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대상은 인간이다. 고로 정치의 방향은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마치 기독교 역사에서 인간을 어떤 존재로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구원론의 접근방식이 달라진 것과 같다. 개혁파 교회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었기 때문에 "오직 믿음"을 외쳤다. 하나님께만 구원의 소망이 있다는 의미다. 펠라기우스는 인간이 전혀 타락하지 않았다고 보았기 때문에 “행위구원”을 주장했다. 인간 자체의 구원 가능성을 뜻한다. 알미니우스는 인간이 부분적으로만 타락했다고 보았기 때문에 “행위와 믿음”이 다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구원을 위해 인간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정치도 인간에 대한 이해의 차이에 따라서 ‘정치관’이 달라진다. 그러므로 베리 골드워터는 “정치 사상가의 첫 번째 임무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일이다”라고 했다1).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보수적 정치관과 진보적 정치관으로 갈라진다. 보수적 정치관은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개혁자들의 인간관이 전제된다. 인간 자체에는 소망이 없으며 하나님의 섭리를 따를 때 비로소 소망이 있다고 본다. 에드먼드 버크는 “인간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 그저 진정한 인간성만 획득하려 해도 인간은 모든 의지와 미덕을 다 소진해야 한다”고 했다2). 그러므로 러셀 커크의 주장처럼 보수정치는 “역사와 인간의 본성을 안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려고 겸손하게 노력할 것이다”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한다3).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려고 겸손하게 노력”하는 방식이 바로 보수정치관이다. 과거 역사나 선조들의 탁월함에서 교훈을 찾는다. 보수는 검증되지 않은 정치적 실험이나 혁명을 거부한다.
반면에 진보주의자들은 하나님에게서 소망을 찾지 않는다. 유물론적 관점에서 인간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다. 인간이 철저하게 계획하고 설계하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무한히 개선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상향을 향해 끊임없이 투쟁해가며, 언제나 미래를 향해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고 본다4). 이런 관점의 정당성을 위해 하나님의 섭리자리에 우연과 진화를 전제한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도전이다. 에드먼드 버크의 주장처럼 “프랑스 혁명이 결코 단순한 정치적 실험이나 계몽의 정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도전한 무질서라는 질병”이라는 점은 적절한 지적이다5).
인간이 유토피아를 산술적으로 도출 해낼 수 있다는 사고는 계획경제와 큰 정부이론을 주장하게 했다. 국가가 철저히 계획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를 책임지면 모두가 공평하고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국민이 정부에 의존되면 그만큼 인간의 자유는 억압된다는 것이다. 복지를 극대화 한 나라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부는 정부가 원하는 일률적인 사람들을 만들려 한다. 여기서 신앙의 자유는 억압된다. 진보 정치철학의 이면에 하나님의 섭리가 무시된 당연한 결과다. 오늘날 자유의 억압은 자녀의 성(gender) 정체성까지 통제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엔 인간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과 개성(다양성)은 사라진다. 인간은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를 움직이는 부속품이 될 뿐이다. 국가가 빵을 분배하는 주체가 되면 권력은 당연히 절대화 된다. 분배받는 자는 분배 하는 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정치인이었던 액튼 경(Lord Acton)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야 한다6).
반면 보수주의 정치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로 본다. 평등보다 자유를 중요하게 본다. 때문에 국가의 간섭이 최소화되고 최대의 자유가 보장되는 작은 정부를 지지한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지배할 여지를 많이 둘수록 탁월해진다. 베리 골드워터의 주장처럼 “인간의 물질적 요소만 바라보지 않고 전반을 고려한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이 부분적으로 경제적 창조물이요 동물적 창조물이지만, 동시에 정신적 욕구와 정신적 욕망을 가진 정신적 창조물이기도 하다고 믿는다.”7)
다음 칼럼에서는 보수와 진보의 자유 문제를 다뤄보겠다.
미주
1) 베리 골드워터,「보수주의자의 양심」,박종선 옮김,(열아홉,2019),p.50.
2) 러셀 커크,「보수주의의 정신」,이재학 역,(지식노마드,2018),p.150.
3) Ibid.,p.115.
4) Ibil.,p.97.
5) Ibil.,p.150.
6) 베리 골드워터,op.cit.,p.61.
7) Ibil.,p.49.
김민호 kmh0692@hanmail.net