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윤 치유칼럼] 마지막 일몰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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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윤 박사

▲강지윤 박사

한 해의 마지막 날, 빛나는 바다에 앉았다. 햇살이 차가운 바다에 보석처럼 부서져 내리고 있다. 남해의 아름다운 바닷가 기슭에서 진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깊은 묵상과 상념에 잠겨 한 해를 성찰하고 있다.

해변에는 다정한 연인이 손을 잡고 행복한 미소를 날려 보내고 있다. 새해에도, 저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아프지 않고 내내 행복하기를, 나와 여러분들을 위해 깊이깊이 기도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나의 작은 상담실 안에서 울고 또 울었던 아프고 슬펐던 이들이 가장 많이 호소했던 목소리를 환청처럼 다시 듣는다. 아프지 않을 수 있었고 행복할 수 있었던 그들이 왜 그토록 고통 속에서 발버둥 쳐야 했을까.

대부분의 상처가 인간관계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는 늘 약자와 강자의 구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자녀는 약자이고 부모는 강자다. 부하직원은 약자이고 직장 상사는 강자다. 학생은 약자이고 교사나 교수는 강자다. 그밖에도 을로 살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갑의 횡포 속에 속절없이 상처받으며 참고 살아간다.

인품이 좋은 사람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산다. 혹시 모르고 상처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대놓고 상처주지 않는다.

그러나 인품이 좋고 성숙한 사람은 상처가 치유된 사람이어야 한다. 자기 내면에 가득한 상처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성찰하지 못하게 가로막기 때문에 성장하기 힘들고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주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상처입은 마음은 분노를 키우고, 그 분노를 풀어낼 분노받이를 무의식적으로 찾는다. 그리고 분노받이에게 몹쓸 짓을 마구 해대는 것이다. 내가 치유의 현장에서 만났던 무수한 사람들은 분노받이였다! 그들이 약자였던 시절, 강자였던 자들로부터 분노의 창과 칼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상처가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도 모르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자신을 책망하고 혐오하게 된다. 혐오가 극에 이르면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분노받이의 현실을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상처가 분노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분노를 온갖 이유를 갖다붙이며 정당화하고 합리화한다. 그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분노받이가 되어줄 약한 자(성경에서 말하는 소자)를 찾는다.

그리고 그 약하고 찢기기 쉬운 마음에 분노를 쏟아부으며 상처를 깊이 준다.
분노를 쏟아붓고 나면 일시적으로 시원한 마음이 들고 그것에 중독이 되어 계속해서 분노를 쏟아붓게 되는 것이다.

분노는 사악한 죄악이다. 분노하는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칼과 창을 날리며 상처주고 심지어 죽음으로 몰고가기도 한다. 소극적 분노를 표출하는 엄마들 중에는 자녀를 귀찮아하거나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며 방관한다. 그래서 신체적 학대보다 더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정서적 학대라고 연구결과는 말한다.
분노하는 상사는 부하직원에게 화풀이를 하며 필요 이상으로 질책하여 상처를 준다.

분노하는 목사는 여린 교인들에게 설교를 빙자하여 마구 질책한다.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하나님을 버리고 싶어하는데도 깨닫지 못한다. 분노하는 선생들은 여린 학생들에게 심하게 상처주면서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분노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분노를 누군가에게 풀 때는 누군가 깊이 다치게 되고 고통스러워하게 되는데 그것이 죄가 된다. 약한 자(소자)를 실족하게 하고 상처주면 차라리 맷돌을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게 낫다고 성경에서는 강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 평화로운 바닷가에서 따스한 겨울 햇살이 온 몸을 안아주는 이 안온한 바닷가에서, 나는 분노받이가 되어 아직도 깊이깊이 아파하는 사람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상처와 고통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처는 너무 깊어서 너무나 많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분노받이 대상을 정해놓고 상처주고도 끝내 회개하고 변화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화가 있을 것이다. 신원해주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대신 갚아주신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분노받이를 찾아가 무릎 꿇고 사죄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기를 바란다.

혼자 기도하고 마치 용서받은 것처럼 하지말고, 반드시 상처주었던 대상에게 찾아가 진정성 있게 온 힘을 다해 용서를 구하길 바란다. 무심코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했다. 내가 무심코 뱉은 시니컬한 말 한마디에 맞아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돌을 던진 자신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도, 맞아서 피흘리는 사람을 질책하고 비웃으며 "그렇게 약해빠져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그래?"라고 힐난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와 여러분 모두 그 누구도 예외는 없다. 나도 돌아보니 참 많은 실수와 잘못을 해왔다. 서른 해를 살고, 마흔 해를 건너고, 쉰 해를 한 참 지나는 순간 속에서 젊은 시절의 어리석은 말과 행동들이 가슴 미어지게 후회되는 순간도 있다. 그때의 나를 지금도 기억하는 누군가는 나를 나쁜 사람으로만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치유와 성장이 내 마음의 힘을 키웠고 배려와 공감의 능력이 조금씩 부풀어올랐다. 여전히 나는 연약해서 누군가의 분노받이가 될 소지가 있지만 지금은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그리고 부끄러운 실수를 인정하고 또다시 회개하고 사죄할 힘도 생겼다.

또 한 해를 살고 나이를 더 먹어도 나는 완벽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도 때때로 분노하지만 나의 분노가 누군가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할 것이며, 분노받이 대상을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것이다.

서른살의 나, 마흔살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 그래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것이 아쉽지 않고 계속해서 설렘과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분노받이 역할로 몰아가고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올해의 죄악과 실수를 올해가 지나기 전에 회개하고 성찰하고 사죄해야 한다. 그래야 새해를 빛나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고통과 눈물의 시간일지라도 그 모든 시간은 빛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또 한 해를 살아낸 자신을 스스로 대견해하고 격려해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 비록 어리석은 실수로 점철되었을지라도, 계속해서 치유와 성장을 이루어가면 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없이 자애로운 햇살을 또다시 주셔서 우리를 빛나게 하실 것이다.

분노를 올해의 마지막 일몰과 함께 사라지게 하고 내년의 새로운 태양을 기쁘고 설렘으로 맞이할 수 있기를, 올해의 마지막 일몰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한다.

*한국목회상담협회 감독/심리상담학박사
*치유와 따뜻한 동행 www.kclat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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