁을 하였다. 급기야는 철야 농성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새벽녘에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열대가 넘는 탱크가 동원되었고 수 백명의 군인들이 급파되었다. 그리고 사격과 함께 탱크가 시위 대열속으로 진입하여 순식간에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탱크의 무한궤도에 깔리고 말았다. 현장은 순식간에 아귀지옥이 되어버렸다.

장성택, 현영철 처형사건

김정은은 2013년 12월에 자신의 고모부이자, 권력 승계의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을 '국가전복음모'와 '반혁명분자'라는 죄목으로 즉결처형했다. 또 정통 군부파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2015년 4월에 '최고사령관 명령불복죄'라는 혐의로 즉결 총살했다. 김정은이 자신의 최측근을 숙청하는 이유는 권력의 공고화를 위한 것이다. 장성택과 현영철은 각각 '중국통'과 '러시아통'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장성택과 현영철을 통해 김정은 정권에 대해 어떠한 일을 도모하고자 했던 정황이 있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왜냐하면, 총살되기 1년 전인 2012년 8월에 장성택이 중국을 방문해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까지 면담했었다. 장성택은 중국이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뤄내는 것을 동경했고 중국지도부도 장성택과 손을 잡는 것이 북한을 중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장성택이 방중했을 때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의 법률 정비, 국경지역과의 협력, 토지세제 개혁, 기업투자 장려, 세관 개선 등을 주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김정은은 장성택을 '천하의 만고역적'이라고 칭했다. 현영철은 2015년 4월 30일에 처형당했는데, 불과 보름 전에 김정은 특사자격으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국방장관과 면담을 했었다. 현영철은 평소에 김정은의 잦은 군부대시찰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고 김정은에 대해 '어린 사람을 지도자로 모시고 일하려니 힘들다'는 발언까지도 했다는 전언도 있었다. 이 같은 오만은 소련이라는 배경을 둔 자신감의 발로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 처형된 이후, 얼마 동안은 북·중, 북·러관계에 있어서 난맥상을 보였다.

나오는 말

고든 털럭은 독재자는 그들이 권력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시기보다 그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 시기의 노력이 더 크다며, 구조적인 특징을 제시했다. 그의 주장대로 독재자들은 권력독점을 위해 끊임없이 경쟁세력, 반대세력을 제거해야 한다. 정치학자 찰스 메리암(Charles Merriam)도 정치권력의 유지수단으로 크레덴다(credenda)를 제시하며 4가지 원칙을 규정했는데 그중의 하나가 '합법성의 독점'이다. 즉, 권력자와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이를 반역자, 불법자, 루시퍼로 간주하는 것으로 이를 '배타적 권리'라고 그는 표현했다.

북한의 독재정권도 마찬가지다. 현재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보다 '최고존엄'이라는 권력욕에 더 취해있다. 배타적 권리를 강력하게 작동시켜 이복형인 김정남까지도 루시퍼로 몰아 살해했다. 김정은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라도 루시퍼로 몰릴 수 있는 것이 북한의 정치 현실이다. '과부하 국가기능' 관점에서 볼 때 정권말기적 형태로 해석될 수 있다. 팽창할 대로 팽창해진 풍선이라고 할까.

고든 털럭은 독재자가 피지배층을 억누르는 힘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국민들이 자각하고 반대여론이 형성되면 엘리트층에서 권력 교체를 꿈꾸는 이들이 생겨난다고 했다. 왜냐하면, 대중들의 각성이 독재자에 대한 암살이나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명분이라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이미 각성은 다 되어 있다. 저항의 몸짓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돌발변수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고든 털럭이 첫 번째 제시한 정권교체 유형인 최측근에 의한 타도(암살)는 늘 유효하다.

정교진 박사(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 이 글은 월간 「월드뷰」 2020년 1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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